M6 스물한 번째 롤

이 초라한 블로그가 나에게 가져다 준 게 적지 않다. 작은 허세일망정 지키게 하였으며,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생활을 반추하게 해 주었다. 살다보면 생기기 마련인 크고 작은 매듭마다 잊지 않고 새길 수 있게 하였으며, 서연이의 소중한 성장 과정을 간직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보다 더한 것들도 주었다.

한동안 이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말이 그대로 거짓이 되든, 사는 모양이 거짓을 증거하든 할 거라는 예감에 눌린다. 스스로를 배반하는 걸 언제,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이기든, 배반이 이기든, 멋지게 타협하든, 죽도 밥도 절도 다 떨어지든 할 테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후지 오토오토400

M6 스무 번째 롤

신상에 제법 큰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더 있을 것 같다. 진득하니 뭔 일을 못하는 놈이 딱 때가 된 게지, 하다가도 이게 영 엉뚱한 데로 접어드는 건 아닌가, 한다. 자꾸만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 같지만, 두 번째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든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코닥 프로이미지100

M6 열아홉 번째 롤

맑은 가을날 산에 올랐을 때부터 사진이니 오래 되어도 한참 오래 되었다. 한 롤 맡기나 두 롤 맡기나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데, 두 롤 모으려면 봄은 되어야 할 것 같아 나간 김에 맡겼다. 어떤 예쁜 이미지를 찍어보고 싶단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하는데, 언제 한 장이라도 찍어볼지 모르겠다.

중앙통 거리는 그래도 성탄과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분주한 사람들 가운데 천천히 먼 길을 가는 사람들 생각에 잠시 잠겼다. 찬 바람에 담배 연기가 한참 머물다 흩어지곤 했다.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코닥 포트라160vc

M6 열여덟 번째 롤

지난 일요일, 모처럼 산엘 올랐다. 서연이가 잘 걸어준 덕에 충혼탑 옆 주차장에서부터 약수터 조금 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저녁에 신천이라도 매일 걸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정색을 하고 책으로 펴낸 글보다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더 살갑고 재미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웹에서는 뜻은 좋으나 여러모로 문장이 난삽하여 얻을 것만 얻고 지나치게 되는데 막상 펴낸 책은 잘 다듬어져 있어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다. 앞의 것은 정민의 책 읽는 소리를 다 읽고나서 느낀 것이고, 뒤의 것은 우석훈의 책들을 짧게 훑어보고 느낀 것이다. 선비의 삶을 비롯하여 옛글을 읽는 재미야 유별난 데가 있지만(특히 정민처럼 문장이 좋은 경우에는 더욱), 한 가지, 술 익었다 대신 부르러 가고 편지 전하러 가는 종놈이나 당시 세상을 떠받치던 생산자들의 눈과 세계는 어쩐단 말이냐,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조선일보 기고 글이 많아서일까, 괜한 트집이라도 잡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킹콩을 빌려다 봤는데, 다른 건 다 몰라도, 킹콩이 많은 일을 끝낸 것처럼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은 오래 안 잊혀질 것 같다. 그 장엄함과 우수라니.

평생 마실 술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노을처럼 오래 오래 붙들고 싶다. 인정이고 술이고 아낄밖에.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후지 오토오토400

M6 열일곱 번째 롤

마음에 바람 불고 늦게 난데없이 비 내리던 날 그때, 그리고 녀석의 네번째 양력 생일날.

어쩌다 여의도에 갈 때마다 대통령 후보를 만나게(?) 되는데,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는 당시 민주당 경선 후보이던 노무현을 욕탕 안에서 만나 목례를 주고받은 적이 있으며, 얼마 전에는 탈의실에서 후보 확정 직전의 이인제를 만나 악수를 나눴는데, 이번에는 야밤에 맥주 한잔하다 권영길 후보와 일행들을 만나 몇 차례 악수를 하고 몇 마디 말도 나눴다. 일행 중 한 분은 자꾸만 나에게 면이 익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이번에 난생 처음 한강 유람선을 타보았다. 누구라도 한 번 타보고는 다시 타진 않을 것 같았지만(만나는 상대가 바뀐다면 모를까), 뱃전에 서서 바람을 맞는 기분이 상쾌했다. 조각난 달이 계속 따라다녔다.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코닥 포트라160vc

M6 열여섯 번째 롤

지난 번 술병을 핑계로 미룬 서연이와의 약속을 지키러 다닌 일요일 하루. 이발하고, 어린이회관으로, 수성못으로, 앞산공원으로 열심히 다녔다. 어린이회관에서 문석이형과 그 아들 대범이를, 앞산공원에서 철환이, 미영이 내외와 그 아들 유를 만났다. 목적지를 이동하는 동안에는 차를 탔지만, 앞산공원에서는 앞산네거리까지 걸어 내려왔다. 사람도 없고 어두운 밤이라 서연이를 업고는 내 기분에 취해 많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을빛과 마지막 시간 운행하는 케이블카 위에서 본 야경이 아름다웠다. 근 열흘간 네 컷 남은 걸 소진하지 못해 어제 아침 대충 찍고는 0124님께 맡겼더랬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코닥 프로이미지100

M6 열다섯 번째 롤

두 롤 채워 맡기려다 보니 무지 오래된 사진들이다. 0124님 퇴근길에 올리브칼라에다, 어제 맡겨서 오늘 찾았다. 뒤의 사진들은 9월 2일 벌초하러 가서 태어나 세살까지 산 의성 고향집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비가 온 탓도 있지만(그렇기 때문에) 예쁜 사진들을 더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직도 이 사진기를 막 굴리지 못하겠다.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summicron 50mm 3rd, 후지 오토오토400

M6 열네 번째 롤

초복에 서연이 외가에 들렀다가 성북교에서부터 신천을 따라 칠성시장까지 걸었다. 집까지 걸어오고 싶었지만 이 녀석 해찰이 심해 다리 두어개 지나는데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다. 칠성시장에 온 김에 옛날 족발을 좀 사왔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이랑 ‘처음처럼’ 하나를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오늘(제헌절) 덜 찍은 필름을 소진하며 올리브칼라에 필름 맡기러 가는 길에 몇 컷.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summicron 50mm 3rd, 코닥 프로이미지100

M6 열세 번째 롤

지난 토요일, 모처럼 서연이를 데리고 이십대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대명동 계대를 찾았다. 그전에도 한 번 들렀을 때 느꼈지만 새로 한 조경은 여전히 낯설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어른이 되고 처음 어릴 적 초등학교를 찾은 것 마냥 모든 게 작고 사랑스럽게 느껴져 무척 기이한 기분이었다. 학생회관 앞 계단과 돌벤치가 이렇게나 작았다니, 기념으로 만들어놓은 조금 큰 모형을 보는 듯 했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후지 오토오토400

M6 열두 번째 롤

비 내린 달성공원, 그리고 교보문고에서. 자못 진지하게 책 보는 모습의 다섯 번째 사진이 마음에 쏙 든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코닥 포트라160vc

M6 열한 번째 롤

아무래도 원 바디 원 렌즈로 계속 가기는 어려울 게고, M6 특성도 그렇고, 35미리 하나, 50미리 하나로 꾸리니 만족스럽다(RF 카메라의 장점 중 하나라는 파인더로 프레임 바깥을 볼 수 있다는 걸 느껴보고 싶었다. 서연이를 찍기에는 조금이라도 더 망원에 가까운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둘 다 비교적 작고 예쁜 것도 마음에 든다. 사실 50미리 중에서 작고 예쁜 축에 든다는 이 녀석을 막상 보고서야 갖고 있던 35미리가 얼마나 작고 예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간혹 즈미룩스나 엘마가 기웃거려지기는 하겠지만 오래오래 갈 것 같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후지 오토오토200

M6 열 번째 롤

내일이나 비가 올 줄 알고 셋이서 작은 우산 하나 챙겨 바람 쐬러 나섰다가 애를 먹었다. 달성공원에 도착하고부터 올리브칼라로 교보문고로 아덴힐즈 동아쇼핑점으로 다니는 내내 비가 내렸다. 로커클럽 회원이라고 둘러대고 삼천사백원에 두 롤 스캔을 맡겼다. 모아서 맡기려다보니 좀 지난 사진들이다.

서연이가 그제부터 어제까지 어린이집에서 경주 한화콘도로 여름 캠프를 갔다 왔다. 서연이 없이 둘만 있게 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유를 만끽하고자 둘이서 롯데시네마로 영화 보러 갔다가(밀양 볼래다가 무거워질 것 같아 캐리비안의 해적을 봤다. 1편보다 조금 산만하였다) 오사카 회전초밥집에 들러 간단히 밥을 먹는데 전에 같이 온 생각에 보고 싶어 혼이 났다. 어제 오늘 애를 먹이는 걸 보니 언제 그랬나 싶지만.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후지 오토오토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