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정든 텍스트큐브를 떠나 워드 프레스기반으로 블로그를 옮기고 있다. 한참 때를 지난 탓에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었으나 AI와 협업 끝에 어찌어찌 틀은 갖춰 가고 있다. 낯선 데다 오류가 난 부분도 있고 이미지가 들어간 포스트는 전부 손을 봐야 해서 아직 일은 많이 남아 있다. 대략 마무리를 하고 나면 전의 주소로 연결할 계획이다. 본문과 본문에 달린 댓글은 일부 손상이 있어도 다 옮겼는데 방명록은 옮기지 못하였다. 새 페이지를 만들어 댓글 형식으로라도 방명록의 글들을 옮길 수 있겠다는 AI의 조언에 따라 별별 걸 다 해보다 만들어진 것 중 하나를 흔적이라도 남겨두고 싶어 지난 블로그의 이미지와 함께 올려 둔다. 그리운 이름과 사연들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겠구나.
종국에는
감정도 세상도 무뎌지기 마련.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걸 만드는 거라지. 나는 나를 만들었으되 내가 아닌 것처럼 떠날 모양이로구나. 다음은 이대흠의 ‘애월(涯月)에서’ 전문. 뭐랄까, 너도 붙박이별이 아니었달까.
당신의 발길이 끊어지면서부터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른 마음은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려옵니다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
파도는 제 몸의 마려움을 밀어내며 먼 곳에서 옵니다 항구에는 지친 배들이 서로의 몸을 빌려 울어댑니다 살 그리운 몸은 불 닿은 노래기처럼 안으로만 파고듭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불빛도 물에 발을 들여놓으면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집니다 먼 곳에서 온 달빛이 물을 만나 문자가 됩니다 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어둠에 눅은 나는 읽을 수 없습니다
달의 난간에 마음을 두고 오늘도 마음 밖을 다니는 발걸음만 분주합니다
처음인 듯,
그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꽃이 필 때 소리가 난다고 했나. 어쩌면 그 고개를 넘을 때 내가 들었던 소리.
잘 있다가도 안 좋을 때면 더 안 좋게 만들어버리고 독에 물든 놈처럼 갈 데까지 가보는 습성을 이제야 버릴 수 있으려나. 진짜 나이가 드는 건 또 지금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무엇이 그렇게 괴롭고 힘들다고, 그 작은 가슴들마다 그렇게 상처를 남겼는지.
다르게 살아야겠구나. 그래, 그래야겠구나.
하지를 지나며
어제 해가 유난히 길어 보이더니 오늘이 하지로구나. 다섯 시 구 분에 해가 떠 일곱 시 사십사 분에 진다고 하니 열네 시간 삼십오 분이 낮인 셈이다. 동지를 지나며 새해, 새봄을 맞는 기분으로 가는 해와 이른 가을 냄새를 맡아볼 일이다.
해가 길어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늘어만 가던 몸무게가 열다섯 근이 줄었으며 압력이 조금 낮아졌다. 알 수 없는 피부 질환에 시달렸고 낯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술에서 많이 멀어졌다. 밤이 길어지는 동안, 여전히 달라질 건 없지만 또 많은 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다음은 정호승의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무정처
오랜 시간이 지나고, 길 하나 건너. 네 땅과 네 하늘이 맞닿은 날, 절이 절로 열반에 들었구나. 탄창이 비었어. 손가락보다 크고 발가락보다 큰 물집에는 누가 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문득. 그럼, 가던 길 가는 거지. 소리쳐 합장하고, 부처도 없이.
에헤야
언제부터일까. 새로 추억할 거리는 생기지 않고 지난 추억은 하나둘 사라져 간다. 늘 그랬다. 어제는 오늘보다 어렸고 돌이켜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늘 열에 들떠 있거나 축 늘어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왜 조금 더 세련되고 조금 더 성숙하지 못했을까. 무슨 배짱으로 이리저리 재지 않고 사고나 행동에 거침이 없었을까. 돌아오지 않을 순간인 줄 왜 몰랐을까. 타고난 호흡이 거칠어 짧은 글밖에 쓰지 못하고 바로 앞도 겨우 살피면서 어쩌자고 그랬을까. 잘아빠진 성정에 모든 게 헐렁하더니 달고 긴 잠에 취해 가는 곳 몰랐구나. 돌고 돌아 제자리 맴맴이었구나.
저무는 꿈
대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주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으며 그릇을 넓히되 더 담으려 하지 않고 불완전한 것을 사랑하려 애썼다. 삶의 한때를 허투루 보내기도 하였으나 빛나는 한때를 옛 나무에 새기기도 하였다.
어느 날 보니 몇 년씩 뭉텅이로 사라졌던데 이제 그만 해롱거리고 남은 세월 어찌 지나나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문득, 열꽃처럼 번지는 옛 사랑을 만났다.
낙치, 백발이야 막으랴만 가는 길 돌아설까 하니, 저 앞에 보이는 것이 네가 아니냐. 울긋불긋 지나온 날들이 아니냐. 기다리는 것이 훗날이요 옛날이 아니냐.
저무는 꿈을 꾸었구나. 저물되 저물지 않는 꿈을 꾸었구나.
별의 길을 찾아서
지지난 금요일, 하루 연가를 내고 결혼 25주년을 핑계로 0124님과 부산에 다녀왔다. 대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보수동 책방골목, 깡통시장,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자갈치시장, 해안시장을 두루 다녔다. 생선구이와 참가자미회, 도다리쑥국을 먹었고 상비약도 샀다. 돌아보자니 그 골목길, 삼랑진, 물금, 구포 같은 이름들과 주먹만한 동백꽃들이 떠오른다. 열차 창밖으로 먼 꽃나무들이 예뻤다.
별을 따라 바른 길을 간 한 소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넓은 길도 아니고 빠른 길도 아닌, 별의 길을 찾아서.
다시 한 번, 가볍게 먹고, 비우고, 움직이기로 마음을 다진다. 다음은 이근배의 냉이꽃.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평생을 모른다
초가집이 살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음이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부처꽃
허무를 허물고 나는 가네 눈먼 새처럼 작은 집을 지었지 마른 잎들과 해묵은 감정들과 철 지난 이데올로기들 걷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네 사랑에 눈먼 작은 새처럼 훨훨 저 길 끝에 닿고 싶었네
저 길 끝이 먼저 닿아 해거름에 꽃을 피웠네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명 같던 줄을 세월에 묻고 하염없이 적멸을 기다리는 거미처럼 허문 마음들이 더는 꿈도 꾸지 않으리라
그날
잔존 알코올이 우군을 부르는 저녁, 무단으로 네 기억을 횡단한다. 달라질 수 있을까. 노을 질 무렵이면 밤과 낮처럼 다시 볼 수 있을까. 꽃 먼저 두고 봄이 오듯 너를 두고 청춘이 가는구나. 홍매와 백매가 어우러진 날 벽력 같은 눈이 내렸지. 다 길이 되던 세상, 온통 하얗기만 하였을까. 새 알코올이 잠식하는 동안 눈 위에 찍힌 저 자국이라니.
차곡차곡
벽돌을 한 장 한 장 얹어 집을 지었네. 한쪽으로 창을 내고 다른 쪽으론 흔들의자를 두었지. 흔들흔들거리며 살 거라고,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잠들 거라고. 꽃나무를 심고 닭을 키우며 살고 싶었네. 먼 못에서 세월 같은 물고기 몇 마리 낚으면 나도 그만 목이 메어 한물간 가수들처럼 노래도 불렀으리라. 불멸자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멸자에게 운명이란 무엇인가. 인연 가루에 외로움 몇 방울 이겨 알록달록 살림을 차리고, 칸살 너머 달이 뜨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떠올리며 술잔도 비웠으리라. 슬픔과 설움 같은 것들을 헐어 봉분 같은 집을 지키고 차곡차곡 꿈들을 접었으리라.
올드 리프
그때 너는 어리고 어리석어 운율과 운행을 알지 못했다. 생멸의 이치를 몰랐다. 네 날개는 사라졌다. 부토니에에 꽃 대신 나비가 내려앉았다. 이제 그만, 가도 그만. 작은 구멍에 훨훨 나는 꿈만 남았다. 삐딱한 저 세계를 보라. 그예 달이 떴지 않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