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

토요일 하루 재미있게 보내기로 마음 먹고 정오쯤 길을 나서는데, 이 녀석이 꼭 사진기를 가져가잔다. 해서 50미리 하나 달랑 챙겨 나섰다. 시원한데서 0124님 일 마치기까지 다섯 시간 가량 보낼 요량으로 이마트 칠성점으로 갔다. 메가박스에서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을, 한 이십분 가량 보고 잠든 녀석 덕에, 혼자 잘 봤다. 노래가 썩 괜찮았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정글나라 놀이방에서 잠시 놀다 0124님과 형수네 식구들을 만났다.

인근 송정동태에서 냉면이랑 동태찌개로 저녁 먹고, 형수네가 가기로 했다던 우방랜드로 나들이 갔다. 마냥 흥겹고 씩씩한 아이들과 무더위 덕에 지치고 힘들었지만, 뭔가 해낸 뿌듯함으로 우리는 우리를 달래기 위해 자정 가까운 시간에 계전 돌계단 아래 HAMA 호프집으로 향했다. 시원한 맥주가 피워낸 난데없는 한밤중의 이야기꽃은 아줌마들의 의기투합으로 다시 이마트 칠성점 근처 형수네 집에까지 이어졌다.

복분자주 몇 개 비우고, 아이들부터 아줌마들까지 하나하나 잠이 들고, 동이 트는 걸 보고서야 형수도 나도 잠이 들었다. 멍한 가운데 아픈 속을 달래고자 들안길 바르미 칼국수에서 점심을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니 오후 네시가 가깝다. 이래저래 휴가는 끝나고, 어디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듯, 피곤한 가운데도 즐겁고 따뜻하다. 근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이 휴가가 나의 일상 같고 또다시 출근하여 일을 하는 게 특별한 활동 같으니, 쩝.

여름, 휴가

짧은 술자리가 불러온 상념들.

처한 환경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 봄은 겨울이 끝나서, 여름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 나른함이 싫어서, 여름은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어서, 가을은 아아 너무 짧아서, 떨어지는 그 잎들이 너무 아쉬워서 그럴 수 있겠지, 겨울은 춥고, 어떤 날,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갈 데란 게 그리 많은 게 아닌데, 그럴 수 있을까, 이것도 다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희망찬 생각을 해 보자고, 봄은 이른바 만물이 돋아나고, 추운 겨울이 가고, 여름은 자라날 대로 자라나고, 따사로운 햇살을 우리가 알게 하고, 가을은 여름이 가고, 아아 여름이 가고, 사는 보람을 일으키고, 기다리는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은 움츠리고, 예비하고, 모이고, 사랑하는데, 아아, 이렇게 다 사랑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한 번 돌이키면 다 사랑할 수 있는데, 지금, 이, 여름만은, 이것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구나. 너무 더워 어쩔 수가 없구나. 그 때문에 사랑하던 나머지도 다 어쩔 수가 없구나.

어제부터 시작한 여름휴가. 어제는 하루 종일 빈둥대고(티브이를 통해 살인의 추억과 쇼생크 탈출을 번갈아 보았으며,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와 마찬가지로 웹에서 다 읽은 줄 알면서 구매한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와 심심풀이 땅콩인 줄 알고 산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들추다 말다 하였다), 오늘은 망설이다 외출을 감행하였다. 볼 영화가 없어 헤매다 중앙시네마에서 ‘한반도’를 예매하고 교보문고엘 잠시 들렀다. ‘제일서적’이 완전히 없어진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촌놈마냥 예전 로얄호텔 건물을 한참이나 올려다봤더랬다. 문태준의 새 시집과 미시마 유키오를 만났다 라는 소설이 기억에 남는다.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이 둔황의 사랑으로 문지에서 새로(?) 나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읽었던 죽음의 한 연구(내가 읽은 죽음의 한 연구는 옛날 종화형 자취방에서 무작정 뽑아 들고온 것이었다. 그 책이 눈에 띈 것은 기억하건대 세계의 문학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아 실린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보고서였다. 절대 돌려주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오래 갖고 있다 몇 번 독촉받고는 돌려주고 말았다) 개정판을 살까 말까 잠시 망설였으며, 통로까지 차지하고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놀랐다.

한반도 흥행이 괴물에 뒤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우석은 완성도에 대해서만은 관객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우쳤을까. 과도한 캐스팅이 눈에 띄었으며, 교전권을 부여받는 제독과 대통령의 무전에서는 찬 에어컨 바람을 무색케 할만한 전율이 일었음을 고백한다.

지나치기 전에, 소통, 연결, 연대, 이렇게 적고 보니 그 옛날 술친구 생각도 난다마는, 그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도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란 말인가. 아아 십년도 넘은 그 시절 그와 같은 이야길 내뱉은 그녀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아, 이 기분이란

온종일 주물럭거리다 J.Parker님의 블로그에서 받은 썸네일 리스트 출력 및 사이드바 랜덤 이미지 출력 플러그인을 설치하였다. 돌이켜보니 뭐 더 친절할 수 없는 설명과 댓글에 이어진 문답들이었는데, 백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이해하고 설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플러그인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점이 그 유용성이나 깔끔함 못지않게 설치의 간편함이다. 안 그래도 설치하기 쉬운 플러그인들만 설치하고 이 플러그인에 대해서는 부러 피하고 있었던 터이다).

특히 어려웠던 대목들.. 제어값을 설정한다는 config.php 파일을 도대체 어떻게 열어서 수정한다는 말일까. 블로그설치URL/blog/category/index.php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이드바용 치환자는 어디에 넣어야 내가 원하는 곳에 나오는 거지?

차례로 하나하나 알고 적용하였을 때의 희열감이 끼욱끼욱 산에 올라 드디어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세 봉우리는 오른 기분이 아닐 수 없다. 이 기분을 이렇게나마 아니 남길 수가 없다.

반란하는 일상

내가 반란이라 여기는 그것, 그것이 그녀에게는 일상이다. 반란의 날이 일상화될 때, 그것이 삶이 될 때, 그 반란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일상화되지 않은 나의 반란에 나는 치를 떤다. 그것이 내 삶을 지탱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주기는커녕 내 평화로운 일상을 깨는 무기가 되어 일상의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울 때, 그래서 그것이 내 저 의식의 심저를 날선 칼이 되어 찌를 때, 나는 절망한다.

공선옥의 소설 우리 생애의 꽃(‘피어라 수선화’ 1994. 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연습 삼아 시험 삼아, 일상을 무기 삼아..

Tistory 소식 보다가, 링크에 무지개 효과를 주는 플러그인을 JustKidding님의 블로그에서, 각주 다는 플러그인(처음 만든 분은 Gofeel님이라고..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을 dizzle님의 블로그에서 받아 설정하였다.

저녁에 추가로 태터툴즈 홈의 플러그인 다운로드에서 Daybreaker님의 링크 새 창으로 열기 플러그인을 받아 적용한다.

거제, 괴물

한 모임에서 27~28일 이틀간 거제엘 다녀왔다. 고성 공룡나라휴게소, 녹차 음식, 한산도 제승당, 달아공원, 여차해수욕장, 능성어와 돔, 노래방, 해물된장찌개, 삼천포대교, 연어튀김과 참게탕, 파이어월과 음란서생, 비오는 섬진강이 기억에 남는다. 차 탄 시간이 너무 길었고, 역시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분명하다)에 시달렸다. 저녁에는 또 다른 모임에서 식구들이랑 ‘괴물’을 보고, 마달네랑 형석이네랑 뉴욕뉴욕에서 간단한 식사와 호프.

괴물은 봉준호라는 이름과 몇몇 스틸에서 연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였다. 그래서 기대와 달랐는지 모르겠지만, ’80년대’를 연상시키는 몇몇 장면들이 흥미로웠다. 다시 보는 후일담이랄까. 괜히 상념에 젖기도 하였는데,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고 이미지만 차용한 듯한 방식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왔다.

팩, 비니

휴일 이틀을 또 시체놀이하며 보냈다. 많은 술이 버겁다.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를 다 읽고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를 슬쩍 들추어보았다.

비니가 잘 어울려 몇 컷, 그리고 며칠 전 엄마 팩하는 옆에 누운 따라쟁이.

우리글 바로쓰기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였는데, 우리글 바로쓰기 2권 뒤표지에 다음과 같이 써 있다. 눈에 확 띄는 이 ‘입장’

우리 지식인들은 분단 반 세기 동안 ‘입장’이란 일본말 하나도 바로잡아 쓰지 못했고, 아직도 바로잡을 생각조차 안하면서 끊임없이 병든 말을 퍼뜨리고 우리 말을 죽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방방곡곡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든 글에서 벗어나 말로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우리들 편임을 산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연휴 때 들춰본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서 이오덕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보았지만(이오덕은 민족의 언어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를 강조한다. 글말에까지 구어체를 강요하는 것은 우리말의 문체를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 있고 올바른 것으로 보지만, 결국 자신의 언어를 선택할 때는 어떡할 것인가. 문제의식을 유지하고 전제하되 이오덕에게 나아가면 어떨까.

뭐랄까

술을 잔뜩 먹고 들어가 김동건과 김지하가 마주 앉아 뭔가 이야기 나누는 걸 보았다. 무슨 심사가 뒤틀렸는지 냅다 감정대로 싸지르고는 아침에 이렇게 다 지우고 올린 시만 남긴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뭔가 이렇게 슬프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I’ve seen it all

볼 때는 재미있게 보고 첫 손 꼽을 만큼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다시 보게 되지 않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다. 파이란, 박하사탕, 올드보이 같은 영화들이다. ‘비극(적)’이어서일까, 어쩌다 채널 서핑 중 방영하는 걸 보게 되면 한참 고정하고 보게 되지만(끝까지 보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사다 놓은 디브이디 타이틀도 다시 보게 되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도 그랬다. 디브이디 타이틀을 사서 보았는데, 그래도 구입한 디브이디 타이틀 중 가장 아깝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웬만한 시디보다 자주 재생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본 경우는 한 번도 없지만, 영화음악 골라 듣듯이 한 챕터(열세번째 챕터!)만 계속 반복하여 보고 듣곤 한다. 오늘도 연휴 마지막 날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보다가 문득 떠올라 오랜만에 디브이디 전원을 켜고 이 챕터만 반복하여 보고 들었다. 노랫말과 주인공 비요크가 직접 부른 그 애절한 노래, 그리고 그 영상(어떻게 이런 편집을 할 수 있었을까)에 푹 빠져서. 이 놈의 음치는 영상 없이는 음악이 들리지 않으니 더욱 그럴밖에.

  I’ve seen it all, I have seen the trees,
  I’ve seen the willow leaves dancing in the breeze
  I’ve seen a man killed by his best friend,
  And lives that were over before they were spent.
  I’ve seen what I was – I know what I’ll be
  I’ve seen it all – there is no more to see!

  You haven’t seen elephants, kings or Peru!
  I’m happy to say I had better to do
  What about China? Have you seen the Great Wall?
  All walls are great, if the roof doesn’t fall!

  And the man you will marry?
  The home you will share?
  To be honest, I really don’t care…

  You’ve never been to Niagara Falls?
  I have seen water, its water, that’s all…
  The Eiffel Tower, the Empire State?
  My pulse was as high on my very first date!
  Your grandson’s hand as he plays with your hair?
  To be honest, I really don’t care…

  I’ve seen it all, I’ve seen the dark
  I’ve seen the brightness in one little spark.
  I’ve seen what I chose and I’ve seen what I need,
  And that is enough, to want more would be greed.
  I’ve seen what I was and I know what I’ll be
  I’ve seen it all – there is no more to see!

  You’ve seen it all and all you have seen
  You can always review on your own little screen
  The light and the dark, the big and the small
  Just keep in mind – you need no more at all
  You’ve seen what you were and know what you’ll be
  You’ve seen it all – there is no more to see!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보면 이 챕터도 사실 꽤나 비극적인데, 어째 자꾸만 보고 싶은 걸까. 같이 등장하는 피터 스토메어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영화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