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을 한 장 한 장 얹어 집을 지었네. 한쪽으로 창을 내고 다른 쪽으론 흔들의자를 두었지. 흔들흔들거리며 살 거라고,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잠들 거라고. 꽃나무를 심고 닭을 키우며 살고 싶었네. 먼 못에서 세월 같은 물고기 몇 마리 낚으면 나도 그만 목이 메어 한물간 가수들처럼 노래도 불렀으리라. 불멸자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멸자에게 운명이란 무엇인가. 인연 가루에 외로움 몇 방울 이겨 알록달록 살림을 차리고, 칸살 너머 달이 뜨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떠올리며 술잔도 비웠으리라. 슬픔과 설움 같은 것들을 헐어 봉분 같은 집을 지키고 차곡차곡 꿈들을 접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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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리프
그때 너는 어리고 어리석어 운율과 운행을 알지 못했다. 생멸의 이치를 몰랐다. 네 날개는 사라졌다. 부토니에에 꽃 대신 나비가 내려앉았다. 이제 그만, 가도 그만. 작은 구멍에 훨훨 나는 꿈만 남았다. 삐딱한 저 세계를 보라. 그예 달이 떴지 않느냐.
사월을 노래하며
이상한 일이다. 그때나 지금의 인연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기억과 사실과 상상이 뒤섞여 앞과 뒤가 분간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살아 있고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 번 본 건 기억을 할 수 없다. 한 번 얘기한 것이나 한 번 들은 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우리는 비극만의 서사를 가졌다.
죽은 사람과의 의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 목련이 하얗게 필 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비극적 서사 위에서만 희망과 전망이 있을 수 있다. 비극 위에서만 극적 의미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전부일 수 있다. 그때 살아온 굴곡과 질곡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뭘 미루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나중 먹을 술을 위하여 지금 술을 아껴야지. 사월을 노래하며 다음을 기다리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나야지.
바람의 꿈
처음 제식을 만든 이들과 처음 예식을 행하던 이들, 열과 빛을 나누고 소리 없는 명령을 이행하던 그들, 허무를 감당하는 영혼들처럼 그렇게, 꿈을 꾸는 자, 열매를 품은 씨앗, 눈밭에 쓰러진 토끼, 목매단 꿩, 나무를 닮은 닭들과 함께, 복권 없는 당첨을 바라며, 과거로, 우주로, 기억으로 기억을 지우고 망각을 망각으로 대체하며, 먼지처럼 흩어질 자 누구인가. 어제 같은 해가 뜨고 어제처럼 한 세계가 진다.
먼길
꿈을 꾼 걸 보니 잠을 잔 게로구나. 오래 헤맸으니 오래 머무렴. 호랑가시나무 새빨간 열매, 오래 걷고 오래 견딘 저 피로를 보렴. 잎맥에서 길을 찾았느니 떡갈나무 너른 품이 좋아라. 에헤야, 간단다 간단다 저리 저멀리.
그래, 지고 가야 할 것이 있고 두고 가야 할 것도 있겠지. 다음은 목성균의 수필 새벽 등산 첫 문단. 그러고 보니 새벽에 산에 오른 적이 없구나. 날이 좀 좋아지면 꼭 한번 올라 행렬을 함께하리라.
새벽 산에 올라가서 자고 난 맑은 눈으로 날 새는 건너 산을 보면 먼길 떠나는 나무들의 행렬이 보인다. 나무들은 곁에서 보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먼길을 와서 먼길을 빙하처럼 아주 천천히 산을 통째로 밀고 간다. 그건 욕계(欲界)가 깨어나기 전, 신새벽에나 볼 수 있다. 밝아 오는 산등성이의 나무를 보면 비로소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길은 단숨에 달려가려는 자발적인 출발의 가까운 길이 아니다. 묵묵히 댓돌에 앉아서 한참 동안 마음을 모아 신들메를 매고 비로소 천천히 무겁게 일어나서 사립을 나서는 남자의 굽힘 없는 의지 같은 아주 먼길이다. 서두르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평생 동안 가야 할 먼길. 날 새는 건너편 산등성일 건너다보면 나무의 가는 길이 보인다.
가을산
노랗거나 붉게 물든 잎을 떨어뜨리는 감나무를 보다 문득 어린 시절 감꽃을 실에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서 주던 여자아이 생각이 났다.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 그 마음이 소년의 새처럼 작은 가슴과 함께 문득 생각이 났다. 아침에 산을 찾아 걷다 가을산이 생멸하는 모든 것들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을 빌려 우우 우는 소리인 줄 알았더니 늘 거기 있던 겨울산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다음은 송찬호의 만년필 전문.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에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비로소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 – 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 – 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울산대왕암
높은 압력에는 낮은 힘으로 오래 맞설 일, 밤이 되면 나무와 나무 사이 섬에서 근본을 생각하는 새처럼 이미 사라진 것들을 위해 목을 놓아 우노라. 저 길은 그해 지나온 길, 운행을 멈추고 질서를 궁리하는 어느 별처럼 하릴없이 공배를 메우며 다시 길을 가노라.
유난히 흐리고 비가 잦은 가을이다. 어제 단체로 울산대왕암에 다녀왔다. 자의왕후를 잠시, 그리고 오래 지난날을 생각하였다. 석 잔에 그친 감회가 따사롭다.
울울창창 푸른 바다에
산금의 노래 드높구나
대왕의 길을 가는 이 누구인가
왕후의 넋이 애닯도다
암릉에 서린 날들이 내일을 말하리라
가을이 오고
새 막이 오르듯 가을이 오고 청춘이 간다. 먼일을 생각하며 뜨거운 세월을 욕조에 가두고 탄산수에 위스키 풀 듯 몸을 푼다. 어떤 가려움과 어떤 미련 같은 것들이 부수수 솟아나 풍미가 사라진 알코올을 따라 흐른다. 흐린 기억들이 하나둘 살아났다 사라진다.
바둑, 책 읽기, 영화, 드라마, 음악 감상, 걷기, 카메라 만지기, 블로그 운영, 식물, 열대어 키우기, 만년필, 위스키 즐기기, 반신욕, 그리고 공상과 망상 정도로 취미가 이어지고 있다. 수박 겉핥기식이나마 계속하는 것도 있고 멈춘 것도 있다. 약간 수집벽과 정리벽이 있어 진짜 취미가 집이나 공간 가꾸기가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다.
새처럼 작은 가슴에 새처럼 작은 마을이 산다. 너그럽지 않은 날들이 간다.
제주도
지난 수요일, 0124님의 갑작스런 제안에 응하여 당일치기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침 6시 35분 출발하여 저녁 8시 25분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 중문면세점에서 카발란 비노바리끄와 아벨라워 아부나흐를 사고, 주상절리대, 송악산을 들렀다가 협재로 넘어가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왔다. 역시 더울 때에는 어디 나다니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하였지만, 모처럼 쐬는 바깥 바람이 나쁘지 않았다. 산방산과 송악산 앞 바닷빛과 애월 쪽 길 느낌이 좋았다. 지나다 우연히 본 귤림성 이정표가 반가웠다. 투덜거릴 줄이나 아는 부실한 몸뚱아리를 데리고 종일 운전하며 다닌 0124님의 노고 덕에 호사를 누렸다.
위스키를 모아놓고 눈호강이나 하며 어쩌다 몇 잔 먹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취하는 자리, 취하는 사람이야 그립지 않으랴만, 어쩌랴, 그립다고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