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을 들으며 글렌캐런 잔에 발베니를 따르고 절인 올리브를 곁들인다. 황금을 삼키는 동안, 여러 가수의 여러 음색을 따라 시름이고 세월이고 저만치 물러난다. 가을이요, 몰락이다. 이 밤은 그래, 반복이다. 충돌로 파멸이어도, 다시 별이 별을 만난다.
술
안녕
말을 많이 한 날 밤은 공허하다. 그럴듯한 말을 한 날은 더욱 그렇다. 역시 덜 깬 상태가 덜 취한 상태를 능가한다. 멀리 있는 술집도 가지 않는 내가 오늘은 멀리 있는 너를 그린다. 지나는 문장마다 너를 생각하며 빼거나 더한 대목들이 적지 않았다. 온전히 내가 나였던 시절, 고스란히 나의 전부를 던졌던 그때. 철없이 겁도 없이 내닫다 내일도 없이 주저앉기도 했지만, 선홍의 꽃을 끝내 대궁 끝으로 밀어 올리기도 했다. 치열하게 울고 허무하게 지기도 했다. 세상을 버리고 너를 버리고 갈 일이 아득하다. 완벽주의자, 완벽한 현실주의자는 우울로 스스로를 버릴 수밖에 없다더라만, 비어야 채울 수 있다는 거짓말을 믿기로 한다. 세상아, 너를 만나 즐거웠다. 취할 수 있어 좋았다. 기다려라. 이제 너에게 다른 세상을 알려 주마.
술과 죽은 노래를
형식이 내용을 추동하매, 나는 이게 슬퍼 가을도 겨울인양 술을 부른다. 술도, 비슷하거나 다른 연유로 술이 마른 이들도 나를 찾는다. 불렀으나 외면하던 때를 생각하고, 그게 더워 나는 거절이란 걸 모른다. 누가 있어 어느 날 문득 손짓할 수 있다면, 응답을 듣지 못한대도 나는, 마냥 어린 아이처럼 설레고 들뜰 테다. 오랜 옛날, 누가 얘기하는 걸 들었지. 경계보다 아찔한, 날선 작두를 타며 술과 죽은 노래를 나누었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그 노래에 사랑을 안고 떠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살을 발랐고, 노래에 칼을 품은 사람은 여기저기 묽은 피를 토하였단다. 죽음이 영원하다면 이 노래도 영원하리라. 머리칼이 자라듯 영원히 자라나리라. 영원의 죽음과 죽음의 죽음까지, 죽음이 영원하다면 이 노래 또한 영원하리라. 뼈가 발린 사람도 피를 마신 사람도 함께 푸르게 타오르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옛날이야기는 옛날에 숨이 멈추었는가. 죽은 노래가 생각나, 올 가을도 술을 불러 낮게 귀를 기울인다.
봄, 그러나
다음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주제 사라마구. 늘 맹세를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의지가 약해서, 때로는 우리가 고려하지 못했던 어떤 우월한 힘 때문에.
* 지난달, 무려 0.049% 확률의 카드사 경품 응모에 당첨되었다. 애플의 아이팟 터치 2세대. 제세공과금 22%를 물고 손에 쥔 행운, 잠시 만져보곤 왜 ‘애플’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Old Partner
지난주 진료 후엔 워낭소리를 보았다. 소가 나오고 농촌 풍경이 주로 보일 모양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티켓에 찍힌 ‘Old Partner’에 눈길이 가더니, 보는 내내 그 영문 제목이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시골 사람들과 풍경도 내내 함께 하였다. 가장 좋았던 지점은 단 한 번 노인이 제 몫을 벗어나는 오랜 파트너의 면상을 모질게 후려치는 장면이었다. 그 한 장면으로 모든 리얼리티가 살고 다큐멘터리는 완성되는 듯 보였다. 어릴 적 시골 풍경도 온전히 되살아나는 듯 했다. 최근 60만 관객을 돌파하였다는데 반가운 일면 남이 하는 걸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이 동네 풍토엔 역시 살짝 질리기도 한다. 서편제를 본 그 많은 사람들은 보고난 후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문득 다시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특정한 이념이나 사람, 드물게 생업에 연관된 어떤 것들이 삶을 꾸리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되었으나, 그 중심엔 늘 술이 있었던 듯. 언젠가부터 그걸 축으로 전체 얼개도 짜고 일정도 잡았다. 과음과 폭음을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절제된 삶, 그게 가져다 줄 세상이 짐짓 두렵기만 하다. 꼬박 스물세 해 이어온 녀석들, 한 녀석은 영영 멀어질지도 모르겠다만, 다시 만났을 때 놀라거나 놀리지는 말아다오. 내가 어떻게 사랑하고 너에게만은 최선을 다했는지 잘 알 터이니.
여름, 0731-0805
재미있는 모양이다. 소식도 없이.
이렇게 아쉽고 안타까운 게 많아서야 어디 제대로 하직인들 할 수 있겠느냐.
오랜만에 집을 못 찾아 헤매 다녔다. 여기도 집 앞 네거리 같고 저기도 집 앞 네거리 같더니 집 앞 네거린 낯설기만 하였다. 발음이 꼬여 말도 말 같지 않았다.
일부런 듯 종일 TV를 보는데 문득 42인치 LCD TV가 괴롭히다. 욕 조금, 눈물 조금, 옛 생각 조금 하다 발로 밟아 끄다. 이만한 것에도 이럴진대, 못난 놈, 하다 TV를 끊을 생각을 하다.
이대로 사육, 당해도 좋단 생각, 잠시.
지난겨울 한때처럼, 그 길을 따라 오래 걸었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이 몸의 기억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프거나 다친 자국은 몸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 다 아물어 보이지 않아도, 마음엔 흔적도 없어도, 자칫 깊고 오랜 상처가 반복될까, 저도 모르게 짧고 얕게 지날 길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 담장 너머 보란 듯이 매달린 석류를 보았다. 그리워 그리워 꽃 진 자리에 그리다 그리다 맺힌 암반 덩어리.
인연이 아니면 인연이 아닌 것, 세상도 저도 나도, 길이 다르면, 그렇게 살다 가는 것.
세 번 이상 반복되면 그건 그런 거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헛먹었을지라도 나이가 가르쳐준 것, 먹은 태는 낼 줄 아는 거다. 시시한 세상, 이라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일도 그만큼 줄여줄 거고, 저도 이 여름도 결국 또 언제 그랬느냐 할 거다. 갈 길도 멀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주춤거리고 헤매는 시간이 밉지만은 않다.
* 준탱이 돌아왔다. 온산항에 잠시 정박하고 있다 모레쯤 입성할 모양이다. 일 년여 만이다. 그래도, 시간, 참.
오늘 늦냐길래 잠깐 야근하고 아직 임잔 없지만 간단히 소주 한 잔 할까 한댔더니 집까지 바래다주는 사람이랑 놀란다. 젠장, 그런 사람은 고사하고 허공에 대고 혼자 먹게 생겼다. 어디로 갈꺼나, 어디에 있을까.
사랑
아껴야겠다. 시간이나 사람은 몰라도, 술은.
* 오래된 퀴즈 하나. ‘O끼고 O하는 게 사랑이다’의 O에 들어갈 말은? 알고 나면 당연한 것 같지만 맞히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정답은 아, 위. 그러게 이제야 이들을 더 사랑하려 할 따름인 게다. 마치 섬광이 일듯 ‘술을 아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긍정적 사고의 힘인가, 평화가 흐르고 힘이 불끈 솟는다. 기특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 벤을 기리며 오랜만에 잭콕을 먹고, 그리운 소주를 먹었다. 잘 가, 벤.
Leaving Las Vegas
술자리 내내, 모처럼 밤길을 걸어 집에 오는 내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떠나지 않았다. 무리 속에서 혼자 벤을 생각하며, 벤과 대화하며 술을 먹었다. 그를 생각하면 더 큰 잔에 술을 붓고, 더 자주 잔을 들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잘 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바빴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羑里에서처럼 빤히 내다뵈는 걸 받아들이는 육조의 심정이었을까, 이제 그렇게 다 버리고만 싶었던 것일까, 종내 갈 수밖에 없는 시간의 가르침을 그저 따라간 것 뿐일까, 얼마 전 술 마실 적 심정으로 미루어 대꾸할 뿐, 더 오래 잔을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한 생애에 주어진 사랑과 ‘행복’은 유한할 터,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I’m Ben. I’m Sera. Sarah, with an ‘H’? With an ‘E’, S-E-R-A, Sera.
여름잠
장마대신 우기(雨期)라는 용어를 쓰자는 말을 들으니 밀림, 원숭이, 바나나, 세렝게티 초원 뭐 이런 게 두서없이 떠오르면서 눅눅하고 더운 기운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 낮 업무 보러 잠시 나갔다 왔는데 참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가본 적 없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디 가서 여름잠이라도 실컷 자고 왔으면 딱 좋겠다 생각했다. 이게 다 이것대로 즐기면 좋을 텐데 아직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중에서 한 대목을 재인용해 본다. 이춘풍이 아내에게 이르는 말로 원 출처는 古典國文小說選.
자네 내 말 들어보소. 사환 대실이는 술 한 잔을 못 먹어도 돈 한푼을 못 모으고, 이각동이는 오십이 다 되도록 주색을 몰랐어도 남의 집 사환을 못 면하고, 탑골 북동이는 투전 골패 몰랐어도 수천 금을 다 없애고 굶어 죽었으니, 일로 볼작시면 주색잡기 하다가도 못사는 이 별로 없네. 자네 차차 내 말 잠깐 들어보소. 술 잘 먹는 이태백도 노자작(鸕鶿酌) 앵무배(鸚鵡杯)로 백년 삼만 육천일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杯)에 매일 장취하였어도 한림학사(翰林學士)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하였어도 나중에 잘 되어서 일품 벼슬하였으니, 일로 볼지라도 주색잡기 좋아하기 남아의 상사(常事)로다. 나도 이리 노닐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