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을 보내며

사월을 보내며
사월에 보낸 그 사람을 생각한다
청춘의 몇 년을
나와 함께 보낸 사람
사월을 보내며
함께 사월을 보낸 그 사람을 생각한다

어떤 무대

막이 오르면, (배경)눈 덮인 산하. (배경 음악)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1곡 안녕히 /Gute Nacht, 바리톤. (잠시 후, 독백)누구나 가야 하는 길, 인생은 슬픈 것이로구나. (억겁의 길을 걷는 나그네, 이어지는 독백)잘 있으라, 모두들. (노래 소리 높아지다 곧 암전)침묵 후 서서히 밝아지는 무대. 나그네는 사라지고, 눈 덮인 산하에 내리는 눈. (배경 음악)20곡 이정표 /Der Wegweiser에 이어 24곡 거리의 악사 /Der Leiermann. (독백)인생은 슬픈 것이로구나, 누구나 가야 하는 길. (천천히 막이 내리며, 이어지는 독백)그대, 잘 가오.

걸어라

울적하거든 걸어라
삶이 속이는 것 같거나
세월이 야속하여도
산길이든 들길이든
꿈길이든
살 만하거든 걸어라
딱 죽고만 싶거나
대개 부질없어도
인연이야 모를 일
저 세상 일일랑 잊고
다시 걸어라

마지막 계절

토요일 저녁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최백호 콘서트에 다녀왔다. 한 주 내내 비가 내리더니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또 비가 내렸다. 공연의 감흥에 비까지 내리니 날씨 핑계로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사계동행 산행 일정을 뒤로 미루고 이십여 일만에 한잔하였다. 대봉동 징기스와 퍼센트. 창밖 풍경에 가라앉았다 자정 너머 돌아올 때까지 내내 비가 내렸다.

나이가 들고 긴장을 즐기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말과 마지막 계절이 가을이었으면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일 뿐 한 호흡에 부르기 어려우면 세 호흡에 부르면 된다고, 아흔에도 콘서트를 할 거란다. 그때 부를 마지막 계절이라는 노래도 만들어 두었다며 조금 들려주었다. 멋있게 잘 늙었다는 생각을 하며 멋있게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이 산다는 게 무얼까 잠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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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바람에

겸손하고 염치를 알며 약간의 위악에 위트와 직관을 겸비하고 있다면 더불어 놀 만하지 않겠는가. 서로를 배려하며 예술을 논하고 세상을 희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살다 보면 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해가 되기도 하고 해가 되던 것들이 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답이 되지 않는 것들이 답이 되기도 하고 답이 되던 것들이 답이 되지 않기도 한다. 뻔한 정답이나 어려운 해답도, 이해나 손해도 다 그렇다.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 나지 않는 것이 절반, 쓰잘데기 없는 것이 나머지 절반이구나. 이제 지난날은 그저 다 지나간 것일까. 지날 날도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이제 그러면 안 되는 것일까.

산에 올라, 너를 생각하며 울었다. 너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며 울고,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며 마저 울었다. 짧은 바람에, 마른 가지가 저 혼자 떨어졌다.

흔들흔들

인생이 늘 알 듯 모를 듯하더니 언젠가부터 어제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알 듯하던 것이 무언지도 영 모르겠다. 당최 현실감이 없고 이게 나인지 여기가 내가 사는 세상인지도 확실치 않을 때가 있다. 어쨌거나. 지난번에 눈이 꽤 왔나 보다. 오를 때 멀리 드문드문 보이던 것이 하산길 응달에는 온통 하얗게 굳어 빙판을 이루고 있었다. 뭘 좀 생각하다가는 변을 당하기 십상이겠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와 산 아래를 빙 돌았다. 어디든 바로 가기 싫어 더 멀리 돌았다. 지치면 주저앉을까. 앞발로 뒷발을 끌고 뒤꿈치로 땅을 밀었다. 가 버릇하면 또 간다고, 엎어질 듯이 자빠질 듯이 흔들흔들 걸었다. 그렇지. 늘 알 듯 모를 듯하던 것은 알든 모르든 별 게 아닌 거였다. 대저 내가 흔들거나 흔들린 것일 뿐.

따뜻한 겨울

정수를 두어야 한다. 얕은 수를 두거나 스스로 속여 봐야 헛일이다. 한 수 한 수 바르게 놓고 기다리는 것, 그게 정석이다. 채우기 전에 그릇을 키우듯 길게 보고 크게 보고 가야 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생각보다 짧아도 길게 보고 가고, 그릇이 조막만 하여도 크게 보고 가야 하는 것이다. 이상 고온에 비도 봄비처럼 내리더니 교정 곳곳 목련마다 전구 같은 꽃망울이 맺혔다. 다시 비가 오고 추워진다니 어느 해 겨울처럼 피지 못하고 질 모양이다. 아마 그해 겨울처럼 가없는 우주 어딘가나 다른 우주 어디쯤에서 활짝 필 모양이다.

나중에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고 갑자기 확 늙어 버린, 기분 좋게 나이 든 이 느낌이 썩 낯설지 않다. 죽은 세포가 살아난 것처럼 오래 잊고 있던 어떤 감각이 비틀거리거나 꿈틀거렸다. 내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게 해 준 사람들이 있다. 그 덕에 세상의 이치와 허무에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 속살도 보고 이면도 볼 수 있었다. 미련이나 회한이 없을 수 없겠지만 크게 아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볼 것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앞산과 함께

지난 몇 달, 한 주에 한두 번 꼴로 앞산(성불산으로 부르자는 이야기가 있으며, 대체로 산성산과 대덕산을 아울러 일컫는다) 일대를 돌아다녔다. 정상으로 오르기도 하고 둘레를 걷기도 하고 적당히 섞기도 하면서. 낯설었으나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들이 있다. 토굴암, 법장사, 은적사, 대덕사, 안일사 같은 절들과 잣나무숲, 만수정, 성불정, 평안동산 같은 곳, 그리고 고산골, 큰골, 안지랑골, 용두골, 달비골에 이르기까지. 가까이 이만한 데가 있어 계절도, 사람도, 나무와 돌도 예사롭지 않게 볼 수 있으니 복도 이런 복이 없다. 다니다 보면 언제나 말이 없는 줄 알았던 것이 어떤 날은 세상의 비밀을 슬쩍 일러주기도 하고, 세월에 닳고 새 기억에 낡아 엔간히 무디어진 줄 알았던 어떤 것이 가슴 저 밑에서 시퍼렇게 날이 서 오기도 한다. 아무렴, 뜻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결코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지나고 보면 거기 문득 너와 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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