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둘

오래 전 어디서 본 이야기 하나. 학동들이 모여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난데없이 맹구, 나는 쓸 줄은 아는데 읽을 줄을 몰라. 기가 막힌 학동들, 그럼 한번 써봐. 그러자 맹구, 붓을 들더니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그 한가운데 점을 하나 찍는 것이었다. 의아한 학동들, 그게 뭔데? 맹구 왈, 난 쓸 줄은 아는데 읽을 줄은 몰라.

그렇다. 읽는 건 읽고 싶은 놈들 몫이고, 뜻이야 있든 없든 그런 거야 알든 모르든, 사는 건 사는 놈들 몫인 거다. 커다란 동그라미 한가운데 콱 박히는 삶(이든 뭐든)을 써내려가는 놈 보고, 너 뭐야? 하지 말라는 거다.

역시 어디서 본 이야기 하나 더. 대한민국에 남녀혼탕이 문을 열었다. 남.녀.혼.탕. 대문짝만하게 내건 간판을 보고 남자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런데 탕 안엔 남자들만 우글거릴 뿐,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열 받은 손님들이 주인에게 따졌다. 남녀혼탕이라더니 이게 뭐요? 주인 왈, 여자 손님 안 오는 걸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그렇다. 그건 주인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안 오는 걸 어쩌란 말이냐. 강태공이 낚던 세월도, 기다린다는 때도, 아니 오면 그 뿐, 누굴 탓한단 말이냐.

* 점심 먹고 시시덕거리다 문득 떠올라 주변에 내놓은 이야기들. 어떤 걸로도 이 무시무시한 더위가 싹 가시기야 하랴마는, 잠시 웃고 잠시 느끼는 가운데, 온몸으로 뚫고 나가든 슬쩍 비껴가든, 한 세상 지나가고 말 테지, 뭐 그런 생각에.

기도 2

아아저들은저들이지은죄를알지못하고우리는우리가죄지은줄알지못하나이다이제도저제도저희가저희를용서한줄모르는것처럼우리도우리가새가슴부여안고버팅기는줄영원히모를것을믿사옵나이다해가돋고별이지는것이정하신이치이듯이언젠가는저희도가고다시오지않을것을아옵고저가나를모르는것처럼나도저를알지못할것을아옵나이다어제도오늘도부재중인우리는우리의부재를더는슬퍼하지아니하옵나니바라지않고건네지않아도별이돋고해가지는것과마찬가지로우리를모른척하옵소서이제도저제도나라와권세와영광이저희에게있다일컬어지고있으며저는저가일컫는것이망령된것임을알지못하나이다보시는바들으시는바와같이저가달리구하는것이없으니새가슴이라도부여안고올곧이부재하는저를죄없다하지아니하지마옵소서아아

마른장마

누구나 제 몫이 있다더니, 마감 전에는 알 수 있는 건가. 마른장마 지나는 동안, 나 스스로 나와 세상의 어떤 가능성을 닫은 느낌, 돌이킬 수 없는 한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 느낌이다. 이미 강제된 느낌. 세상은 그러나 또 그때, 그에 맞는 얼굴을 보여줄 게다. 제 본성대로 썩은 손짓이라도 하고야말 테니. 그때, 어디로 갈지는 역시 그때밖에는 모르는 것이지만. 세상에 축복 있을진저.

다만 그땐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겠다. 말하자면 역사가 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다 하여 접시 물에 코를 빠뜨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충분히 악의적인 것이다. 해서 말인데, 술과 안주 앞에 맹세를 놓듯이, 두 손 두 발 놓고, 우리가 세상을 외면하잔 거다. 물론 사태의 결말을 책임질 순 없다. 다만 그땐 손짓이 보일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세상이든 누구든, 저도 돌아앉게 마련이니.

* 별처럼 찾아온 거다. 고운 꽃처럼 다가온 거다. 부여안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안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게 명령이다. 그때 명령의 정체다. 손짓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 조금 전, 노태맹의 ‘푸른 염소를 부르다’,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이 왔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를 보고 마음 동해 주문한 책들. 거기 여러 잠언들이 있었지만, 하나만.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다음은 태맹이형의 시집 뒤에 실린 인상적인 ‘시인의 산문’ 중 한 구절.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오래, 가장 강렬하게 사랑한 이 것. 조사 하나를 들고 밤새 문장 한 구석에 꿰어 맞추기하던 날들. 입 안에 얼음이 씹힌다. 고맙다, 덕분에 많이 고통스러웠다. 젠장.

그리고 시 한 편.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5월이 다 지나도록
아파트 화단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져야 할 것이 지지 않으니
끔찍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강박장애다.

난 중력에 병들어 있는 거다.
동네 돼지 수육집 혼자 막걸리를 마시며
이제 아무에게도 나를 이해시키지도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革命이
붉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든
동백꽃처럼 그 자리에서 지지 않든
그건 동백이 가고 그 동백을 만나러 오는
봄바람의 몫이다. 모가지를 꺾고
붉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봄바람의 동백꽃들 몫이다.

막걸리잔에 앞머리 적시며 졸다가
나 문득 한 소식 본다. 사랑이란
그 사랑을 타인으로 놓아주는 것
지지 않는 동백꽃을
그저 붉은 동백꽃으로 바라다보는 것임을.

장마

허공에 대고서라도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도
떨리는 손, 시커먼 얼굴을 달래가며 술을 마시는 것도
다리로 다리를 끌며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 것도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것도
추억은 추억일 뿐
거리를 헤매며 못내 지난 기억의 갈피를 뒤지는 것도
날이 밝고서야 잠이 드는 것도
다 저를 위한 것이다 스스로 위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맹세만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생을 지나다 마주친 그 사람
비슷한 부류일지라도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고 되뇐들
빗속에 땀 흘려 애써 고단한 몸을 만든들
낯선 가슴, 먼 얼굴로 내일 일일랑은 내일 만난들
긴 장마에 땅이 하늘로 일어나든, 하늘이 땅으로 내려앉든
각자는 각자일 뿐, 시간의 더께에 손끝 하나 덧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렴, 엄살 부려본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말고

* 어제, 서연이가 아파 유치원 마치고는 피아노학원도 쉬고 같이 동네 의원에 들렀다 집으로 갔다. 저녁 먹고 잠시 놀다 피곤하여 혼자 먼저 누웠더니 슬그머니 들어와 옆에 누우며 속삭이는 말이 예뻤다. 새로 가슴이 뛰는 듯 벅찼다. 그 청유형의 은근한 억양과 뉘앙스를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 아빠, 사랑해. 내일 아침에도 같이 손잡고, 유치원에 가자.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약 먹고. 아빠, 사랑해. 내일도 같이 유치원에 가자. 아빠도, 잘 자. 그러고는 한번도 보채지 않고 잠이 들었다. 0124님은 월요일 야근에다 오늘부터 또 석 달 가량 수요일과 목요일, 밤늦게까지 교육이다. 긴 하루가 늘었다. 아직 여름은 오지도 않은 듯 하더니 밤새 장마가 시작되었다. 한순간 무너질지라도 쌓을 땐 열심히 쌓을 수밖에 없을 터, 어쨌든 당분간 근신이다.

세상을 대신하여

생명을 얻어 세상에 나올 때 사람으로 나기 쉽지 않은 일이라고들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테지요. 인연이 있어 만나고 소식을 안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가슴 저린 일일는지요. 나고는 가고 오고는 가는 게 세상일이라지만, 잠시 머무는 모양이 이리 안타까운 까닭이기도 하겠지요. 오늘은 지나간 한때처럼 오래오래 당신을 생각합니다.

올해 여름은 사계절을 몇 번이나 겪고도 여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마음처럼, 사나운 봄도 길어진 걸까요. 지난 밤 꿈에는 헤매는 길목마다 화사한 봄꽃들이 피어 새봄이 온 줄 알았습니다. 전하는 말을 들으면, 나무는 겉으로 드러난 제 키만큼 보이지 않는 사방으로 뿌리를 뻗고 있다고 합니다. 지탱하는 힘이란 이와 같겠지요. 어느 뿌리엔가는 남몰래 꽃도 맺고 열매도 피울 겁니다.

유월, 오늘, 햇살이 곱습니다. 유치원 아이들, 여고생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유난히 정겹습니다. 강물은 바다를 잊지 않는다던가요. 저무는 어느 길목에서 언뜻 아지랑이처럼 번지다 사라지는 미소를 본다면, 그때 가여움인가 하소서. 하기야 먼저 돌아누운들 저도 같이 돌아눕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어쩐지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까무룩, 손만 모으고 맙니다. 나고, 살아 곁에 있는 것, 세상을 대신하여, 이만, 합장.

한평생 꿈결같이

옛날 세상 같으면 서러운 심회를 필묵에 맡겨 혼쇄(渾灑)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저(江渚)에 낚대로 벗을 삼아 한평생 꿈결같이 살아 나갈 수도 있을 터인데, 현대라는 괴물은 나에게 그렇게 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풀이에 따르면, 혼쇄란 발묵(發墨)으로 흐리게 하고 필선(筆線)으로 선명하게 한다는 뜻. 몇 해 전 사다놓고 읽다만, 열화당에서 2000년 새로 펴낸 김용준의 ‘새 근원수필’을 들추다가,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처음 출판될 당시 발문에서. 다시 읽으며 왜 그렇게들 추켜올리는지 진미를 조금 알 수 있었다.

술병이 과한 겐지, 한 모롱이 돌아가는 겐지, 그저께는 하루 종일 허리가 내려앉듯 아프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한쪽 어깨와 목이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팠다. 동물은 동물인지라, 마음 아픈 것 만한 게 없다는 건 순 거짓말인 줄 알겠더라. 옆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진통제를 먹어서 그런지 조금 나은 듯하긴 한데, 시커먼 얼굴에 부실한 몸뚱아리를 보고 있자니 다 던져두고 어디 큰 그늘 아래에서 바람이나 쐬고 요양이나 하다 왔으면 딱 좋겠다 싶다. 사는 게, 바쁜데 안 바쁜 건지 안 바쁜데 바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아름다운 세상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명을 내뿜는 나무를 대할 때, 숨쉬는 대지를 만끽할 때,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죽어가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작고 슬픈지, 물기 차오르는 일인지, 거리에서 식구를 마주쳤을 때, 제 몫을 감당하고 있는, 여물어가는 아이를 볼 때, 내 어깨와 눈빛에 기댄 어린 짐승을 생각할 때, 한 순간, 세상은 얼마나 까마득한지, 돌아서던 자리가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을 때, 다정한 눈빛을 교환할 때, 기어코 다가서는 마음을 묵묵히 억누를 때, 하늘이 감응할 때, 떠나간 사람을 곱게 떠나보낼 때, 살아있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세상이 얼마나 새파란 거짓말인지, 멀리 멀리 돌아 한 몸뚱이 누일 때, 세상이 얼마나 그리운 것인지,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인지.

마흔

뭐든 마음껏 즐길 수 없는 나이, 일부러 무언가에 몰두하는 나이
남아있는 젊음과 열정을 되살려 기어코 소진하고 마는 나이, 어제
과음한 다음 날, 살진 짐승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온통 하얗게 바랜 채 내려앉은 겨울 하늘을 만났다.
문득, 세상이 그렇게 작고 예쁘게 보일 수 없었다.
일상에서 잘 지내는 사람들과
여전히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세상은 여전했다. 제 방식으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애써 모른 척 했을 뿐, 정답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석양이 보고 싶다. 운명을 닮은 석양, 며칠 그것만 보다 돌아왔으면 좋겠다.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오래가는, 사랑을 꿈꿔 왔나 보다.
더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었나 보다.
꾸미고 가꾸는 만큼의 거리와 긴장을 유지한 채
편리와 일상을 버린 채
불가능을 두드렸나 보다.
철이 들면 단순해진다는데, 마지막 남은 한 가닥, 놓질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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