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

누구나 제 몫이 있다더니, 마감 전에는 알 수 있는 건가. 마른장마 지나는 동안, 나 스스로 나와 세상의 어떤 가능성을 닫은 느낌, 돌이킬 수 없는 한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 느낌이다. 이미 강제된 느낌. 세상은 그러나 또 그때, 그에 맞는 얼굴을 보여줄 게다. 제 본성대로 썩은 손짓이라도 하고야말 테니. 그때, 어디로 갈지는 역시 그때밖에는 모르는 것이지만. 세상에 축복 있을진저.

다만 그땐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겠다. 말하자면 역사가 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다 하여 접시 물에 코를 빠뜨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충분히 악의적인 것이다. 해서 말인데, 술과 안주 앞에 맹세를 놓듯이, 두 손 두 발 놓고, 우리가 세상을 외면하잔 거다. 물론 사태의 결말을 책임질 순 없다. 다만 그땐 손짓이 보일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세상이든 누구든, 저도 돌아앉게 마련이니.

* 별처럼 찾아온 거다. 고운 꽃처럼 다가온 거다. 부여안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안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게 명령이다. 그때 명령의 정체다. 손짓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 조금 전, 노태맹의 ‘푸른 염소를 부르다’,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이 왔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를 보고 마음 동해 주문한 책들. 거기 여러 잠언들이 있었지만, 하나만.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다음은 태맹이형의 시집 뒤에 실린 인상적인 ‘시인의 산문’ 중 한 구절.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오래, 가장 강렬하게 사랑한 이 것. 조사 하나를 들고 밤새 문장 한 구석에 꿰어 맞추기하던 날들. 입 안에 얼음이 씹힌다. 고맙다, 덕분에 많이 고통스러웠다. 젠장.

그리고 시 한 편.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5월이 다 지나도록
아파트 화단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져야 할 것이 지지 않으니
끔찍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강박장애다.

난 중력에 병들어 있는 거다.
동네 돼지 수육집 혼자 막걸리를 마시며
이제 아무에게도 나를 이해시키지도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革命이
붉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든
동백꽃처럼 그 자리에서 지지 않든
그건 동백이 가고 그 동백을 만나러 오는
봄바람의 몫이다. 모가지를 꺾고
붉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봄바람의 동백꽃들 몫이다.

막걸리잔에 앞머리 적시며 졸다가
나 문득 한 소식 본다. 사랑이란
그 사랑을 타인으로 놓아주는 것
지지 않는 동백꽃을
그저 붉은 동백꽃으로 바라다보는 것임을.

장마

허공에 대고서라도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도
떨리는 손, 시커먼 얼굴을 달래가며 술을 마시는 것도
다리로 다리를 끌며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 것도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것도
추억은 추억일 뿐
거리를 헤매며 못내 지난 기억의 갈피를 뒤지는 것도
날이 밝고서야 잠이 드는 것도
다 저를 위한 것이다 스스로 위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맹세만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생을 지나다 마주친 그 사람
비슷한 부류일지라도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고 되뇐들
빗속에 땀 흘려 애써 고단한 몸을 만든들
낯선 가슴, 먼 얼굴로 내일 일일랑은 내일 만난들
긴 장마에 땅이 하늘로 일어나든, 하늘이 땅으로 내려앉든
각자는 각자일 뿐, 시간의 더께에 손끝 하나 덧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렴, 엄살 부려본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말고

* 어제, 서연이가 아파 유치원 마치고는 피아노학원도 쉬고 같이 동네 의원에 들렀다 집으로 갔다. 저녁 먹고 잠시 놀다 피곤하여 혼자 먼저 누웠더니 슬그머니 들어와 옆에 누우며 속삭이는 말이 예뻤다. 새로 가슴이 뛰는 듯 벅찼다. 그 청유형의 은근한 억양과 뉘앙스를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 아빠, 사랑해. 내일 아침에도 같이 손잡고, 유치원에 가자.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약 먹고. 아빠, 사랑해. 내일도 같이 유치원에 가자. 아빠도, 잘 자. 그러고는 한번도 보채지 않고 잠이 들었다. 0124님은 월요일 야근에다 오늘부터 또 석 달 가량 수요일과 목요일, 밤늦게까지 교육이다. 긴 하루가 늘었다. 아직 여름은 오지도 않은 듯 하더니 밤새 장마가 시작되었다. 한순간 무너질지라도 쌓을 땐 열심히 쌓을 수밖에 없을 터, 어쨌든 당분간 근신이다.

세상을 대신하여

생명을 얻어 세상에 나올 때 사람으로 나기 쉽지 않은 일이라고들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테지요. 인연이 있어 만나고 소식을 안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가슴 저린 일일는지요. 나고는 가고 오고는 가는 게 세상일이라지만, 잠시 머무는 모양이 이리 안타까운 까닭이기도 하겠지요. 오늘은 지나간 한때처럼 오래오래 당신을 생각합니다.

올해 여름은 사계절을 몇 번이나 겪고도 여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마음처럼, 사나운 봄도 길어진 걸까요. 지난 밤 꿈에는 헤매는 길목마다 화사한 봄꽃들이 피어 새봄이 온 줄 알았습니다. 전하는 말을 들으면, 나무는 겉으로 드러난 제 키만큼 보이지 않는 사방으로 뿌리를 뻗고 있다고 합니다. 지탱하는 힘이란 이와 같겠지요. 어느 뿌리엔가는 남몰래 꽃도 맺고 열매도 피울 겁니다.

유월, 오늘, 햇살이 곱습니다. 유치원 아이들, 여고생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유난히 정겹습니다. 강물은 바다를 잊지 않는다던가요. 저무는 어느 길목에서 언뜻 아지랑이처럼 번지다 사라지는 미소를 본다면, 그때 가여움인가 하소서. 하기야 먼저 돌아누운들 저도 같이 돌아눕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어쩐지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까무룩, 손만 모으고 맙니다. 나고, 살아 곁에 있는 것, 세상을 대신하여, 이만, 합장.

한평생 꿈결같이

옛날 세상 같으면 서러운 심회를 필묵에 맡겨 혼쇄(渾灑)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저(江渚)에 낚대로 벗을 삼아 한평생 꿈결같이 살아 나갈 수도 있을 터인데, 현대라는 괴물은 나에게 그렇게 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풀이에 따르면, 혼쇄란 발묵(發墨)으로 흐리게 하고 필선(筆線)으로 선명하게 한다는 뜻. 몇 해 전 사다놓고 읽다만, 열화당에서 2000년 새로 펴낸 김용준의 ‘새 근원수필’을 들추다가,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처음 출판될 당시 발문에서. 다시 읽으며 왜 그렇게들 추켜올리는지 진미를 조금 알 수 있었다.

술병이 과한 겐지, 한 모롱이 돌아가는 겐지, 그저께는 하루 종일 허리가 내려앉듯 아프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한쪽 어깨와 목이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팠다. 동물은 동물인지라, 마음 아픈 것 만한 게 없다는 건 순 거짓말인 줄 알겠더라. 옆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진통제를 먹어서 그런지 조금 나은 듯하긴 한데, 시커먼 얼굴에 부실한 몸뚱아리를 보고 있자니 다 던져두고 어디 큰 그늘 아래에서 바람이나 쐬고 요양이나 하다 왔으면 딱 좋겠다 싶다. 사는 게, 바쁜데 안 바쁜 건지 안 바쁜데 바쁜 건지 도통 모르겠다.

M6 스물네 번째 롤

지난 22일 저녁, 수성아트피아에서 끌로드 볼링의 재즈 공연을 봤다. 트리오, 퀸텟, 보컬까지. 보는 내내, 제대로 해석하는 놈도 대단하지만 만들어내는 놈에 비할까, 생각이 맴돌았다. 인생 참 제대로 즐기는 노인네들과, 잘 어울리는 청춘(?)들이었다. 공연 끝나고는 늦었지만 한 오년여 이어오던 한 모임의 사실상 마지막 모임이 있어 들렀다가 마침 자리가 파하여 몇몇 얼굴들만 보곤 괜한 마음에 찬 소주만 약간 비웠더랬다.

남들 쉬지 않는 날 쉬는 건 참 맛깔스런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오늘처럼 더운 날 나돌 생각을 했다니, 이발하고 신천 조금 걷다 곧바로 궤도 수정하여 CGV에서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잠깐 선선한 저녁 바람을 즐기곤 들어오고 말았다. 밤부터 비가 온다는데, 수성아트피아에서 0124님 기다리는 동안 잠시 찾았던 행운 또는 행복의 이파리도 함께.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후지 오토오토400

아름다운 세상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명을 내뿜는 나무를 대할 때, 숨쉬는 대지를 만끽할 때,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죽어가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작고 슬픈지, 물기 차오르는 일인지, 거리에서 식구를 마주쳤을 때, 제 몫을 감당하고 있는, 여물어가는 아이를 볼 때, 내 어깨와 눈빛에 기댄 어린 짐승을 생각할 때, 한 순간, 세상은 얼마나 까마득한지, 돌아서던 자리가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을 때, 다정한 눈빛을 교환할 때, 기어코 다가서는 마음을 묵묵히 억누를 때, 하늘이 감응할 때, 떠나간 사람을 곱게 떠나보낼 때, 살아있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세상이 얼마나 새파란 거짓말인지, 멀리 멀리 돌아 한 몸뚱이 누일 때, 세상이 얼마나 그리운 것인지,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인지.

M6 스물세 번째 롤

얼마 전, 포항 간 첫날, 죽도시장 안 횟집에서 점심 겸 소주 한 잔 하면서 그저 건배하기 맨송맨송하여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하고 셋이서 잔을 부딪친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서연이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술을 따르는 것은 온전히 이 녀석의 몫이며, 건배할 때 행여 빼놓았다간 심술기에 한참 술맛이 달아나기 일쑤다. 물 잔이나 음료수 잔으로 꼭꼭 같이 잔을 부딪쳐야 하며, 자주 먼저 잔을 드는 바람에 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지기 예사다.

어제 ‘아지야’에서 청주, 오늘 ‘예궁’에서 고량주 마시는 자리에서 이 녀석의 건배사가 걸작이었다. “우리, 가족을, 위하는데, 건강하고, 행복은, 창문을 타고 오는데, 바람이 불고, 그런데, 위하여.” 아지야에서 첫잔 비울 때 열린 창문을 보며 한 녀석의 건배사이다. 우리가 웃고 즐거워하니까 재미를 붙였는지, 매번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재미난 건배사를 해냈다. ‘합류하다가’, ‘회항하여’ 같은 표현까지 곁들여 길게 이어갈 때는 꽤나 놀라기도 했다. 기억나는 게 많지 않아 아쉽다.

철들려면 멀었다지만, 나이를 그렇게 썩 헛먹지는 않았을 터, 빨리 잊는 법, 쉽게 타협하는 법도 익혀 왔는걸, 시시한 세상이 가까워지면 안타까운 일도 그만큼 줄어들 테지. 성장(盛裝)한 여인처럼 불쑥 다가선 봄은, 그렇게 갈 테고, 시시한 세상도, 이 봄도, 언제 그랬냐 할 테지.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코닥 프로이미지100

마흔

뭐든 마음껏 즐길 수 없는 나이, 일부러 무언가에 몰두하는 나이
남아있는 젊음과 열정을 되살려 기어코 소진하고 마는 나이, 어제
과음한 다음 날, 살진 짐승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온통 하얗게 바랜 채 내려앉은 겨울 하늘을 만났다.
문득, 세상이 그렇게 작고 예쁘게 보일 수 없었다.
일상에서 잘 지내는 사람들과
여전히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세상은 여전했다. 제 방식으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애써 모른 척 했을 뿐, 정답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석양이 보고 싶다. 운명을 닮은 석양, 며칠 그것만 보다 돌아왔으면 좋겠다.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오래가는, 사랑을 꿈꿔 왔나 보다.
더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었나 보다.
꾸미고 가꾸는 만큼의 거리와 긴장을 유지한 채
편리와 일상을 버린 채
불가능을 두드렸나 보다.
철이 들면 단순해진다는데, 마지막 남은 한 가닥, 놓질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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