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세계에서

시간이 한정 없을 것 같던 날들은 다 지났다. 좋던 날들을 어찌 그리 허비하였을까.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 아까운 것이라더만, 이제 뭘 해도 아깝지 않은 나이가 된 걸까. 희거나 붉고 연두와 초록이 뒤섞인 봄의 세계를 보고 있자니 문득 공부 욕심이 난다. 고전을 좀 봐야겠다. 은퇴를 임박하여 그런가. 시, 소설이 좋더니 어째 그랬나 싶고, 수필이 좋고 옛것이 좋다. 매화를 생각하다 김용준의 새 근원수필을 다시 읽었고 이태준의 무서록도 새로 읽었다. 법구경 이야기는 이제 2권으로 접어들었는데 잠시 두고 노자, 장자도 다시 꺼내 볼까 한다. 그러고는 서가에 읽지 않은 채 꽂아 둔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 보아야겠다. 사서 읽지 않은 책이 이렇게나 많았나 새삼스럽다. 하긴 읽은 책도 얼마든지 다시 읽어도 좋겠다. 죄다 처음 읽는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다음은 주희의 근사록 첫 대목. 채근담이 있었나,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 잠시 빼들었는데 어린 날 공부하던 흔적이 낯설기만 하였다. 그나저나 옛사람의 세계가 참으로 경이롭지 않은가.

염계 선생이 말하기를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동하여 양을 생한다. 동이 지극하게 되면 정이 되고 정은 음을 생한다. 정이 지극하게 되면 다시 동하게 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게 됨이 서로 뿌리가 되어, 음으로 나누어지고 양으로 나누어져서 양의(兩儀)가 이뤄진다. 양이 변화하고 음이 합쳐져서 수·화·목·금·토를 생한다. 오기(五氣)가 고루 퍼져서 사시(四時)가 운행된다.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곧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이 생함에 있어서는 제각기 하나의 성(性)을 갖는다. 무극의 진(眞)과 이오(二五)의 정(精)이 묘하게 합쳐져서, 건도(乾道)는 남자가 되고 곤도(坤道)는 여자가 된다. 이 두 가지 기가 서로 교감하여 만물이 생하게 되니, 만물은 생하고 또 생하여서 변화가 끊임없다. 오직 사람은 가장 빼어난 기를 얻어서 가장 신령스러운 것이거니와, 형체는 이미 생겨났고 정신은 피어나서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오성(五性)이 느껴 움직임으로써 선악이 나누어지게 되고 오만가지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성인(聖人)은 선악과 행동의 도리를 정함에 있어서, 중정(中正)·신의로써 하며, 정(靜)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도를 정립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이 합치하며 사시와 더불어 그 질서가 합치되며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이 합치된다. 군자는 이러한 도를 닦게 되니 길하고 소인은 이러한 도를 거스리니 흉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하늘의 도를 정립하여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리를 정립하여 유와 강이라 하며 인극(人極)을 정립하여 인과 의라 하였다. 또 시원을 찾아서 종말로 되돌아오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죽고 삶의 이치를 알게 된다. 크도다, 그 변화여! 그 이치가 참으로 지극하도다’ 하였다.

老酉堂記

老酉堂에 노니는 老舟 이야기다. 노주는 술을 즐기고 가만히 있거나 때때로 걷는 걸 좋아하여 기꺼이 노유당에서 노는데 어째 헛발질도 잦고 잘 자빠지기도 한다. 즐거이 즐기기란 언제나 난망한 일이다. 노주는 한때 비가 오지 않는 노유당을 떠나 세상을 유랑하였다. 사람을 만나고 길을 잃고 역사를 이루었다. 땅을 갈고 강을 건너 꽃도 피웠다. 시간이 지나 빈손으로 돌아왔으나 다 빈 건 아니었다. 노유당에 노주만 있던 건 아니다. 형상이 달랐을 뿐 뜨내기도 붙박이도 있었다. 노주가 노니는 노유당에 봄이면 서러움이 내려앉고 가을이면 일찍 어둠이 내려앉았다. 노주는 노을이 눈처럼 내리는 날이면 오래된 술항아리를 꺼내 노유당 그늘에 앉아 알 수 없는 주문을 외거나 우주의 소리를 들었다. 항아리가 비어가면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다. 빈 것이 그리워 밤을 새고 수탉처럼 홀로 울기도 하였다. 뜨내기도 붙박이도 같이 우는 것만 같았다. 간이 콩알만 한 노주는 가만히 있거나 때때로 걷기를 좋아하여 악보가 든 老舟文集 세 권을 남겼다. 빈 술항아리를 깨트리던 날 노주는 문집을 불살라 제를 지냈고, 메마른 노유당에 처음 비가 내렸다.

설중매

아무래도 내가 이 길을 걸어왔다기보다 이 길이 나를 데려온 느낌. 그러고 보니 눈 속에 저 매화도 눈이 오거나 쌓인 가운데 핀 게 아니라 피고 나서 눈이 온 것, 만든다기보다 만들어지는 거였다. 그래, 보고 나니 보인 거고 골라서 고른 줄 알았더니 보여서 본 거고 고른 건 내가 아니었구나. 봄은 어딜 갔나. 절반은 초여름 같다가 절반은 초겨울 같더니, 늦봄이라도 부르나, 밤새 바람이 우렁차다.

만개한 매화에 부쳐

그리 시시하게 살지는 않았다. 다 걸고 몇 번의 사랑을 하였고 일에 몰두해 보기도 하였다. 세상을 바꾸려 하였고 주변을 바꿔 나를 바꾸기도 하였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 어느 구석에는 봄꽃이 만발하였고 하얗거나 붉어 더욱 몽롱하였다. 취하거나 취하지 않는 삶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바쁘지도 않은 마음이 쉬 길을 찾지 못하기도 하였다. 저 새는 어디서 잠이 들고 저 고양이는 언제 떠나나. 삼월 하늘이 길기만 하다.

나무의 하늘

며칠 내리던 비가 멎더니 꽃샘추위가 티 나게 봄을 부른다. 매섭지도 무디지도 않게, 아닌 척 모른 척. 법주 한잔에, 티 내는 거리와 티 나는 사랑을 생각한다. 창밖으로 푸른 빛이 시들고 소리도 검게 변한다. 저물녘이면 저무는 인연도 시작하는 인연도 다 어여쁘다. 지난날의 나도 나의 지난날도 다 용서가 되고, 발칙한 청춘과 갈데없는 후회도, 가련한 이름들도 다 용서가 된다. 나무의 하늘은 어디인가. 며칠 내리던 비를 핑계로, 오던 길 돌아가던 봄이 마지못해 슬쩍 돌아선다. 그럼, 너도 쉬운 놈이 아니고 말고.

굿바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진리를 탐하거나 사랑을 갈구하고 죽음을 동경하는. 지나고 지난 자리들이 있다. 다시없을 인연과 이름들.

바람을 맞는 작은 생명들아, 열두 번 바뀌는 하루도 어제 정한 내일을 어쩌지 못한다. 어느 해 그날처럼, 오늘은 아무것도 정할 수 없다.

계절이 계절을 노래하던 시절은 지났다. 둘 것은 두고 떠날 것은 떠났다. 이 밤, 잔은 차지 않고 넘친다. 저 나무도 더는 세상을 담지 않는다.

마음공부

누군가 채를 잡고 후려치는 듯 머리와 가슴이 목탁모냥 텅텅 울린다. 그래,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지.

강은 어디 있고 뗏목은 어디 있나. 멀리 목어 우는 소리 들린다. 잊었을까, 속없이 부르는 소리 들린다.

마음은 어느 하늘에 걸려 있나. 마음으로 어찌할 수 없는데도 마음이 쓰이니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릴밖에. 마음에 마음을 쓸 수밖에.

외길

본디 사람이 다 좋을 일도 아니고 다 싫을 일도 아니다. 좋고 싫은 것이 적당히 섞여 있을 일도 아니다. 가던 길이라고 다 갈 일도 아니고 모르는 길이라고 못 갈 일도 아니다. 낯선 이야기라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도 아니고 늘 하던 얘기라고 내 이야기인 것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것에 매달릴 일도 아니고 안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지난밤 꿈에 길을 잃고 헤매다 옛사랑을 만났다. 사랑도 세월만큼 때가 묻어 좋으면서 싫었다. 안쓰럽게 서로 마주보던 것도 다 옛일이 되었구나. 저 멀리 온 데로 가는 길이 보인다. 다시 올 기약이 없을 뿐, 외길 수순에 저어할 일 있으랴.

새생활신조 2

몸과 마음을 쓰되
말과 욕망과 음식을 아끼고
취하지 말며
아쉬움이나 조바심 없이
적도 미련도 버리고
맑은 눈으로
천천히
다음을 준비하자
눈부신 겨울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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