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그렇지, 그렇고 말고. 어제 술자리 대화 중 문득 떠오른 ‘高者는 先勝 以後 求戰하나, 下者는 先戰 以後 求勝한다’는 조남철 기사 이야기.

그리고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뭐, 주당의 단수(段數), 당대의 주당으로 통한 시인 조지훈이 술을 마시는 격조, 품격, 스타일, 주량 등을 따져서 밝혀 놓았다는 주도의 18단계.

 1. 불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까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먹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이 안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 주졸(酒卒)
10. 애주(愛酒) :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 기주(嗜酒) : 술의 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眈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 주도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廢酒) : 술로 인해 다른 술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열반주(涅槃酒) 9단

나는 새처럼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제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역시 여러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살다보면 부득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거짓으로 치장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기대는 잣대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르다면 뭐 그리 신뢰할 만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자신에게조차 때와 기분에 따라 다른 잣대를 갖다대는 사람에 대해서야 더 일러 무엇 하겠는가. 이런 사람과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댄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겠는데, 어제는 대놓고 ‘말이야 좋은 말입니다만’ 하고는 피식 웃어주고 말았다. 눈동자에서는 나도 모르게 불이 조금 일었을 텐데 눈치나 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잘난 척 하기 좋아하고 눈치도 빠르던데 말이다.

그리고 또 어떤 유형이 있을까? 대체로 말이 많은 사람 중에 쓸만한 사람이 없다. 드물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재치와 유머를 갖추고 예를 아는 수다쟁이라면 환영할 일이겠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친해진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장되었거나 아예 지어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날카로운 직관력에서 뿜어져나오는 경구와 유머가 빠져있다. 즉흥적으로 다시 남지 않을 이야기들을 그렇게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상습적으로 핑계를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잘 이해할 수 없는 경우인데 고칠 수 있을 것 같거나 정이 가는 경우에는 다 표나니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곤 한다. 왜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령 자기만 안다고 한들 자기는 알지 않는가 말이다. 시쳇말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기가 알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새처럼 가볍지만 서늘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그립다. 진짜가 없다. 매무새 예쁜 사람이 그립다. 한때 참 고왔을 사람이 역시 곱게 늙는 법이다. 이제 알았다.

* 어제는 또 뭐가 그리 아쉽고 허전한지 애꿎은 술만 잔뜩 죽였더랬다. 아무래도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이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씨앤, 코요테어글리, 녹향까지.

술친구

술친구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거의 유일하게 여자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인데, 대학 동기생이지만 나보다 한 살이 많던가 그랬다. 이 친구는 서점에서 그냥 책을 들고 나오는 방면엔 선수였다. 그렇게 들고 나온 책을 몇 권 받기도 했다. 주로 동성로 뒷골목 지하 깡통 맥주집에서 쥐포를 뜯으며 술을 마셨는데, 그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게 분명한 깡통 쌓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마시다 보면 내가 먼저 쓰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인간의 소통불가능성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잘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여간 그 친구 덕에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과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알았고, 빌린 그 책은 그 친구가 결혼할 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라며 돌려주지 않았다. 아주 특이한 글씨체를 가진 친구였다. 일이학년 때 종종 어울리다가 어설픈 ‘사랑과 혁명’에 빠져 오래 보지 못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친구가 결혼하기까지 한동안 만났다. 언젠가 길을 걷다 우연히 아기를 안고 가는 걸 보고 잠시 얘기 나눈 게 마지막이다. 그게 벌써 한 십여 년 되었다.

그리고 정호와 준탱이를 빼놓을 수 없다. 서너 살씩 적은 후배들이지만 참 많은 정을 쌓았다. 이들은 지금 너무 멀리 있다. 하나는 부천에서 바쁘게 살고 있고 하나는 (지금은 잠시 들어와 있지만) 대양을 떠돌고 있다. 떨어져 있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언제나 그랬듯 다시 계전 앞 돌계단에서 함께 쓰러져 자고 싶다. 다리뼈 하나씩만 남기고 뼈째 통닭을 다 뜯어먹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이런저런 핑계로 술잔을 나누고 싶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숨은 열정을 확인하고 싶다.

나이가 들고 오랜 시간 술친구는 마달이었다. 그리고 후에 형석이가 합류하였다. 0124님처럼 지금도 만나는 술친구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닮은 구석이 없어 나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인연은 그랬다. 차곡차곡 술자리와 술병들을 쌓다보면 저릿하게 느껴오는 동질감이 있다. 섣부르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친구란 많지 않은 법이다. 다 다르고 하나만 비슷하여도 되는 그 하나를 가진 놈들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어제, 동해 바다를 잠시 보고 왔다. 간간이 비가 뿌리는 가운데 바람에 일렁이는 바다에는 갈매기 몇 마리만 바빴다. 깊이 숨겨놓은 풍광인 듯 일행 몰래 나만 본 듯한 느낌을 간직하고 왔더랬는데, 돌아오고 나서도 좋은 술친구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에 그 바다, 그 갈매기처럼 계속 마음이 울렁이고 바빴더랬다.

* 아, 다 쓰고 보니 하맹이 빠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후까지 줄기차게 같이 마셔댄 친구이자 진정한 박카스의 세계로 접어든 친구인데, 친구들끼리 몰래 간 이차, 삼차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온다던지 파계를 앞둔 비구니 스님이랑 같이 술을 마신 이야기, 암자에 공부하러 가서는 처음에 술을 말리며 이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던 스님이 나중에는 이 친구에게 등을 내밀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온다. 내가 한번씩 잠시 동안 술을 끊겠다면 준탱이는 제가 좋아서 찾고 위로받을 때는 언제고 몸 좀 그렇다고 멀리 해서야 되겠냐며 일침을 놓곤 했지만, 정작 이 친구 앞에서 제가 술을 좀 사리다가는 ‘슬픈 생각을 해 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어야 했다.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외상이 깔렸고 낡고 찌그러진 그 집들에서는 항상 그 친구가 들고 간 심수봉 언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옛날 이야기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구봉명파출소네거리 근처에, 박땡땡 어린이, 밥 많이 먹고 치카치카 잘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이 대목은 필요에 따라 때때로 바뀐다) 착한 어린이랑 김땡땡 어머니랑 박땡땡 아버지랑(때에 따라서 양동생이랑 오리 두 마리랑 거북이 두 마리랑 방귀대장 뿡뿡이랑 미피랑 등등 이어지기도 하는데) 살았어요. 어느 날, 박서연 어린이 착한 어린이는 하며 밤이면 자기 전에 서연이랑 나란히 누워 그날 있었던 일이나 며칠 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때때로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깊은 숲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았어요 하고 되나마나 진짜 옛날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고. 꼭 내가 하기 좋아서 한다기 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려 긴 이야기의 경우 미리 못을 박고 한 가지 이야기만 하기도 하지만, 짧은 이야기의 경우 서너 가지를 해야만 한다. 피곤할 땐 때로 곤욕이기도 하지만 어떨 땐 짜릿한 교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땐 대체로 나도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이 녀석 근황 이야길 좀 하자면, 아직 한글이나 숫자에 대해 집에서나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지만 약간 더듬거리나마 처음 보는 책도 대부분 읽어내고 십삼 더하기 이십사 정도 되는 덧셈도 크게 무리 없이 해내고 있다. 전부터 한번씩 낱말이나 문장을 재미있게 비트는 걸 보고 언어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 내심 좋아하였는데, 어린이집 담당 선생님의 의견은 좀 달랐다. 물론 새학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서연이를 오래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때 제 어미와 시간이 맞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그 어린 여선생님과 학부모 면담이라고 마주앉았는데, 생각과 달리 한 시간이 아쉬운게 끝나고나니 꼭 내가 무슨 정신상담이라도 받은 듯 마음이 맑고 평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선생님 의견으로는 언어가 아니라 숫자 개념이 또래 보다 좀 빠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숫제 언어 쪽은 뒤쪽이라는 듯이. 어쨌든 이 녀석이 아는 척 하기 좋아하고 일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내성적이며 어린애 같은 밝음이 다소 부족한 게 걸리긴 하지만, 딱 이 녀석이 아니라면 누가 우리 아이가 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고슴도치라 놀려도 하는 수 없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고등학교 일학년 때까지 참 내성적인 아이였다. 밖에서는 누가 봐도 착한 아이였으며 소심했고 조용했다. 이학년 때부터 의도적인 일탈을 하며 여러 부류의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낯을 가리고 어디 도드라지는 걸 싫어하는 건 여전하다(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무리에서 가장 앞서길 바라는 편이지만). 십대 후반의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술, 친구, 가족, 염세, 반항, 하야로비, 실존주의 뭐 이런 것들이다. 이십대 전반을 생각하면 역시 술, 그리고 공동체, 노천문학, 햇살, 철없던 사랑 뭐 그런게 떠오른다. 내친 김에 이십대 후반부터 삼십대 전반까지 생각해보면 술, 이별, 아픔, 망각, 웅크림, 두려움 그런게 떠오른다. 훗날 지금을 돌아보면 뭐가 떠오를까. 위선, 아이, 현실, 갈 곳 없음 뭐 그런게 떠오를까. 어젯밤 문득 서연이에게 옛날 이야길 들려주다 늘상 반복하는 이 이야기의 앞머리를 써 보잔 생각을 했는데 갈데없이 되어버렸다.

* 나흘간의 연휴가 후딱 지나갔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밀양 정도는 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사흘 내리 술을 먹는 바람에 낮시간 동안은 운신을 못하고 누워 보냈다. 세 술자리 모두 즐겁고 의미 있는 자리였던지라 아쉬울 건 없고, 덕분에 바리에떼와 고향길을 완독할 수 있었다. 일전에도 느낀 바지만 고종석의 글들은 대체로 시각도 바르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을 뿐아니라 특히 글솜씨가 빼어나 잘 읽힌다. 어렵거나 힘든 문장이 아닌데도 앞 문장을 다시 읽게 만드는 힘도 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흔쾌히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데, 그래서 어딘지 한 구석 불편하곤 한데, 이틀째 술 먹은 다음날 아침 마치 밤새 고민한 듯 일어나자마자 뱅뱅 돈 문장이 거기에 닿아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명을 찾아서를 감명 깊게 본 나로서는 복거일의 이후 행보가 얼마나 마뜩잖았는지 모른다. 이 책도 다른 이의 글에서 고종석의 그에 대한 애정과 평(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대한 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고 궁금하여 산 것이기도 한데, 어떻든 복거일은 김훈에 많이 닿아 있고 고종석은 그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건강해 보인다. B급 좌파 김규항에 비하자면 거칠게 표현하여 김규항의 글들은 읽는 내내 긴장하고 불편하게 하지만 결국 공감하고 따를 수밖에 없게 하는 반면, 고종석의 글들은 편하게 공감하며 읽지만 어딘가 불편한 구석을 남기는 것이다. 아니다. 거꾸로 이렇게 표현해도 맞는 말이 된다. 김규항의 글은 읽는 내내 깊이 공감하고 함께 하지만 나중에 그 실천에 대한 고민과 엄격함에 이르면 불편하지 않을 수 없고, 고종석의 글은 읽는 동안 일견 불편하지만 다 읽고 나면 어딘가 위안 받는 기분이 되곤 한다. 그러나 한 주에 한 번 일용할 양식에 감사한다고 일용한 죄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고종석처럼 자리하기란 우리 사회에서 귀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하기도 한 것이다. 나부터도 그런 자세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안전하게 스스로와 주변을 유지하며 메스를 덜 들이댄다는 걸 의미한다. 그는 그걸 잘 인지하고 있으며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 크게 나무랄 일이야 아니지만, 예컨대 바리에떼에서 다음의 글들이 주는 울림은 내 마음자락과 크게 공명하지만 한편 공허하다. 맥락은 물론 다르지만 말하자면 집단적 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보다 백만배는 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죽이는 것이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아름다운 제언 역시 실천적 관점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에서 한발짝 떨어진 듯 보여 안타깝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의 세련되고 단아해 뵈는 글들은 이 책에 실린 일부 현실 정치에 대한 직접적 언급에 이르면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형식에서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은 어쩌면 뛰어난 소설가 복거일, 잡문가 김훈이 다른 언설을 할 때 형편없어지는 모습을 닮아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마르크스주의에 마음이 쏠린 적이 없다. 집단에 대한 내 공포가 생래적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자본론을 끝까지 읽어낼 끈기와 지성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80년대 들어 ‘불법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책들을 들춰보기는 했다. 물론 마음이 쏠리지 않았다. 그것은 날림번역이 낳은 거친 문장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불확실한 방향으로 치닫는 집단적 열정이 낳을 수 있는 파멸적 결과가 두려웠고, 인간의 이타심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그러나 나를 공산주의로부터 밀쳐낸 더 중요한 이유는 단 한 번뿐인 생애에 대한 존중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내가 기독교 신자였다면, 그러니까 영혼의 불멸이나 다음 세상을 믿었다면, 공산주의에 쏠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종교가 없(었)고, 그래서 나는 영혼의 불멸도 다음 세상도 믿지 않는다. 즉 내 죽음은 내게 우주의 소멸이다. 물론 타인의 죽음도 그들에게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받아들인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 그렇다면 집단적 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중략) 세계화 자체는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세계화, 밑으로부터의 세계화일 것이다. 그것은 20세기의 공산주의가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진정한 국제주의를 새롭게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국제주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들 사이의 느슨하지만 질긴 연대를 통해 구축될 것이다.

팔공산

어제 한 모임에서 영천 신령에 있는 수도사로부터 팔공산 동봉엘 올랐다가 수태골로 내려왔다. 다섯 시간 정도 걸었다. 중턱부터는 아직 겨울산이었다. 그늘진 곳이 많아 그런가 키 큰 진달래(참꽃)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아직 피지 않은 게 더 많았다. 내려오는 길에 어릴 적 생각하며 꽃잎 하나 따서 먹어보았는데 달콤쌉싸름한 맛은 그대로였다. 대구은행 연수원 근처 식당에서 오리고기에 술을 잔뜩 먹고 돌아와서는 다른 모임 자리로 가 또 그만큼을 먹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가뿐한 게 맑은 공기와 오래 걷는 등산이 좋긴 좋은가 보다. 의식이나 행동이나 술이나 과잉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만, 잘 되지 않는 게 또 사람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려올 때는 여전히 무릎이 아팠다.

주절주절

즐겨찾기를 즐겨 찾다 보면, 이라고 말하다 보면 즐겨 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서며 그 말의 아름다움에 빠지기도 한다. 어쨌든 즐겨 찾다 보면 때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글들도 만나게 된다.

최근 들어 다시 대화를 하거나 또는 사이트 항해를 하다가 문득문득 눈물이 날 뻔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꿈속에서는 가끔 울기도 하는 모양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그 효용이 아니라 차이와 기호를 소비한다. 라이카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딱 그만큼은 자유롭기도 하다. 아날로그의 효용에서 그러하다.

사진을 찍다보면 인화물이든 파일이든 결과물이 남기도 하지만 찍은 그 순간이 머리나 가슴에 그냥 각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은 종종 뜬금없이 출몰하기도 해서 오래오래 함께 가곤 한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천당이니 극락이니 지옥이니 연옥이니 이런 델 가진 않을 것 같다. 뉘라서 그리 한단 말인가. 오늘 잠시 이야기하던 중 뱉은 말이기도 한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고 나중에 개입하려 든다면 당당히 따질 일이지 그게 그저 받아들일 일이겠는가.

어릴 적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까지 누가 물어보거나 어디 써낼 때는 으레 그렇게 답하곤 했다. 어려서 읽은 우주와 우주 개발 이라는 책 때문인지도 모른다. 커서 뭐가 될래, 또는 넌 꿈이 뭐냐는 식의 질문은 가히 폭력에 가깝지만 가끔 곱씹어보곤 한다. 넌 도대체 꿈이 뭐냐.

술 먹고 난 다음날이면 먹을 때처럼 괜히 기분도 좋고 머리 속으로 하냥 주절주절 거리기도 한다. 그 힘을 빌려본다.

약속

오늘 밤 자정부터 술, 담배를 끊기로 하였다. 0124님과 함께.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한 단서, 다가오는 설날부터는 반주 성격의 한 잔 술은 허용키로 하고. 어기고 다시 먹거나 피우는 순간, 공지하겠다, 동네방네.

행복할 사람들은 행복하도록

오래전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읽은 말이 요즘 자주 맴돈다. “다 부질없어 형. 아이하고나 많이 놀아 줘.”

오래 돼서 희미하지만, 닌자 거북일 보면 할배 거북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네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와 지금의 네 가치를 혼동하지 마라. 참으로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어젠, 아침부터 낮술 한 잔 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달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대작키로 한 놈, 달이삼촌과 시간이 맞지 않아 점심으로 우동과 군만두를 먹는 바람에, 목욕하며 시간 좀 보내고, 결국 네 시부터 마시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먹는 갈치구이가 맛있었다. 술맛이 오를 즈음 이 녀석에게 급한 볼일이 생겨 한 시간 반 가량 볼일을 보고 차수를 이을 수 있었다. 아, 행복할 사람들은 행복하도록!!

달면 뱉고 / 쓰면 삼킨다 / 가죽처럼 늘어나버린 / 내 청춘의 혓바닥이여(이상희의 시 ‘잘가라 내 청춘’ 전문)

인생은 그 날이 꽃과 같아 단 한 번의 몰락으로 나는 / 죽은 뿌리의 욕망을 알게 되었다(함성호의 시 ‘고향집, 폐허’ 중에서)

산을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몸무게에 의해 실존주의자가 되었다가 산꼭대기에 이르면 유물론자가 된다.(황지우의 시 ‘靈山’ 중에서)

대다수가 자신의 고역을 동댕이쳤을 때, 또한 그의 마지막 ‘가치’도 동댕이쳤다. 무엇에 대하여 자유롭게 되었는가, 하는 것 따위는 짜라투스트라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대의 눈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분명히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F.W.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저 세상에 가서도 그림을 사랑하자 / 그림이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인사동 어느 화방에서)

살고 싶으면은 죽은 체 하라, 죽은 체 하면 행복이 온다.(어느 TV 만화 영화에서, 꼬마들이 부르던 노래)

讀書之有患之始(김성동 ‘風笛’ 중에서)

예술가는 좀 게을러야 해. 그래야 이것저것 궁리할 시간이 많지.(백남준)

공격성이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사랑이 없는 미움이란 있을 수 없다.(콘라트 로렌츠 ‘공격성에 관하여’ 중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중에서)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의 시 ‘이탈한 자가 문득’ 전문)

다른 주머니 속에서 담배갑이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한바탕 일을 끝마치고 한 대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마지막 문단)

긴 하루

토요일 하루 재미있게 보내기로 마음 먹고 정오쯤 길을 나서는데, 이 녀석이 꼭 사진기를 가져가잔다. 해서 50미리 하나 달랑 챙겨 나섰다. 시원한데서 0124님 일 마치기까지 다섯 시간 가량 보낼 요량으로 이마트 칠성점으로 갔다. 메가박스에서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을, 한 이십분 가량 보고 잠든 녀석 덕에, 혼자 잘 봤다. 노래가 썩 괜찮았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정글나라 놀이방에서 잠시 놀다 0124님과 형수네 식구들을 만났다.

인근 송정동태에서 냉면이랑 동태찌개로 저녁 먹고, 형수네가 가기로 했다던 우방랜드로 나들이 갔다. 마냥 흥겹고 씩씩한 아이들과 무더위 덕에 지치고 힘들었지만, 뭔가 해낸 뿌듯함으로 우리는 우리를 달래기 위해 자정 가까운 시간에 계전 돌계단 아래 HAMA 호프집으로 향했다. 시원한 맥주가 피워낸 난데없는 한밤중의 이야기꽃은 아줌마들의 의기투합으로 다시 이마트 칠성점 근처 형수네 집에까지 이어졌다.

복분자주 몇 개 비우고, 아이들부터 아줌마들까지 하나하나 잠이 들고, 동이 트는 걸 보고서야 형수도 나도 잠이 들었다. 멍한 가운데 아픈 속을 달래고자 들안길 바르미 칼국수에서 점심을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니 오후 네시가 가깝다. 이래저래 휴가는 끝나고, 어디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듯, 피곤한 가운데도 즐겁고 따뜻하다. 근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이 휴가가 나의 일상 같고 또다시 출근하여 일을 하는 게 특별한 활동 같으니,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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