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은 지 오십 일.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린 금요일. 큰일 하나 치른 날이자 갈 사람과 올 사람이 있던 날. 이월에 이렇게 따뜻한 날이 있었나. 누가 조금만 더 찔렀으면 바로 술잔 위에 엎어졌을 거다. 한 번만 더 낚았으면 황천길이 빤히 보여도 덥석 물고 놓지 않았을 거다. 핑곗거리도 좋겠다, 내친걸음 한 일백 일은 채우리라던 장담도, 육십오 일을 버텼던 그전 기록을 갈아 보겠다던 욕심도 간단히 무너졌을 거다. 잘 참았다. 괜한 결심일 리 없다. 먼저 먹자기엔 영 계면쩍어 묵묵히 돌아오던 길, 반환점을 돈 장거리 러너가 된 기분이었다. 그만하면 되었든, 이제 시작이든.
어쩌다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 보면 내가 저기 살고 있구나, 그저 촉루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소멸 너머 무럭무럭 자라기도 한다. 불완전 연소의 꿈이 완전 연소일 리가 없다. 꿈을 꾸지 않을 도리가 없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