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가 이 길을 걸어왔다기보다 이 길이 나를 데려온 느낌. 그러고 보니 눈 속에 저 매화도 눈이 오거나 쌓인 가운데 핀 게 아니라 피고 나서 눈이 온 것, 만든다기보다 만들어지는 거였다. 그래, 보고 나니 보인 거고 골라서 고른 줄 알았더니 보여서 본 거고 고른 건 내가 아니었구나. 봄은 어딜 갔나. 절반은 초여름 같다가 절반은 초겨울 같더니, 늦봄이라도 부르나, 밤새 바람이 우렁차다.
그리 시시하게 살지는 않았다. 다 걸고 몇 번의 사랑을 하였고 일에 몰두해 보기도 하였다. 세상을 바꾸려 하였고 주변을 바꿔 나를 바꾸기도 하였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 어느 구석에는 봄꽃이 만발하였고 하얗거나 붉어 더욱 몽롱하였다. 취하거나 취하지 않는 삶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바쁘지도 않은 마음이 쉬 길을 찾지 못하기도 하였다. 저 새는 어디서 잠이 들고 저 고양이는 언제 떠나나. 삼월 하늘이 길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