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에 해당되는 글 3건

  1. 다만 2025/05/30
  2. 이만하면 누구나 2025/05/18
  3. 마무리에 대하여 2025/05/17

다만

from text 2025/05/30 05:42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기억에는 까마득히 오래된 것 같은데, 늘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기분이다. 진짜 자신과는 떨어져 있으나 적당히 무리에 섞여 인정 받으며 사는 삶과 외로우나마 고집을 부리며 잠행하듯 사는 삶 사이에서. 때때로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경계 위에 서 있게 된다. 사는 게 호락호락, 쉽고 단순하지는 않은 것이겠지. 그리 쉽게 단순하고 쉬워지지는 않는 것이겠지. 가볍게 사는 쪽과 무게를 안고 사는 쪽 사이에서 길을 잃고 가벼운 무게에 눌려 바스러지기도 하고, 한 세상 오늘만 보고 살거나 제대로 한번 제정신으로 살기도 한다. 그러한 작정의 이쪽저쪽에는 늘 술이 한몫하여 주기적으로 끊었다 잇곤 한다. 어느 한쪽인들 치우치지 말라고 말짱하다가도 취하고 다 무너졌다가도 슬슬 일어서곤 한다. 경계를 타듯 줄이거나 즐기지 못하니 널이라도 뛰듯 오르내리는 것이다. 오르내리며 즐기는 것이다. 먼 길에 제자리 맴맴이라 즐기는 것이 즐기는 것이랴만, 다만 인연이 있고 살아있으니 그렇게 즐기는 것이다.

이만하면 누구나

from text 2025/05/18 17:25
나이가 든다는 것, 늙는다는 게 뭘까. 바람은 작고 고민은 크며 기쁨은 적고 슬픔은 많구나. 싫은 사람은 피하면 그만이고 여전히 좋은 사람은 드무니, 사람은 적고 그리운 날은 많기도 하다. 지난날은 길고 앞날은 짧아서 그런 걸까. 기억이 가물거려 언제 귀밑머리 센 줄 모르겠다.

딱 싫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 아둔하여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거짓을 일삼고 언행이 가벼운 사람, 여러 잣대를 갖고 있는 사람, 이익이 앞서고 명예를 모르는 사람이 그들이다. 좋은 사람으로는 우선 진솔하고 담백하면 된다. 싫은 유형의 반대면 족하고, 사회적 식견과 인문학적 교양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감히 바라건대 예술적 소양에 유머와 직관을 겸비하여 인간적인 매력까지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마는.

꼬장꼬장하면서도 부드러운, 다 이해해도 다 받아들이지 않는, 다가오지 않아도 다가가는, 아직은 갈 데까지 가 보는 정신과 자세를 갖고 낙치, 백발에 맞설 일이다. 이만하면 누구나 나머지 청춘을 사르고 말겠다고 노욕을 부리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마무리에 대하여

from text 2025/05/17 16:32
그게 다 착란에 의한 어떤 작난 같은 거지요. 여기 없는 건 거기도 없어요.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늘이 오듯 작고 단순한 작난 같은 것. 마치 사랑이 정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흉내내며 살다 가는, 조막만한 그릇들의 밀회 같은 것이지요. 그래요, 오늘은 봄이 길어 뒤숭숭한 별들에 건배합니다. 먼저 간 이들과 아직 남은 이들을 생각하면서. 두루 잘 살았으면 했고, 멋스럽게 늙고 싶었지요. 사랑이나 낭만을 위해서라면 다 걸 것처럼 살았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즐겼으며 다른 잣대를 싫어하고 꺼렸습니다. 해 질 무렵과 가을을 좋아했고, 사람이 좋고 사람이 싫었습니다. 누구나 하는 마무리. 뜬금없이 아래 김영민의 가벼운 고백에서 한 대목 옮깁니다. 그럼요, 언제나 그렇듯 무소식이 희소식이지요.

좋은 가을 하늘이다. 어쩌라는 걸까. 다르게 살아보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