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와 난 손도 잡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절망처럼 눈이 내렸고 인적 없는 거리는 음식물 쓰레기처럼 나뒹굴었다. 목적을 달성한 도둑고양이가 다음 목적을 찾아 내세에 몸을 숨긴다. 무언가 단단히 바라는 것이 있었을까. 너를 대할 때만큼 긴장한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다른 모든 일은 후순위였다. 너와 나를 두고 세상이 뱅그르르 돌던 날, 심장 한구석에 고양이 수염 같은 게 자랐다. 단 한 번도 술잔을 놓고 마주한 적이 없구나. 모락모락 캐모마일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너를 따라 적막으로 사라져도 좋을까. 그만하면 오래 아팠으니, 모른 척 뜨거운 것 모두 두고 따르면 될까. 어느새 우린 손도 잡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딱 그만큼의 거리를 찾았다.
text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차례를 지켜 아파트 103동이 광장으로 들어서고, 연말부터 수목을 장식하던 알전구들이 마구 스스로를 흔든다. 마음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마음의 결은 거미줄 같아 얼마나 섬세하고 위험한가. 무엇이 거미처럼 도사려 끈적이며 성가시게 목숨을 노리는가. 고장난 보일러가 집요하게 돌다 멈추길 반복한다. 빗소리가 단호하다. 104동이 들어서다 멈칫, 하늘을 본다. 멀리 희끄무레하게 때 이른 동이 튼다.
적막으로 가는 길
미련과 욕심을 버리고 가는 거다. 어차피 가뭇없는 일, 떠날 때는 그렇게 두고 가는 거다. 무릇 모든 이별은 솔직한 독백. 하직은 언제나 이른 것이지만 거짓으로도 붙들 길이 없을 때면 웃으며 가는 거다. 그때 더는 비빌 언덕이나 한 걸음 디딜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도 좋겠다. 괜찮은 삶이었을까. 그늘도 되고 볕이 되기도 했을까. 전하지 못한 말, 헤아리지 못한 마음은 없을까. 적막으로 가는 길, 다 떠나 홀가분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것처럼
오랜 옛날, 느린 여자를 알았다. 행동만 느린 것이 아니어서 행동이 지나고 한참 후 사고가 따라왔다.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느린 행동은 자주 시간을 되돌렸고, 행동에 대한 판단은 미뤄야 했다. 뒤이은 사고가 행동을 뒷받침하고 행동에 대해 해명하였기 때문이다. 뒤에 설명하는 행동이란 얼마나 정당한가. 언제나 화두는 이것이다. 사고가 앞서 행동이 따르지 못할 때, 느린 여자는 알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위로와 위안이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지.
사고가 행동을 멈추었을 때 다시, 느린 여자를 알았다. 하지만 이미 행동도 사고를 멈추었고 다른 모든 것처럼 너무 늦게 알았다. 바람이 지나는 자국에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린바다배
제3회 열린바다배 전국 어린이 바둑왕전 참가를 위해 서연이와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였다. 저도 지난여름 이후 오랜만의 대회 참가였고, 나는 대회장인 한국기원에는 처음이었다. 건물 외관과 계단의 사진들, 대국실 전경이 최근 미생에서 보고 그간 몇몇 자료에서 보아 온 그대로였다. 2014년 전국 초등학생 랭킹 상위자와 한국초등바둑연맹 및 16개 시도협회 추천으로 모인 32명이 열띤 대국을 펼치는 동안 대국실 밖 대기실과 복도에는 여러 도장 관계자들과 학부모들이 서성거렸다. 표정과 몸짓은 제각각이었으나 내심은 같을 터, 아는 사람끼리는 안부와 격려가 오갔고 모르는 사람들은 애써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려운 경기이지만 기왕 먼 걸음에 16강 본선 진출만이라도 바랐으나 기대를 저버리고 2패로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네 명이 한 조씩 더블일리미네이션으로 치러진 예선, 접전 끝에 두 집 반을 진 첫 판의 아쉬움이 컸던지(상대는 이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두 번째 판은 저도 영 기대 이하의 승부를 가린 모양이었다. 돌아오는 길 한참 풀이 죽어있더니 제대로 한번 바둑을 해보겠다는 각오를 밝히는데 이렇게 상기된 얼굴을 언제 보았나 싶었다. 한국기원을 제집 드나들듯 할 날이 있을까. 오면가면 눈이 침침하여 나이 먹는 걸 알겠더니, 승패에 일희일비할 일이야 아니겠다만, 갈 길이 멀고 아득하여 마음 둘 곳 모르겠다.
어떤 마음
대저 어떤 마음은 어쩔 수 없어 억누르기도 한다. 누르고 눌러서 마음을 달래지만 누르고 눌러도 무뎌지지 않는 마음. 언제 그 마음이 꿈속에서라도 활짝 피어나기를, 일 년이면 열두 달 안타까이 수를 놓는다. 더러 얼룩진 마음을 말갛게 씻긴 채 팽팽한 줄에 널어 말린다. 그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올해를 그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부끄럽지 않게, 오래오래. 한 해의 마지막 날, 짧은 시간 함박눈이 내렸고 고운 다짐이 내려앉았다.
차면 반드시 넘친다
대체로 그릇의 크기가 그 됨됨이를 결정한다. 제대로 얘기하자면 그 그릇의 온전함이 결정한다고 하는 것이 옳겠지만, 어쨌든 이것의 부정적인 모습은 살아가면서 누차 확인하게 된다. 질투나 시기는 누구나 느끼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릇은 조막만 한데 욕심이 과한 인물은 큰일이라도 부여되면 기고만장하다 여지없이 무너진다. 제풀에 휘둘려 날뛰는 모습이라도 볼라치면 연민을 넘어 어떤 역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 모를 리 없을 텐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저만 세상을 가소롭게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제 그릇을 알고 인생에 겸허한 인물을 만날 때면 그 크기를 떠나 한데서 물장구치며 노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많은 걸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다. 세밑, 오랜만의 포스팅에 이딴 걸 적고 있는 걸 보면 내 그릇도 옹졸하고 온전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만, 그렇다면 그릇의 성질은 때로 바뀌기도 하고 크기를 키울 수도 있는 것일까. 드문 일이로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돌아보건대 제 크기를 벗어난 어떤 일이 사람을 망치기도 하지만 키우기도 하는 까닭이다. 물론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은 세상을 두렵게 볼 줄 알아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겠지만.
노자 도덕경 15장에 대한 왕필의 주석에 차면 반드시 넘친다(영필일야, 盈必溢也)는 말이 있다. 본디 뜻이야 어떻든, 뭘 채우든 우선 그릇의 크기부터 늘리고 볼 일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말이지만, 주석이 가리키는 노자의 말마따나 채우려 하지 않던지(불욕영, 不欲盈).
모처럼 늦은 저녁의 사무실, 삼한사온이 사라지고 나이가 든 탓인지 유독 몸이 추운 겨울이더니, 마음 맨 밑바닥에서부터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따뜻한 기억이 올라온다. 주변이 온통 힘들고 아픈데 목도리를 친친 감고 가여운 사람 하나 모른 척 지나간다.
첫눈 2
첫눈이 아주, 잠깐 미친년처럼, 도시를 습격하였다. 12월의 첫날, 바람의 척후를 앞세워, 잠복하던 마음들을 깨우고, 이후는 아랑곳없이. 호응하던 땅이 벌떡 일어나더니 더 깊이 내려앉았다. 그사이 철모르던 목련 꽃망울이 다쳤고, 게걸음을 치던 사람들은 품었던 걸 슬쩍 설수에 녹였다. 소식을 전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없었다.
* 그 밤, 첫눈을 화제에 올렸더니 다들 아니라 하더라. 쌓이지도 않았다면서. 한참 우기다 돌아보니 나도 그랬겠더라. 당신, 만나기 전에는.
술과 죽은 노래를
형식이 내용을 추동하매, 나는 이게 슬퍼 가을도 겨울인양 술을 부른다. 술도, 비슷하거나 다른 연유로 술이 마른 이들도 나를 찾는다. 불렀으나 외면하던 때를 생각하고, 그게 더워 나는 거절이란 걸 모른다. 누가 있어 어느 날 문득 손짓할 수 있다면, 응답을 듣지 못한대도 나는, 마냥 어린 아이처럼 설레고 들뜰 테다. 오랜 옛날, 누가 얘기하는 걸 들었지. 경계보다 아찔한, 날선 작두를 타며 술과 죽은 노래를 나누었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그 노래에 사랑을 안고 떠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살을 발랐고, 노래에 칼을 품은 사람은 여기저기 묽은 피를 토하였단다. 죽음이 영원하다면 이 노래도 영원하리라. 머리칼이 자라듯 영원히 자라나리라. 영원의 죽음과 죽음의 죽음까지, 죽음이 영원하다면 이 노래 또한 영원하리라. 뼈가 발린 사람도 피를 마신 사람도 함께 푸르게 타오르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옛날이야기는 옛날에 숨이 멈추었는가. 죽은 노래가 생각나, 올 가을도 술을 불러 낮게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