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폭풍이 몰아쳤다. 난데없는 계시처럼 두드려 맞았다. 가슴 아랜 천길 낭떠러진데 짓누르는 힘은 천근이 넘었다. 막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마음이 이럴까. 그렇게 짓밟힌 마음이 이럴까. 나무도 새도 꽃도 세상도 미동도 않는데 오롯이 저 혼자 감당하려니 외롭고 괴로웠다. 點心으로 월배까지 가 메기매운탕 한 그릇 먹고 나서야, 뜨거운 국물에 보드라운 속살을 뜯어먹고 나서야, 희멀겋고 넓적한 머리통, 그 길게 벌어진 주둥일 마주하고 나서야, 겨우 숙취를 즐기듯 여진을 즐길 수 있었다. 그제야 폭풍이요 계시인 줄 알았다. 매뉴얼 없이 해체 후 재조립한 것 마냥 여기저기 덜거덕거리긴 하지만 그예 형태는 갖추었다. 그나저나 그저 흘러가게 두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아닌 인생, 그물에도 걸리는 바람처럼 여태 갈 곳 모르겠다. 아무려나, 짙은 피를 줄 터이니, 알았으니, 그만 튼튼한 심장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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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 2008/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