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6 서른 번째 롤

나나 내 가족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나 가능성에 대한 고려, 적어도 그 정도의 분별력을 갖는 것이 세상일을 꾸미거나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자신의 안위를 바탕으로 쉽게 타인의 삶이나 병리적 현상들을 재단하는 사람들과 세태가 갈수록 두렵다. 망가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새삼 ‘거대한 기획’이 절실함을 느낀다. 설령 아무것도 멈추거나 바꿀 수 없을지라도 어떤 커다란 기획을 염두에 두고 모색하고 저지르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뭣하면 쭈그리고 앉아 비명이라도 지르고 꼬부라진 혀로 주정이라도 부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게라도 꿈틀, 살아야 하는 것을.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summicron 50mm 3rd, 코닥 컬러플러스200

율이 첫돌

율보뚱보의 첫돌. 음력 생일은 아직 좀 남았으나 바쁠 삼월이 부담스러워 이월 마지막 토요일로 날을 정했다. 그랜드호텔 뷔페 더 키친에서 식구들끼리 점심. 돌잡이 때 나는 돈을 집는 모습만 보았는데, 제 어미 말로는 망치를 집으려 잠깐 기우뚱하는 몸을 바로잡았더니 곧바로 돈을 집어 들었단다. 전날 과음한 숙취가 가시질 않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제 형과 달리 백일도 그렇고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못 남겨주어 미안하다(돌아와서야 건질 만한 사진은 고사하고 독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한 걸 알았다).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유치원 졸업식

2010년 2월 17일, 서연이의 유치원 졸업식. 흔한 의사, 선생님들 가운데 피아니스트는 돋보였고 나름 흐뭇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기실 녀석의 장래 희망은 프로 바둑 기사이다. 아주 잠깐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때가 있었나 보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업이 무엇이든 그 생업이 무엇이냐 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할 테다.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아비에게는 부끄러움만 넘친다마는, 나누고 도우며 일생을 제대로 누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매듭 하나 짓는 날, 아비 혼자 와 혹여 섭섭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카테고리 D50

백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다. 몇 해 전인가 내 지갑은 거의 바닥이 나고 또 뭍에서는 무엇 하나 흥미를 느낄 만한 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얼마 동안 배를 타고 나가 넓고 넓은 바다를 한번 살펴보았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울한 기분을 털어 버리고 피의 순환을 돕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입가에 험상궂은 주름이 늘 때, 11월의 가랑비처럼 마음속에 축축한 비가 내릴 때, 또 문득 장의사 앞에서 길을 멈추고 길에서 만난 장례 행렬을 뒤쫓게 될 때, 특히 우울한 기분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웬만큼 강한 도덕적 자제 없이는 마구 거리로 뛰어나가 타인이 쓰고 있는 모자를 강제로 벗겨 버리고 싶어질 때, 그런 때면 더욱더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권총과 탄알의 대용물이 되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휩쓸어 가는 물결이 어지럽게 엇갈리면서 큰 돛대 위에 마지막 가라앉아 가는 인디언의 머리 위를 덮었고, 남아 있는 것이라곤 다만 곧게 서 있는 둥근 목재 몇 인치와 또 거의 같은 높이로 아슬아슬하게 밀려온 무서운 파도에 박자를 맞추며 얄궂게 나부끼던 기다란 깃발뿐이었다. 그 순간, 붉은 빛 팔과 뒤로 들어 올린 망치가 공중으로 밀려 올라오면서 그 깃발을 서서히 가라앉으려는 그 둥근 목재에 더욱 단단히 못 박아 놓으려 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매가 별 사이의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내려와 큰 돛대 꼭대기로 다가오더니 비웃듯이 깃발을 부리로 쪼아 보기도 하며 태쉬테고를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 새가 어쩌다가 그 커다란 날개를 망치와 목재 사이에 끼워 넣자, 금세 물속의 야만인이 죽음의 숨결을 헐떡이며 그 망치를 거기에 내려치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늘 위의 새는 대천사 같은 소리를 지르며 왕자다운 부리를 하늘로 쳐들고, 그 사로잡힌 몸은 에이허브의 깃발에 싸여 그의 배의 길동무가 되어 가라앉아 갔다. 이때 작은 해조의 무리가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 위를 소리 높이 울어 대며 날고 있었다. 깊고 깊은 물가의 험한 측면에서는 슬픈 듯 흰 파도가 굽이쳐 부딪치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무너졌고, 바다의 커다란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굽이치고 있었다.

허먼 멜빌의 백경(현영민 옮김, 신원문화사) 1장 어렴풋이 보이다의 첫 문단과 135장 추적, 제3일의 결말 마지막 문단. 장엄한 세계, 그 허망한 종말이 수많은 잠언들 속에 끊임없이 명멸한다. 불멸에 대한 필멸하는 욕망들의 처연한 서사시.

유치원 발표회 2

어린이집에서의 첫 재롱 잔치두 번째 재롱 잔치 그리고 지난해 유치원 발표회에 이은 취학 전 마지막 발표회. 커가는 걸까, 사진 속 녀석의 얼굴은 갈수록 지치고 무표정해 보인다. 녀석에게도 나름의 병리학 하나쯤 들어설 때면 나는 어떤 모양으로 늙어 있을까. 화병에 옮겨 거실 한 귀퉁이에 놓아둔 연분홍 튤립이 밤새 화사하다. 기울었던 종 모양들이 일제히 천장을 향하고 있다. 나무들의 동태를 보니 바깥에서는 바람도 많이 잦아들었다. 76개월, 관계와 죽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은 녀석에게도 세상에게도 깊은 평화를.

두 발짝

새해 첫날, 낮잠 자는 사이 0124님이 찍은 314일째 되던 날의 율짱. 바로 다음 놀다 넘어져 오른쪽 눈가가 찢어지는 바람에 벌써부터 큼지막한 생채기 하나 달았다. 녀석, 며칠 전부터는 서투나마 도리질을 시작하였으며 오늘은 제 스스로 처음 두 발짝을 떼기도 하였다.

* 주경철의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는 얼핏 예상한 방식의 글쓰기는 아니었으나 꽤 좋았다. 이솝 우화집과 아가멤논으로부터 데카메론, 주신구라, 보물섬 등을 거쳐 파리대왕과 허삼관 매혈기에 이르기까지, 마치 그 책들을 다 읽은 것처럼 인간사와 세상사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연대기로써의 역사가 아닌 풍속과 문화, 특히 잔혹사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보는 것은 때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무슨 일에서나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에 앞서 두려움을 먼저 배우는 못난 심성 탓일 게다. 이전투구의 역사, 미련 많은 놈이 결국 인간을 믿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할 게고.

카테고리 D50

일요일 오후

이사하고 한 달 만에 처음 사진기를 들어보았다. M6에 필름을 넣어둔 지는 반년이 훌쩍 넘었다. 낮잠 속으로는 싯누런 물고기가 귓전을 날아다녔다. 날카로운 미늘은 내 목 어딘가도 묻힌 듯 하였다. 까무룩 그때 그 잠 속으로 떨어지고만 싶었다. 그까짓 것 꾸욱 삼킨 채로 같이 날아오르고만 싶었다.

카테고리 D50

무지개

공이치기가 공이를 때리는 순간, 몹시도 엄숙한 그 무엇이 가슴을 스치면서 긴지는 삶과 죽음의 유사와 일치를 본다. 자신은 항상 저승을 바라보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다. 그곳을 향해 자진하여 온몸과 온 영혼을 맡기려고 하는 순수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긴지는 경악한다.

이 녀석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현세에 존재하는 데 대한 망설임이 깊구나. 지나친 감수성에 휘둘려 본능의 노리갯감이 되고 있구나.

긴지는 애용하던 무기를 죽은 노인에게 인심 썼다. 만일 하늘의 처벌에 굴복하고 싶지 않거든 그걸로 한 방 먹여주시라. 아니면 저 세상에서도 허무하기만 하거든 그걸로 다시 한번 죽으시라. 총알은 아직 충분하다. 두 사람 분은 충분히 되니까 이번에는 부부가 나란히 목숨을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지개란 이윽고 없어지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빛의 띠가 찬연할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는 데 무지개의 참된 가치가 있다. 하늘 높이 걸려 있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보는 이들은 선명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루야마 겐지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에서 몇 대목. 꽤나 오랜 시간 힘들게 읽었다. 번역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가, 물론 잘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원문에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충실한 번역이 아니었을까 고쳐 생각하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과 같은 번역자였다. ‘금각사’와 달리 그 책도 꽤나 재미없게 읽은 기억이 난다.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마루야마 겐지는 역시 집요하고 무서운 정신의 소유자란 생각을 하였다. 어쨌든, 백주 대낮의 긴지, 마코토, 하나코, 조각룡, 가면, 저승사자, 바다거북, 검은지빠귀, 그리고 울새와 큰유리새, 같으면서 다르고 하나이면서 여럿인 이들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봄 병풍까지 읽고 놔둔 ‘달에 울다’는 좀 쉬었다 읽어야 할 듯.

*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세대가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남자인 나는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도 알 수도 없었다. 여자가 여자인 어머니로부터 또는 시어머니로부터 이어내리는 질긴 이야기들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마초스러움과 억지, 배타적 욕망들은 잘 배워왔겠지만 말이다. 여성성의 긍정적인 대목들을 마주하다 보면 때로는 그 부정적인 대목들을 깡그리 잊고 그 세계에 살고만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한다. 가련한 일이다.

* 첫 이발 후 동자승 같은 율짱. 뒤통수도 예쁘다. 아비나 형이 갖고 있는 제비초리도 없고 그처럼 깎아지른 절벽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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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일째

183일째. 거의 배밀이 없이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두 손 두 발로 버티기(엎드려뻗치기)를 여러 날 하더니 곧잘 기어 다닌다. 간밤엔 다들 잠든 사이 혼자 아빠, 아빠를 애타게 부르며 제 형과 내가 자는 방을 향해 거실 절반을 가로질러 오기도 하였다(각방자리 육 개월이 넘으니 겪는 재미인지도). 새 책장과 좌탁 구입 기념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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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D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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