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from text 2009/03/29 23:41
어제 예정에 없던 사랑니를 뽑았다. 오른쪽 아랫잇몸 수술 도중 앞쪽 어금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며 뽑은 것인데, 지금껏 그로 인한 어떤 증상도 없었던 데다 잇몸 아래 숨겨져 있어 나로서는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유일한)사랑니여서였을까. 그간 존재조차 몰라서였을까. 처방전을 들고 치과를 나와 약국으로 가는 동안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매주 한 시간 안팎을 의사나 간호사 앞에 입을 딱 벌리고 누워 좋지 않은 속을 드러내고 있다 보면 일종의 자기 모멸감 내지는 자기 연민에 젖어들곤 하는데, 이날은 특별히 더 뭔가 위안이 필요한 기분이었다.

중앙통 거리는 발랄하고 흥겨웠다. 새치름한 날씨에 제 모양을 잃고 우중충히 돌아앉은 봄꽃들과 달리 거리의 여인들은 날씨 따위 아랑곳없이 통통 튀었다. 위안거리 삼아 뭐라도 지를 품새로 가까운 백화점엘 들러 에스컬레이터로 맨 위층까지 올랐다가는 그냥 내려왔다. 그리고는 술 먹은 다음날이면 자주 사먹곤 하던(술을 먹지 않고부터는 생각나지도 않던) 수제 햄버거 가게에서 거즈를 앙다문 입으로 점원과 가벼운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햄버거와 샐러드를 포장해 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겨 돌아다니다 온 것이었다. 마취가 풀리며 진료 시작 후 신경치료 이래 가장 큰 통증과 연민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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