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기온이 10도 이상 뚝 떨어지더니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린다. 여름이 가을로 가는 결정적 길목을 목도한 기분이다. 어쩌다 너는 그 반지를 그 못에다 던지고, 나는 전당포에다 맡기고 찾지 않았을까. 너를 잊으려다, 너를 잊으려던 나를 잊어버렸을까. 시간만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니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 죄다 사라져 버렸다. 굳은살 배긴 발바닥의 기억도, 발굴 현장의 붓자국과 노오란 플레어스커트의 나풀거림도. 빗길을 구르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네 목소리는 들리다 말고, 너는 천천히 내리다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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