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에 해당되는 글 3건

  1. 저무는 꿈 2026/04/28
  2. 별의 길을 찾아서 2026/04/19
  3. 부처꽃 2026/04/08

저무는 꿈

from text 2026/04/28 19:08
대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주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으며 그릇을 넓히되 더 담으려 하지 않고 불완전한 것을 사랑하려 애썼다. 삶의 한때를 허투루 보내기도 하였으나 빛나는 한때를 옛 나무에 새기기도 하였다.

어느 날 보니 몇 년씩 뭉텅이로 사라졌던데 이제 그만 해롱거리고 남은 세월 어찌 지나나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문득, 열꽃처럼 번지는 옛 사랑을 만났다.

낙치, 백발이야 막으랴만 가는 길 돌아설까 하니, 저 앞에 보이는 것이 네가 아니냐. 울긋불긋 지나온 날들이 아니냐. 기다리는 것이 훗날이요 옛날이 아니냐.

저무는 꿈을 꾸었구나. 저물되 저물지 않는 꿈을 꾸었구나.

별의 길을 찾아서

from text 2026/04/19 06:22
지지난 금요일, 하루 연가를 내고 결혼 25주년을 핑계로 0124님과 부산에 다녀왔다. 대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보수동 책방골목, 깡통시장,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자갈치시장, 해안시장을 두루 다녔다. 생선구이와 참가자미회, 도다리쑥국을 먹었고 상비약도 샀다. 돌아보자니 그 골목길, 삼랑진, 물금, 구포 같은 이름들과 주먹만한 동백꽃들이 떠오른다. 열차 창밖으로 먼 꽃나무들이 예뻤다.

별을 따라 바른 길을 간 한 소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넓은 길도 아니고 빠른 길도 아닌, 별의 길을 찾아서.

다시 한 번, 가볍게 먹고, 비우고, 움직이기로 마음을 다진다. 다음은 이근배의 냉이꽃.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평생을 모른다
초가집이 살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음이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부처꽃

from text 2026/04/08 20:52
허무를 허물고 나는 가네 눈먼 새처럼 작은 집을 지었지 마른 잎들과 해묵은 감정들과 철 지난 이데올로기들 걷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네 사랑에 눈먼 작은 새처럼 훨훨 저 길 끝에 닿고 싶었네

저 길 끝이 먼저 닿아 해거름에 꽃을 피웠네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명 같던 줄을 세월에 묻고 하염없이 적멸을 기다리는 거미처럼 허문 마음들이 더는 꿈도 꾸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