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고픈 저녁, 그림자처럼 길게 몸을 끌며 지나간 이들을 생각한다. 바람이 분다. 겨울 칼바람도 느린 걸음을 재촉하지 못하고 하나둘 불을 켜는 가게들을 위협할 따름이다. 지나간 일들이 지나간 이들을 차례로 지나간다. 다만 술이 고픈 저녁, 겨울 해는 짧아 어째 설움이 긴 것인가. 오늘 마시지 못할손 다시 마시지 못할까마는, 부질없이 마음은 바쁘고 걸음은 더욱 느리다. 지난날처럼 아무데고 혼자 들어가 술잔을 기울이지도, 다 늦은 시간에 누구를 부르지도 못할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지나간 이들과 지나간 길을 길게 걷다 보면 마치 여러 사람과 번갈아 술잔을 주고받은 것처럼 적당히 취기가 오르기도 한다. 가장 먼 길을 가장 길게 걷다 보면 고픈 술을 달래고 지난날처럼 훗날을 기약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쯤이면 길 끝에서 다시 바람이 불고, 시린 눈에는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저녁이 곱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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