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칼립투스

from text 2022/06/03 13:50
봄이라 라일락이나 아까시꽃이 만발하거나 어쩌다 잘 차려 입은 여인네가 분내 날리며 스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함께 속내 나눌 사람이 그리워 더 멀리 걷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한때 시커먼 속내 몰래 나누던 누군가를 생각하기도 한다. 공기에 열기가 절반, 수분이 절반. 어차피 가뭇없을 일들이 새삼 새삼스럽다. 서사가 없어도 다툴 정분이 없어도 그 향내, 그 분내 속에 글쎄, 사는 게 조금 하찮기도 하고 조금 겁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봉덕동 유칼립투스. 늘 블루스 음악이 흐르고 자는 시간 외에는 마셔야만 할 것 같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여섯 개 정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초상이 있고, 마른 꽃이 걸린 한쪽 벽에는 유칼립투스가 그리스어로 덮여 있다 혹은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고 코알라에게 신경안정제 역할을 하며 꽃말은 추억이라고 적혀 있다. 잔뜩 마셔야만 할 것 같은 데가 아닐 수 없다. 안주는 대체로 치즈나 과일 몇 조각. 어쩌다 봄이면 주인장이 장만한 옻순이나 가죽순을 맛볼 수도 있다.

여름이 내려앉은 밤거리는 아무렇게나 울고 노래하는 취객을 허용한다. 서로는 서로 분내 같은 추억만 남기고 가뭇없이 가버린 사람처럼 안부를 주고받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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