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에 해당되는 글 5건

  1. 믿음 2007/11/27
  2. 오마쥬 2007/11/23
  3. 거미 2007/11/21
  4. 봄이 오면 2007/11/04
  5. 나는 가을에 피는 꽃이에요 2007/11/03

믿음

from text 2007/11/27 13:19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 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46절 말씀이다. 정국은 재미없고, 돌아가는 세태는 어수선하다. 다 털어내고 기본을 살필 때다.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보기 좋은 때가 아닐 수 없다. 간혹 부끄러운(또는 부끄러워 하는, 부끄러운 걸 아는) 얼굴을 만날 때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는 때로 살아남는다는 핑계로 옛 기준으로라면 도저히 들고 다닐 도리 없는 얼굴들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때, 내 전부가 온전히 가 닿던 순간, 거꾸로 전해지던 가는 떨림을 기억한다. 믿음의 방편이란 그러한 것.

오마쥬

from text 2007/11/23 08:49
망각을 먹고 사는 짐승, 그 오랜 습속, 이 세상이 그 세상이었다니, 내가 떨어진 별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이 아침, 대기는 또 왜 이런다냐.

거미

from text 2007/11/21 21:43
길었다. 은유할 길이 없었다. 지난 가을
두어 세월은 지낸 듯
늙은 몸이 감당하기 버거워
긴 호흡을 배웠다. 마디로 마디를 밟으며
나무를 건너는 동안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돌아보면 저만치
줄 끝에 매달린 그리움, 서러움.

그때, 지나며 보았지. 그렇게 무언가는 내려놓고, 무언가는 지고
계절을 나는 나무들, 잎보다 무성한 가지로도 가릴 수 없는 치부
나를 닮은 내 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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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from text 2007/11/04 18:49
겨울은 길고 그 겨울이 잉태하는 봄은 그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에 달렸겠지요. 알 수 없는 것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늘 피는 꽃이라고 또 피라는 법이 있을까? 늘 돌아오는 봄이라지만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걸요. 소식 들었나요? 어느 동네에선 햇살 가득한 봄날 속으로 고운 할머니 하늘거리며 한 고개 넘어가실 때에 나비들이 나풀나풀 등 떠밀어 드린대요. 잘 사셨다고, 잘 가시라고.
오늘 아침 이야길 들으니, 서연이 녀석, 피아노학원에서 높은음자리, 낮은음자리를 익히고 진도가 꽤 빠른 모양이다.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전부터 배우고 있던 몇몇 아이들의 진도를 넘어섰다니 말이다.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아마도 이 녀석 바이러스에 감염된 선생님들이 거칠고 어설픈 모양을 버리고 친절하고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착각한대도 할 수 없다.

그저께 아침에는 글씨 쓰는 일에 재미 붙인 녀석의 노트를 들춰보다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나는 가을에 피는 꽃이에요', 놀라는 마음 한편 밀려오는 어떤 감동을 느끼며 한참 되읽고 되읽었다. 그리고 다른 장을 펼쳐보는데, 거기에는 '나는 봄에 피는 꽃이에요', '나는 겨울에 만드는 거예요'가 써있지 않은가. 이런, 알고 보니 우리가 즐겨하는 수수께끼 놀이를 옮겨놓은 것이었다. 허나, 착각도 이런 착각이라면 평생을 하고 싶달밖에.

현실이라는 것에 반쯤만 발을 딛고 무언가에 취해 일생을 보낸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워낙에 현실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반쪽 살다 가는 삶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결국 마지막 갈 때 웃으며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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