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얼마 만에 사보는 음반인가. MP3 플레이어를 사고 나서는 생각날 때마다 파일들만 찾아 헤맸는데, 간단히 파일 변환하는 방법도 알았고, 우선 눈에 띈 율리시즈의 시선 OST를 작곡한 Eleni Karaindrou의 Elegy of the Uprooting과 Music For Films를 샀다. 덩달아 산 책은 오정희의 돼지꿈, 톨스토이의 부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가을을 지나며 책도 음악도(그렇지, 필름도) 한가득 쌓았으니 천천히 즐길 일만 남았다. 좀 덜 두리번거리고(그래야 덜 지르고 덜 질릴 일이다) 내 안으로 발밑으로 향할 땐가 한다. 술 마시기 좋은 계절, 이 겨울도, 그저 비껴가긴 다 틀린 게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한 걸 꿈꾸고 그리워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사람도 그렇다고 하면 으레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된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나 지도, 또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길에 그만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 알 수 없는 말들을 또다시 늘어놓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곤 영원히 없을 거라는, 누가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낙인 때문이다. 그 자국이 아직 시뻘겋게 타고 있기 때문이다. 종일 겨울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내어놓은 가슴에 남은 흔적은 지울 생각도 않고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자, 누굴 원망할 텐가.
길었다. 은유할 길이 없었다. 지난 가을
두어 세월은 지낸 듯
늙은 몸이 감당하기 버거워
긴 호흡을 배웠다. 마디로 마디를 밟으며
나무를 건너는 동안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돌아보면 저만치
줄 끝에 매달린 그리움, 서러움.
그때, 지나며 보았지. 그렇게 무언가는 내려놓고, 무언가는 지고
계절을 나는 나무들, 잎보다 무성한 가지로도 가릴 수 없는 치부
나를 닮은 내 긴 그림자.
두어 세월은 지낸 듯
늙은 몸이 감당하기 버거워
긴 호흡을 배웠다. 마디로 마디를 밟으며
나무를 건너는 동안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돌아보면 저만치
줄 끝에 매달린 그리움, 서러움.
그때, 지나며 보았지. 그렇게 무언가는 내려놓고, 무언가는 지고
계절을 나는 나무들, 잎보다 무성한 가지로도 가릴 수 없는 치부
나를 닮은 내 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