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에 해당되는 글 3건

  1. 다른 우주 2 2015/11/25
  2. 소설 2015/11/23
  3. 꽃무릇을 두고 2015/11/09

다른 우주 2

from text 2015/11/25 11:45
어제 가을의 끝을 붙잡고 한잔했더랬지요. 내가 놓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오는 길에는 겨울이 와 있습디다. 술집에서는 모처럼 생각의 여름과 김윤아를 청해 들었습니다. 만삭의 젊은 안주인은 무엇이 즐거운지 내내 웃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각자 자기만의 하루를 털어내고 있었지요. 나는 다른 우주를 꿈꾸었답니다. 기억을 더듬었더니, 거기, 남겨두고 돌아왔던 내가 있습디다. 부서진 돌가루처럼, 아직도 남아 있습디다. 꽃을 거들듯 짐짓 향만 사르고 못 본 체 돌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아쉬웠던지 일행을 데리고 굴 속 같은 집으로 들어와 기어이 고꾸라지고 말았지요. 이 아침에는 비가 오고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나는 언제나 미더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하긴 굽은 것도 곧은 게 모인 것이고, 곧은 것도 들여다보면 저마다 굽어 있을 겁니다. 점심, 든든하게 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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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from text 2015/11/23 22:42
절정에 이르러 너를 만나지 못하였다. 빨간 원피스, 가지런한 두 다리에 눈이 멀었다. 보고 싶었다. 글쎄, 세상은 아름답지도, 추하거나 흉하지도 않더라. 올가을은 유난히 길었다. 일찍 와서 끝내 버텼다. 마르게 시작하여 오래 눅눅하였다. 내내 흐리거나 비를 뿌렸다. 몇몇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고, 나머지는 애써 돌이키지 않았다. 서둘렀던 꽃무릇은 지난가을이 더 야속했을까. 보내거나 남은 이들은 무사하였을까. 코스타리카 따라주를 들고 옅은 현기증과 미열을 즐긴다. 철새 같은 음악이 흐르는 통창을 두고 안팎이 나뉜다. 풍경일 때, 거리를 둔 사물일 때 비로소 네가 궁금하다. 금방이라도 눈발이 날릴 것만 같은 하늘, 오후 네 시가 저문다.

꽃무릇을 두고

from text 2015/11/09 16:52
안경을 벗고 홀로 자리에 누우면 타임머신이 따로 없다. 왼쪽으로 잠시 뒤척이면 금세 일이십 년을 거스르고,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먼 앞날이 문득 다가선다. 이도 저도 싫어 똑바로 천장을 향하면 그때의 내가 빤히 떠 있다.

가을이 저문다. 가을이 저물어 네가 울고, 네가 울어 날이 저문다. 산이 무너진다. 가위도 정이 드는가. 나는 두려움이 두렵다. 길은 몇 갈래, 너를 두고 이 길을 간다. 푸르게 꽃무릇을 밟고 간다. 마음이 지척이라 가는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