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에 해당되는 글 4건

  1. 보고 싶은 얼굴 2021/10/31
  2. 다른 우주 2 2015/11/25
  3. 봄날 하루 2015/03/22
  4. MP3 2 2008/09/28

보고 싶은 얼굴

from text 2021/10/31 15:52
어쩌다 보니 담배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꼬박 일 년이 지났다. 끊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라 그저 한번 안 피워 보자 했던 것이 그렇게 되었다. 아직 책상 서랍에는 뜯지 않은 담배 두 갑과 일회용 라이터가 있다. 술은 지금도 가급적 줄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대체로 절반 정도 성공한 것 같다. 횟수는 줄고 먹을 때 양은 오히려 늘었달까. 생각해 보면 몸 상태를 따라가는 것이니 기실 바뀐 게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며칠 넷플릭스에서 인간실격을 몰아 보았다. 자의식 과잉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저씨 이후 모처럼 드라마 속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보는 내내 끝까지 다 보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지 생각하였다. 이제 이 세계가 낯선 걸 보면 거기서 긴 세월을 보낸 게 틀림없다. '붉은 꽃그늘 아래서 꽃인 양 부풀었던, 남겨진 혼잣말'들에 복 있을진저. 할렐루야.

* 인간의 자격 /화의 나라 /투명인간 /사람 친구 /이름 없는 고통 /아는 여자 /Broken Hallelujah /다윗과 밧세바 /세 사람 /제자리 /금지된 마음 /유실물 /모르는 사람들 /인간실격 /마침표 /별이 빛나는 한낮

다른 우주 2

from text 2015/11/25 11:45
어제 가을의 끝을 붙잡고 한잔했더랬지요. 내가 놓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오는 길에는 겨울이 와 있습디다. 술집에서는 모처럼 생각의 여름과 김윤아를 청해 들었습니다. 만삭의 젊은 안주인은 무엇이 즐거운지 내내 웃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각자 자기만의 하루를 털어내고 있었지요. 나는 다른 우주를 꿈꾸었답니다. 기억을 더듬었더니, 거기, 남겨두고 돌아왔던 내가 있습디다. 부서진 돌가루처럼, 아직도 남아 있습디다. 꽃을 거들듯 짐짓 향만 사르고 못 본 체 돌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아쉬웠던지 일행을 데리고 굴 속 같은 집으로 들어와 기어이 고꾸라지고 말았지요. 이 아침에는 비가 오고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나는 언제나 미더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하긴 굽은 것도 곧은 게 모인 것이고, 곧은 것도 들여다보면 저마다 굽어 있을 겁니다. 점심, 든든하게 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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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하루

from text 2015/03/22 22:39
김윤아의 이상한 이야기와 비밀의 정원을 반복해 들었다. 어린 시절 본 티브이 인형극 주제가의 애달픈 곡조를 닮았다. 그 곡조가 김윤아의 신 내린 목소리를 만나 늦은 바람처럼 사람을 흔든다. 늦은 바람이 흔든다고 흔들릴까만, 좁은 견문에 새가슴이 무너질 땐 이렇게 속절없다.

가고 오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라. 애당초 오고도 가지 않을 거라 믿지 않았다. 황사만 봄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매화, 산수유에 이어 동백도 피고 목련도 피어 봄은 알록달록 사연이 많았다. 누구는 돌아서고 누구는 돌아서서 울었다. 봄밤이 싫어 내처 울기도 했다. 봄날 하루는 여름 여섯이요, 차마 겨울 열인 줄 진작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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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from text 2008/09/28 23:28
일요일 아침, 쌀쌀한 날씨에 뒤늦게 보일러 불을 지피고는 거실 바닥에 혼자 등 기대고 누워 MP3를 들었다. 꽃다지의 '민들레처럼'에서, 쓴물처럼 사랑처럼 넘어오는 걸 울컥하고 삼켰다. 귀에 꽂고 음악을 들을 때면, 이도 적응이 되려나, 감정선이 말할 수 없이 예민해져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여름 수련회엘 가서 텐트에 누워 친구가 건네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국화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 어떤 비릿한 슬픔 같은 걸 느꼈던 기억, 마구 쿵쾅거리던 가슴을 잊을 수 없다. MP3 플레이어 장만을 망설였을 때에는 장사익의 뽕짝 절창을 듣고 참을 수 없어 술을 이었던 기억도 한몫 했었다. 먹고 싶은, 먹을 수밖에 없는 얼마나 많은 핑계거리들이 생길 것인가. 어제 아침엔 새로 잠을 청하며 김윤아의 앨범 '유리가면'을 듣다 바닥 아래로 꺼져들고 말았다. 차츰 가슴이 뻑뻑하게 조여 오더니 뻐개지듯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차오르는 눈물을 거둘 뿐, 뼛조각이 해체된 듯 꼼짝 못하고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잠이 들어 오래 헤맸다. 오늘 낮잠에서 깼을 때도 그랬지만, 일어났을 때에는, 한세상 보내버린 듯 먹먹하면서도 지금 바깥에 내리는 가을비처럼 어딘지 맑고 살뜰한 마음이 돌았다.

* 언제 한번, 비 오는 날 차안에서 음악을 들을 때,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다.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무딘 귀를 잠시 틔워주기도 하나 싶다.

* 월요일 퇴근길, 용기(?)를 내어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는 MP3를 들으며 걸었다. 단절의 느낌은 아니군, 몰입도 잘 안 되는데? 풍경을 보는 맛이 섬세한 것도 같고, 길을 건널 때, 그리고 아는 사람을 만날까, 아직까진(!) 자주 두리번거리게 되는구나, 서연이 녀석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이리 가까웠나, 했다.

넣어놓고 두고두고 들을 음악을 고르다가는(기기 등록 이벤트로 마음껏 받아 일정 기간 동안 들을 수 있는 무료 서비스를 받았는데, 들어보고 좋으면 간직하려고 한달 백오십 곡을 구천구백원에 받을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였다) '추억 여행'을 하는 기분에 빠졌다.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어떤 장면, 어떤 공간이 얽힌 것들에 우선 손이 갔다. 양희은의 '가난한 마음'과 '내 님의 사랑은'을 찾아 들을 땐 아, 하고 금세 스무 살 시절로 날아가기도 했다. 좋은 길동무가 생겼다. 간밤엔 세상이 한번 뒤채는 걸 느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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