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찾아왔다.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보이지 않는다. 더는 취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탄자니아나 과테말라를 앞에 두고 그리운 것들을 생각한다. 흐린 향기 속에 지나간 것인지 다가올 것인지 모를 것을 그리워한다. 느린 맥박이 뛰고, 조바심 같은 것이 익숙하게 머물다 간다. 창밖으로 계절이 지난다. 그래, 습관처럼 나는 늘 남은 계절의 흔적을 찾았지. 푸석푸석한 껍질 아래 철마다 구멍이 생겼다. 깊은 고동, 몹쓸 가슴으로 오래 너를 만난다. 너는 너의 미덕으로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나눴다. 다시 겨울 한낮이 저문다.
절정에 이르러 너를 만나지 못하였다. 빨간 원피스, 가지런한 두 다리에 눈이 멀었다. 보고 싶었다. 글쎄, 세상은 아름답지도, 추하거나 흉하지도 않더라. 올가을은 유난히 길었다. 일찍 와서 끝내 버텼다. 마르게 시작하여 오래 눅눅하였다. 내내 흐리거나 비를 뿌렸다. 몇몇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고, 나머지는 애써 돌이키지 않았다. 서둘렀던 꽃무릇은 지난가을이 더 야속했을까. 보내거나 남은 이들은 무사하였을까. 코스타리카 따라주를 들고 옅은 현기증과 미열을 즐긴다. 철새 같은 음악이 흐르는 통창을 두고 안팎이 나뉜다. 풍경일 때, 거리를 둔 사물일 때 비로소 네가 궁금하다. 금방이라도 눈발이 날릴 것만 같은 하늘, 오후 네 시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