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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대로 2022/05/11

제대로

from text 2022/05/11 12:32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김기림의 길 전문. 1936년 잡지 조광에 발표되었으며, 1992년 깊은샘 출판사에서 시, 수필, 시론을 묶어 같은 제목의 책으로 펴내면서 당시 맞춤법에 맞게 실었다. 수필로 쓴 것을 시로 많이들 혼동한다고 하는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모처럼 글 한 편에 온 몸과 온 마음이 저렸다. 이즈음 파친코에 이어 나의 해방일지에 푹 빠져 있으며, 이 정부에 주류세라도 안 낼 고민을 하고 있다. 황폐한 마음을 달래느라 많이 소홀하였다. 좋은 핑곗거리도 있으니, 다른 즐거움도 찾고 몸도 좀 가꾸어야겠다. 제대로 버티고, 제대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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