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안녕

from text 2007/05/14 13:43
팔 개월 가량 함께 했던 달팽이가 죽었다. 며칠 제대로 살피지 못하다 어제 아침에 들여다 보았더니 기척이 없었다. 그 놈의 특성상 무슨 대단한 정서적 교감이 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닥 크게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았지만 미안하고 어딘가 한 구석이 허전하다.

오후에는 서연이랑 우방랜드에 갔다 왔다. 하루종일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두시쯤부터 여덟시까지 둘이서만 있었는데, 나는 코끼리, 하늘 자동차, 춤추는 비행기, 어린이 바이킹에다 코인 놀이기구 등을 타고 자연생태공원까지 일대를 다 돌아다녔다. 제 엄마가 오고부터 길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되어 어린이 자이로드롭과 탔던 놀이기구들을 다시 타고 혼자 타기 어려운 회전목마, 풍선타기, 후룸라이드를 탔다.

집 근처에서 늦게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으면서도 말했지만, 사실 늘보 기질이 다분한 내게 물론 더 나은 시간을 위해서라지만 일요일까지 제 시간으로 할애하여 자기 일에 집중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들놈과 충분히 가까울 수 있어 이런 복도 있구나 생각하다가도 문득문득 내가 없어지는 환영에 사로잡히곤 했다. 허나 어젠 이제 익숙해져 버린 건지 서연이 웃음에 단단히 중독된 건지 견딜만 하단 생각을 많이 했다. 긴 시간 몹쓸 죄를 지었다. 달팽이의 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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