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철 지난 벚나무 검붉은 입술이 울고 꿈결처럼 대낮부터 미등 불빛들이 꼬리를 물고 신천으로 흐르더니, 오후 여섯 시, 따닥따닥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창가에 선 나는 문득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넘어가는 찰나, 시커먼 하늘 아래 콘크리트 건물들이 비로소 제 색깔을 드러낸다. 삽시간에 인적이 사라지고 고깔을 닮은 우산 하나 하늘을 날아오르는데 문득 새로운 것 하나 이렇게 세상에 떨어진다. 칼국수와 묵밥을 사이에 두고 오랜 시간이 흐른다. 그리운 것들 잠시 접어두고 고요한 휴식을 시작한다. 다음은 김사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에서 노숙 전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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