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해당되는 글 3건

  1. 오후 여섯 시 2009/04/28
  2. 겨울, 비 2007/12/28
  3. 즐거운 고민 2007/09/08

오후 여섯 시

from text 2009/04/28 21:55
바람이 불고 철 지난 벚나무 검붉은 입술이 울고 꿈결처럼 대낮부터 미등 불빛들이 꼬리를 물고 신천으로 흐르더니, 오후 여섯 시, 따닥따닥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창가에 선 나는 문득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넘어가는 찰나, 시커먼 하늘 아래 콘크리트 건물들이 비로소 제 색깔을 드러낸다. 삽시간에 인적이 사라지고 고깔을 닮은 우산 하나 하늘을 날아오르는데 문득 새로운 것 하나 이렇게 세상에 떨어진다. 칼국수와 묵밥을 사이에 두고 오랜 시간이 흐른다. 그리운 것들 잠시 접어두고 고요한 휴식을 시작한다. 다음은 김사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에서 노숙 전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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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비

from text 2007/12/28 21:01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한 걸 꿈꾸고 그리워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사람도 그렇다고 하면 으레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된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나 지도, 또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길에 그만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 알 수 없는 말들을 또다시 늘어놓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곤 영원히 없을 거라는, 누가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낙인 때문이다. 그 자국이 아직 시뻘겋게 타고 있기 때문이다. 종일 겨울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내어놓은 가슴에 남은 흔적은 지울 생각도 않고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자, 누굴 원망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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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고민

from text 2007/09/08 16:56
어제는 난생 처음 활짝 갠 날을 보고 반갑다는 생각을 다 했는데, 늦게까지 한 잔 하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보고는 우선 드는 마음이 또 반갑고 좋았다.

연말에 가면 이것저것 다 떠나서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을 지지할 테다 굳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여전히 고민이 좀 될 것 같다. 문국현이 제대로 뜬다면 여러 사람 고민에 빠뜨리는 걸까, 여러 사람 고민을 해결해 주는 걸까. 너와 나는 지금 어느 쪽에 속해 있는가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 서연이와 이발하고 어린이회관과 수성못으로 놀러가기로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술병을 핑계로 겨우겨우 달래어 다 내일로 미루었다. 이미 내일은 앞산공원에 가기로 했었으니 일정이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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