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짧고

from text 2022/10/11 14:25
겨울은 길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돌이키지 않고 돌아갈 수 없는 길은 돌아가지 않는다. 가을은 짧다. 구린 열매를 먼저 떨어뜨리고 색을 조금 바꾼 나무는 번식이나 증식에 관심이 없고, 바람에 질린 꽃들은 바람 따라 바람처럼 나부낀다. 해가 진다. 남에서 북으로 신천을 따라 걷다 희망교를 건너 어디 면 소재지에서나 볼 법한 술집으로 들어선다. 삼겹살과 돼지찌개를 팔고 밥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 멸치 우린 된장찌개도, 잘 익은 김치와 방금 무친 콩나물이나 신선한 푸성귀도 다 거저다. 달무리가 진다. 갱도에서는 불을 꺼야 빛이 보인다고 한다. 글쎄, 다 같이 불을 끌 수 있을까. 저기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하나둘 불을 끄고 있는 것일까. 가을은 짧고,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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