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에 부쳐

from text 2023/11/16 20:50
그래, 몸에 안 맞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었다. 갈아입는 데에도,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 데에도 조금 시간이 걸릴 테지. 며칠 술에 심신이 약해진 건가. 작은 위로나 잠깐 헤아리는 몇 마디 말에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이 울컥하곤 한다. 갈데없이 늙은 것, 부쩍 무엇을 사거나 어떤 결정을 내리고 바로 후회하는 일도 잦다. 못난 놈이 섣불리 제 경륜을 믿을 것이 아니라 정신줄이나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잔뜩 흐리더니 오후 들어 비가 내린다. 이번 가을비도 밖에만 내리는 게 아니구나. 뿌리를 내릴 것도 아니건만 젖은 속이 바닥으로 자꾸만 가라앉는다. 옛일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어째 노곤하니 하매 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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