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풍

from text 2006/09/20 14:45
아직 죽는다는 게 두렵다. 나든 남이든. 어릴 적, 여름 한낮에 시골 외가 마루에서 혼자 낮잠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아득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지난 일요일 오전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셔서 입원하셨다기에 그날 오후에 가 뵈었는데, 다음날 아침 돌아가셨다. 늘 신문이나 책을 읽으시며 정정한 모습이셨는데 갑자기 그렇게 가셨다. 입관 때 장의사가 가시는 길에 노자를 보태드리라 말할 때는 슬픈 가운데에도 저승도 돈 없이는 안 되는 세상이라면 제기랄, 다들 가시지 말지,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각도 들고, 사람들 말마따나 그래도 아흔셋 연세에 자식들 모두 살아있고 크게 편찮으신 데 없이 가셨다고, 편히 가시라 편히 가시라 자꾸만 되뇌기도 하였다. 천상병의 말처럼 외할아버지께 이 세상은 아름다운 소풍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그럼에도 예감할 수 있는 마지막 모습과 입관 때 마지막 얼굴을 뵌 게, 그 존재감 상실의 느낌이 자꾸만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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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살아간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

    Tracked from 먼길가는 자 2006/09/25 00:07  delete

    준식이 외조부님 부음글을 읽고 영주에 계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아직도 정정하시지만 연세는 백수를 넘기신 지도 몇해가 지났다. 가히 최고령... 6.25 전쟁통에 전도유망한 외삼촌 두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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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xcuser 2006/09/20 16:2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무런 예감이 없었는데, 아래 두 글에 죽음의 이미지가 스며 있는 건 어쩐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