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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린 시절 2008/09/03

어린 시절

from text 2008/09/03 22:24
어린 시절, 방학은 늘 시골 외가에서 보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시작하는 날 또는 그 이튿날 어머니와 함께 가서 개학 전날이나 전전날 돌아오곤 했다. 초등학교 육년을 내내 그렇게 보냈다. 나를 데려다놓은 그날이나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떠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마을 어귀 구판장 앞에서 동구 밖으로 멀어지는 어머니는 그 긴 길 위에서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기억이 맞다면 열두 번을 한결같이 그렇게 가셨다. 먹먹한 마음도 잠시, 곧 산으로 들로 개울로 못으로 잘도 돌아다니며 놀았지만, 사는 동안 문득문득 그 뒷모습은 가슴 서늘하게 출몰하곤 한다. 데리러오셨을 때면 저도 모르게 수다스럽고 들뜨던 어린 내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도 그런 내 모습을 낯설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정직하게 제 살 깎아먹는 법을 그때 배웠다.

대저 얼마 못 가는 마음들이, 그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떤 마음을 이루기도 한다. 이 녀석 오줌인들 못 먹을까 보냐 하다가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태산을 짓기도 하는 것이다. 더러는 색채가 없는 채색화, 먹을 쓰지 않은 수묵화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살뜰한 휴식, 그 끝에서.

* 어제 저녁 조금 늦게 일을 마치고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멸과 정영태의 우주관측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바람이 좋아 일부러 멀리 돌아 집까지 걸었다. 날이 좋아지니 다시 산이 그립다. (우주관측을 서점에서 출판사에 주문하는 사이 이원규의 지리산 편지를 다른 서점에 주문하였다. 처음 사는 원규형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