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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하일기 2009/12/10

열하일기

from text 2009/12/10 13:46
돌베개에서 펴낸 완역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었다. 덜 끝낸 숙제와 마쳐야 할 산더미 같은 일들을 두고, 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이 흐르는 저녁에, 때로는 한밤중으로부터, 때로는 콧날 시큰한 새벽에, 풍류와 교양과 운치를 읽어 내렸다. 이스마엘과 퀴퀘그, 에이허브에 오래 빠져들던 사이 잠시 펼쳐나 본다던 것이 이미 시작한 여행길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인데, 가히 민족문학사와 세계의 고전으로 치켜세울 만했다.

박지원의 모습은 유학의 뿌리가 워낙 질기고 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렴풋이 갖고 있던 실학자의 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 시대에 세계를 주유하던 지식인들의 고졸한 품격은 아마도 (과학적)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리라. 아무렴, 충분한 근대적 안목의 미비(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허나 신분제를 위시한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보다 나을 것도 없는 체제에 살고 있으면서 그만한 인물과 담론이나마 찾을 길 없는 것은 행인가, 불행인가)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옛 사람의 산 같은 고담과 물 흐르듯 한 준론을 이렇게나마 엿볼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다만 어제도 오늘도 없을 그 같은 담론의 자리와 그 곁자리에라도 끼일 수 없는 천박한 수준과 가련한 처지를 한탄할밖에.

열하일기를 읽던 어느 일요일 한낮, FM 우리가곡에서 테너 이영화의 겨울 강(한여선 시, 임준희 작곡)을 들었다.

마른 갈꽃 흔들며 겨울이 우는 소리
홀로 찾아와 듣는 이 누구인가
푸르게 흐르는 저 강물처럼
세월도 그렇듯 흘러갔거니
쓰러진 물풀 속에 길 잃은 사랑
하얗게 언 채로 갇혀 있구나
그 어느 하루 떠나지 못한 나룻배엔
어느 나그네의 부서진 마음인가
소리 없이 눈은 내려 쌓이는데
언 하늘 마른 가슴 휘돌아
또다시 떠나는 바람의 노래
나그네 홀로, 홀로 서서 듣고 있구나

아, 누구라서 이미 세상일을 알고 짐작대로 조각할 수 있을지언정 서로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