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느 한때처럼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부러 먼 길을 걷기도 하고 그 끄트머리 어디 쯤에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대체로 그런 날엔 대기도 낮게 가라앉아 술맛을 돋우고, 나는 그만 술잔의 하염없는 깊이에 덩실 빠져든다. 때때로 출몰하는 그리움도 내가 그리운 것이다. 며칠 전 동쪽 하늘엔 동그란 보름달이 하얗게 낮달로 떴더니 어제는 새파란 하늘에 비행운들만 어지러웠다. 맨정신의 봄밤은 잘라도 잘리지 않는 욕망과 눌러도 눌리지 않는 서정이 두렵다. 하룻밤이 까마득하다. 그새 누군가 퍼지른 세상에는 다시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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