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24건

  1. 가을 일기 3 2006/08/24
  2. 행복할 사람들은 행복하도록 2006/08/20
  3. 개구리 이야기 2006/06/25
  4. 테러리스트, 대나무 2006/06/20
  5.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2006/06/17
  6. 남해금산 2006/06/17
  7. 맨발 2006/06/14
  8. 처음 2006/06/14

가을 일기

from text 2006/08/24 06:55
나는 어젯밤 예수의 아내와 함께 여관잠을 잤다
영등포시장 뒷골목 서울여관 숙박계에
내가 그녀의 주민등록번호를 적어넣었을 때
창 밖에는 가을비가 뿌렸다 생맥주집 이층 서울 교회의
네온사인 십자가가 더 붉게 보였다
낙엽과 사람들이 비에 젖으며 노래를 부르고
길 건너 쓰레기를 태우는 모닥불이 꺼져갔다
김밥 있어요 아저씨 오징어나 땅콩 있어요
가을비에 젖은 소년이 다가와 나에게 김밥을 팔았다
김밥을 먹으며 나는 경원극장에서 본 영화
벤허를 이야기했다 비바람이 치면서
예수가 죽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먹다 남은 김밥을 먹었다
친구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릴 수 없는 나는
아무래도 예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아 미안했다
어디선가 호르라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곧 차소리가 끊어지고 길은 길이 되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녀가 벗어논 속치마 위로 기어갔다
가을에도 씨 뿌리는 자가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마른 젖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불을 껐다
빈 방을 찾는 남녀들의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야윈 어깨가 가을 빗소리에 떨었다
예수는 조루증이 있어요 처음엔 고자인 줄 알았죠
뜨거운 내 손을 밀쳐내며 그녀는 속삭였다
피임을 해야 해요 인생은 짧으나 피임을 해야 해요
나는 여관 종업원을 불러 날이 새기 전에
우리는 피임을 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겠다던 종업원은 돌아오지 않고 귀뚜라미만 울었다
가을비에 떨면서 영등포경찰서로 끌려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때
서울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정호승의 시 '가을 日記' 전문.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다 말다 한다. 어제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권장로님과 대화 중 '낙샘더위'라는 말,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이지만 느낌이 좋다. 떨어지는 걸 샘내는 더위(이런 걸 보면 한자어는 이제 정말 우리말이랑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낙이 그냥 외로 우리말처럼 보이니 말이다). 삼월 개학처럼 학생들 개학하고 한 열흘은 덥다는 장로님 말씀에 대꾸하여.
오래전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읽은 말이 요즘 자주 맴돈다. "다 부질없어 형. 아이하고나 많이 놀아 줘."

오래 돼서 희미하지만, 닌자 거북일 보면 할배 거북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네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와 지금의 네 가치를 혼동하지 마라. 참으로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어젠, 아침부터 낮술 한 잔 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달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대작키로 한 놈, 달이삼촌과 시간이 맞지 않아 점심으로 우동과 군만두를 먹는 바람에, 목욕하며 시간 좀 보내고, 결국 네 시부터 마시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먹는 갈치구이가 맛있었다. 술맛이 오를 즈음 이 녀석에게 급한 볼일이 생겨 한 시간 반 가량 볼일을 보고 차수를 이을 수 있었다. 아, 행복할 사람들은 행복하도록!!


달면 뱉고 / 쓰면 삼킨다 / 가죽처럼 늘어나버린 / 내 청춘의 혓바닥이여(이상희의 시 '잘가라 내 청춘' 전문)

인생은 그 날이 꽃과 같아 단 한 번의 몰락으로 나는 / 죽은 뿌리의 욕망을 알게 되었다(함성호의 시 '고향집, 폐허' 중에서)

산을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몸무게에 의해 실존주의자가 되었다가 산꼭대기에 이르면 유물론자가 된다.(황지우의 시 '靈山' 중에서)

대다수가 자신의 고역을 동댕이쳤을 때, 또한 그의 마지막 '가치'도 동댕이쳤다. 무엇에 대하여 자유롭게 되었는가, 하는 것 따위는 짜라투스트라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대의 눈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분명히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F.W.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저 세상에 가서도 그림을 사랑하자 / 그림이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인사동 어느 화방에서)

살고 싶으면은 죽은 체 하라, 죽은 체 하면 행복이 온다.(어느 TV 만화 영화에서, 꼬마들이 부르던 노래)

讀書之有患之始(김성동 '風笛' 중에서)

예술가는 좀 게을러야 해. 그래야 이것저것 궁리할 시간이 많지.(백남준)

공격성이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사랑이 없는 미움이란 있을 수 없다.(콘라트 로렌츠 '공격성에 관하여' 중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중에서)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의 시 '이탈한 자가 문득' 전문)

다른 주머니 속에서 담배갑이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한바탕 일을 끝마치고 한 대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마지막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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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이야기

from text 2006/06/25 00:17
개구리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폴짝 폴짝' 잘 뛰었습니다.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폴짝' 피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구리는 커다란 뱀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개구리는 몸을 삭여가며 긴 여행을 해야 했습니다.

팔이 하나쯤 없어질 때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빛을 찾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다 없어져도 좋았습니다.

개구리는 희망을 갖고 이리 저리 살펴 보았습니다.
아, 저만치 앞에서 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개구리는 힘껏 뛰어뛰어 그 곳에 갔습니다 - 벌써 몸의 반은 삭아 없어졌습니다.
그것은, 빛이 나는 그것은 동료의 뼈였습니다.
개구리는 모든 희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개구리는 생각했습니다.
'이 동료는 여기까지 와서 죽었다.'
'나는 반이나 산채로 여기까지 왔다.'
'몸이 다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지 않았던가.'
그리고 개구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개구리는 힘을 내어 다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동료 개구리들을 보았습니다.
앉은 채로 몸을 삭이는 개구리…….
결국은 나갈 수 없다고 외치는 개구리…….
힘을 낭비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살자는 개구리…….
우리의 개구리는 어느 개구리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위는 온통 암흑이고, 동료 개구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개구리는 전혀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빛.
나아갈수록 개구리는 자신과 빛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멀리까지 와서야 개구리는 자신의 몸이 다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빛조차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아니 언제까지나 빛은 자신과 같이 존재한다는 것을…….


고등학교 이학년 겨울, 교지에 시라고 준 것이 쉬어가는 페이지에 실렸다. 독서토론회(하야로비)를 맡고 있어 청탁으로 쓴 글인데, 어린 시절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인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쓴 글 두 편 중 하나. 하나는 어딜 가고 없다.

제목은 개구리 이야기. 후에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세 학교 연합독서토론회(날개)를 만들었는데, 다른 학교 후배들로부터 개구리 선배로 불리는 계기가 되기도. ~읍니다를 ~습니다로 수정.

지금도 데미안이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 따위에 실리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이 작자들이 읽기나 하고 이런 짓거린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독서란 게 원체 읽는 놈(의 처지나 환경, 기반, 상태 등등) 마다 다르고, 같은 놈이 읽어도 읽을 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그리고 괜찮은 책 치고 위험하지 않은 책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대상에 따라 정도는 가려야 할 게 아니겠는가.


고등학교 때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말 하나. 神이 인간에 준 가장 큰 축복은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테러리스트, 대나무

from text 2006/06/20 18:39
나는 테러리스트올시다
광합성 작용을 위해
잎새를 넓적하게 포진하는 치밀함도
바위 절벽에 뿌리내리는 소나무의 비장함도
피침형 잎새로 베어 날리는
나는 테러리스트

마디마디 사이에 공기를 볼모로 잡아놓고
그 공기를 구출하러 오는 공기를
잡아먹으며 하늘을 점거해 나아가는
나는 테러리스트

나의 건축술을 비웃지 말게
나는 나로서만 나를 짓지 않는다네
자유롭고 싶은 공기의 욕망과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공기의 살의와
포로로 잡힌 공기의 치욕으로
빚어진 아,
공기, 그 만져지지 않는
허무가 나의 중심 뼈대
나는 결코 나로서만 나를 짓지 않는다네
그래야 비곗살을 버릴 수 있는 법

나는 테러리스트
내 나이를 묻지 말게
뒤돌아 나이테를 헤아리는 그런 감상은
바람처럼 서걱서걱 베어먹은 지 오래
행여 내 죽어 창과 활이 되지 못하고
변절처럼 노래하는 악기가 되어도
한 가슴 후벼파고 마는 피리가 될지니
그래, 이 독한 마음으로
한평생 머리 굽히지 않고 살다가
황갈색 꽃을 머리에 이고
한 족속 일제히 자폭하고야 말
나는 테러리스트


함민복의 시 '대나무' 전문. 이렇게 남의 글 전문을 옮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냘 수도 있겠다만, 뭐 그럴래믄 그러라고 대꾸하기도 하고, 찔리기는 하는군 하고 반성도 하고,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냐며 발을 살짝 들어올려 공중부양을 하기도 하지.

머꼬네 놀러갔다가 '나는 테러리스트'(란 단어)를 보고.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 심장 속 새집의 열쇠를 빌려드릴께요.

내 몸을 맑은 시냇물 줄기로 휘감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몸 속을 작은 조약돌로 굴러다닐께요.

내 텃밭에 심을 푸른 씨앗이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창가로 기어올라 빨간 깨꽃으로
까꿍! 피어날께요.
엄하지만 다정한 내 아빠가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너그럽고 순한 당신의 엄마가 되드릴께요.

오늘 밤 내게 단 한 번의 깊은 입맞춤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예쁜 아이를 낳아 드릴께요.

그리고 어느 저녁 늦은 햇빛에 실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
저무는 산 그림자보다 기인 눈빛으로
잠시만 나를 바래다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뭇별들 사이에 그윽한 눈동자로 누워
밤마다 당신을 지켜봐드릴께요.


최승자의 시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전문. 김수영 이래 이성복, 기형도 등과 함께 최고의 노래를 불러준 사람. 그를 빠뜨릴 순 없을 것 같다.

남해금산

from text 2006/06/17 11:50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이젠 기억조차 까마득하군요. 당신을 처음 알았을 때, 당신이라는 분이 이 세상에 계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여러 날 밤잠을 설치며 당신에게 드리는 긴 편지를 썼지요.

처음 당신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 왔을 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득히 밀려오는 기쁨에 온몸이 떨립니다. 당신은 나의 눈이었고, 나의 눈 속에서 당신은 푸른 빛 도는 날개를 곧추세우며 막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요. 그때만큼 지금 내 가슴은 뜨겁지 않아요. 오랜 세월, 당신을 사랑하기에는 내가 얼마나 허술한 사내인가를 뼈저리게 알았고, 당신의 사랑에 값할만큼 미더운 사내가 되고 싶어 몸부림했지요. 그리하여 어느덧 당신은 내게〈사랑하는〉분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젠 아시겠지요. 왜 내가 자꾸만 당신을 떠나려 하는지를.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테지요. 오, 아름다운 당신, 나날이 나는 잔인한 사랑의 습관 속에서 당신의 푸른 깃털을 도려내고 있었어요.

다시 한 번 당신이 한껏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성복의 시집 '남해금산' 뒷표지글.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놀라운 시들로 가득차 있다. 아니 그 시집 자체가 놀랍다고들 이야기한다. 박남철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시를 쓰기도 했다. '어떤 자식일까 -- 이성복을 발견하고'


나는 오늘 오래간 만에 우표를 사려고 책가게엘 들렀다가 며칠 전에 혼자서 어디 고독이나 좀 씹어보려고 들어갔던 다방에서 송창식이의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거의 두어 시간 동안 가게 주인의 눈총까지 받아가며(천 오백원이 마침 주머니에 없었기에 남의 시집을 돈 주고 사는 실수는 다행히 저지르지 않았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드는가'ㄴ지 뭔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마침내, 감히, 이따위 엉터리 시집을 낸 놈은 아예 아무도 몰래 없애 버려야만 된다는 단호한 결정을 내리면서 가슴에 슬쩍 칼처럼 품고 책가게를 나왔었다

젠장, 송창식이 자식이야 뭐 딴따라니까 뭐 내 영업에 그다지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엉터리 천재 비슷한 자식을 앞으로 더 오래 살려 두었다간, 두고 두고 후회스러울 것은 뻔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맨발

from text 2006/06/14 17:11
김수영의 '서시'를 옮기고 보니, 최근에 본 시 중 가장 와닿은 문태준의 '맨발'이 생각난다. 최근이래봤자 여섯달도 넘은 것 같지만, 반성하는 의미도 있고 하여.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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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from text 2006/06/14 16:58
처음 시작할래니 떠오르는 글. 김수영의 '서시'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는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을


그리고, 불가의 말씀.

"얻었다 한들 원래 있던 것, 잃었다 한들 원래 없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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