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대나무

from text 2006/06/20 18:39
나는 테러리스트올시다
광합성 작용을 위해
잎새를 넓적하게 포진하는 치밀함도
바위 절벽에 뿌리내리는 소나무의 비장함도
피침형 잎새로 베어 날리는
나는 테러리스트

마디마디 사이에 공기를 볼모로 잡아놓고
그 공기를 구출하러 오는 공기를
잡아먹으며 하늘을 점거해 나아가는
나는 테러리스트

나의 건축술을 비웃지 말게
나는 나로서만 나를 짓지 않는다네
자유롭고 싶은 공기의 욕망과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공기의 살의와
포로로 잡힌 공기의 치욕으로
빚어진 아,
공기, 그 만져지지 않는
허무가 나의 중심 뼈대
나는 결코 나로서만 나를 짓지 않는다네
그래야 비곗살을 버릴 수 있는 법

나는 테러리스트
내 나이를 묻지 말게
뒤돌아 나이테를 헤아리는 그런 감상은
바람처럼 서걱서걱 베어먹은 지 오래
행여 내 죽어 창과 활이 되지 못하고
변절처럼 노래하는 악기가 되어도
한 가슴 후벼파고 마는 피리가 될지니
그래, 이 독한 마음으로
한평생 머리 굽히지 않고 살다가
황갈색 꽃을 머리에 이고
한 족속 일제히 자폭하고야 말
나는 테러리스트


함민복의 시 '대나무' 전문. 이렇게 남의 글 전문을 옮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냘 수도 있겠다만, 뭐 그럴래믄 그러라고 대꾸하기도 하고, 찔리기는 하는군 하고 반성도 하고,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냐며 발을 살짝 들어올려 공중부양을 하기도 하지.

머꼬네 놀러갔다가 '나는 테러리스트'(란 단어)를 보고.

Trackback Address >> http://cuser.pe.kr/trackback/2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