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

from text 2010/05/16 01:01
1박 2일 직장 연수를 떠난 0124님 덕분에 오롯이 서연이랑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이런저런 궁리 끝에 신천 둔치에서 열린 노무현 1주기 추모 콘서트엘 다녀왔다. 여러모로 잡탕의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몇 차례나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처음 마주쳤을 때 선뜻 알은체를 못하여 끝내 인사도 못 차리고는 내내 이윤갑 선생님 내외분(임에 틀림없다. 두 분의 고운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옆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언뜻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프로파간다도, 아니 어떠한 순결하고 고귀한 신념이나 가치 체계도 구체적인 질감, 말하자면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 사는 모양을 넘어설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마지막 순서로 'Power to the People' 합창이 끝나고는 여러 핑계를 안고 집 근처 막창나루로 향했다. 그러나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섞어 먹는 동안, 토요일 밤의 고즈넉한 술집에서 한세상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빈자리엔 부자간의 정과 서로간의 투정만이 남아 있었다. 다음은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한 대목. 읽지도 사지도 않았지만, 이 블로그에 하나쯤 더 올려놓아도 좋겠다. 그의 진정이 애달프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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