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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름다운 마무리 2024/11/28
  2. 큰물이 일 때에는 2024/11/19

아름다운 마무리

from text 2024/11/28 19:36
애틋하고 아린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나 모르겠다. 그렇게 예뻤던 얼굴들도, 꼭 안고 싶던 고운 마음씨들도 다 사라져 버리고, 흐린 기억만 남았다. 청춘처럼 다들 덧없이 가버렸다.

어제, 그끄제 모처럼 술을 조금 마셨다. 언제나 함께 있을 줄 알았던 어떤 것들이 그새 없어지고 말았다. 다음은 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 일부. 책장을 정리하다 오래전 선물 받고 넣어 둔 걸 발견하였다.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인다.

큰물이 일 때에는

from text 2024/11/19 18:05
겨울엔 춘천시 후평동 끄트머리 자취방에서 아직 몇년째 휴학 중인 절름발이 친구와 사나흘 술이나 마시면 좋겠네.

연탄불은 가끔 꺼지고, 입김이 서로의 얼굴을 가리는 흐린 방에서 산 넘어 동쪽에서 온 여인과 또 그의 젊은 애인과 실직한 후배와.... 이렇게 꾸벅꾸벅 졸며 양미리를 구우며 막걸리 병을 쓰러뜨리며 어떤 기다림에 온종일 귀를 기울이면 좋겠네.

술만 먹다가 죽은 후배 이야기를 하면서, 불운한 연애 끝에 죽은 여인 이야기를 하면서, 술집에서 헤어진 후 영영 소식 끊긴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 살아남아 양미리를 굽는 우리의 손등을 바라보리. 취해가는 인생을 바라보리. 아직 파랗고 선량한 가난과 비참을 바라보리.

그러나 춘천시 후평동 끄트머리 자취방이여, 절름발이 친구여, 이제는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겨울만 남았고나. 이름 부르면 곧 달려올 것 같은 우리의 가난과 비참만 남았고나. 고지서 같은 세월이, 독촉장 같은 인생이 쓰러진 막걸리 병처럼 도처에 나뒹군다. 아아,

팔십여 일 되었구나. 술을 멀리하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술 생각이 나지 않더니, 류근의 이 작품을 보고 잠시 술 생각이 간절하였더랬다. 그래, 큰물이 일 때에는 물속에서도 수그리는 것이 상책이다. 어디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고 안다 한들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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