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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 사는 세상 2010/05/16
  2. 발자국 2009/05/24

사람 사는 세상

from text 2010/05/16 01:01
1박 2일 직장 연수를 떠난 0124님 덕분에 오롯이 서연이랑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이런저런 궁리 끝에 신천 둔치에서 열린 노무현 1주기 추모 콘서트엘 다녀왔다. 여러모로 잡탕의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몇 차례나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처음 마주쳤을 때 선뜻 알은체를 못하여 끝내 인사도 못 차리고는 내내 이윤갑 선생님 내외분(임에 틀림없다. 두 분의 고운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옆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언뜻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프로파간다도, 아니 어떠한 순결하고 고귀한 신념이나 가치 체계도 구체적인 질감, 말하자면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 사는 모양을 넘어설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마지막 순서로 'Power to the People' 합창이 끝나고는 여러 핑계를 안고 집 근처 막창나루로 향했다. 그러나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섞어 먹는 동안, 토요일 밤의 고즈넉한 술집에서 한세상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빈자리엔 부자간의 정과 서로간의 투정만이 남아 있었다. 다음은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한 대목. 읽지도 사지도 않았지만, 이 블로그에 하나쯤 더 올려놓아도 좋겠다. 그의 진정이 애달프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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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from text 2009/05/24 01:50
한 사나이가 갔다. 한 시대가 가듯 그렇게 갔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해 따라 날 저물 듯 스스로 걸어갔다. 공화국의 등짝에 선연한 발자국을 남기고 그렇게 갔다. 신동엽의 '散文詩 1'로 온종일 먹먹하던 가슴을 달래 본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담배 있나', 그게 사실이었든 아니든 그렇게 걸어간 마지막 길을 그보다 더 잘 상징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담배 한 대, 끝내 보류해 둔다마는 향 사르듯 사를 날을 또한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