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부둥켜안고 울었다. 몇 시간이고 노려보며 서로를 노리기도 하였다. 그저 지나칠 만하면 다 지나치기 전에 발이라도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어느 해 질 무렵,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도시는 모든 걸 두고 저만 어디론가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길이 까맣게 이어졌다. 먼저 떠난 도시를 뒤따르듯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듬처럼 푸석푸석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비듬만 남은 몸뚱아리가 눈과 함께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닌가, 눈길에 미끄러져 자빠지면서 누군가 말했다. 넘어진 네온사인 하나가 잃어버린 지번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바리 호주머니 속에서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 울다 잠들기를 반복하였다. 바닥에 비친 네온사인에 먹색 눈물이 번졌다.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몇 시간이라도 버티고, 버틴 시간만큼 이 도시와 사람들의 안녕을 위협하리라. 대체로 그렇듯이 한 번은 꽃처럼 피었다가 사그라질 것이다. 불문율을 따라 사라지기 전에 호작질이라도 한번 제대로 하고야 말 것이다. 길 끝 저 집은 한잔 추억이 서린 곳인가, 소라가 알맞게 익는 동안 한쪽에서 고갈비가 타는 모양이다. 재에 뿌릴 물을 가져오너라. 너를 타고 너울너울 날아오르리니. 갈 곳 몰라 더는 헤매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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