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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정 2008/07/28
  2.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2 2006/11/04

우정

from text 2008/07/28 14:26
바빠질 것 같은 예감, 견제하는 심정으로 주문한 책 몇 권이 도착하였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 김곰치의 발바닥, 내 발바닥, 김종철의 땅의 옹호, 그리고 녹색평론선집 2. 다음은 땅의 옹호 '책머리에' 중 일부. 오래 전 읽다만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녹색평론> 100호를 기하여 내놓는 이 책의 준비과정에서 나는 <간디의 물레> 이후 내 생각에 일어난 약간의 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는, 간단히 말하면, 근년에 이르러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사상이 내게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점과 크게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일리치는 우리의 삶에서 '우정'이 갖는 중심적인 의의에 대해서 나를 깨우쳐주었고, '우정'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서 일리치는 내게 실제로 좋은 벗들을 불러다주었다. 내가 오랜 직장이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로 자리를 옮긴 뒤, 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벌써 4년이 넘었지만 대부분 초기회원들이 계속해서 참가하고 있는 이 모임을 통해서 나는 대학생활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우정'은 사심없는 마음, 자기희생의 정신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고 일리치는 말했다. 그의 말은 실제로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서 빈번히 입증되었다. 나는 이 책이 이 모임의 벗들에게 하나의 작은 선물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방금 찾아 읽은 프레시안에 실린 강양구 기자의 김종철 선생 인터뷰 중에서.

- <녹색평론> 외에도 단행본을 내고 있다. 어떤 책이 첫 단행본인가?

<녹색평론 선집 1>을 제외하고는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실질적인 첫 단행본이다. 그리고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두 번째로 펴냈다. 장일순, 권정생 두 분은 일리치, 간디와 더불어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바를 말, 글과 삶을 통해 몸소 실천한 이들이다.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들의 책을 낸 것은 또 다른 큰 보람이다.

- 마침 권정생의 1주기다. 고인의 생전에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 스승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대한민국에서 그가 '제일 무서운 양반'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 가지 일화를 말하자면 이런 게 있다. 어느 날 그가 툭하고 이런 얘기를 던지더라. 한창 퇴계 이황이야말로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사상가라고 주목하던 때였다. "퇴계 집에 노비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디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노비는 생산에 동원되지 않으니, 그 노비까지 먹여 살리려면 퇴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소작농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 한 마디로 퇴계 학문의 관념성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를 만나서 얘길 할 때마다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 잠깐 들른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하나 더, 그건 그렇게 사는 게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하기 때문'이다. 쳇, 가히 耳順을 지나 從心의 경지가 아닌가.
이오덕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이 묻힐 곳에 세울 시비를 지정했는데, 그 하나는 권정생의 시 ‘밭 한 뙈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시 ‘새와 산’이라고 한다. 인터넷 한겨레의 작가 권정생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 기사를 보다가 붙어있는 관련기사를 보고 알았다. 이 '밭 한 뙈기'에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시구가 나온다.

피터 싱어는 아래 포스트에서의 언급에 이어 고대 그리스와 유대-기독교적 전통을 중심으로 돈벌이에 대한 서구적 사고방식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데, 우리는 참으로 오랜 기간 돈벌이를 치욕적인 행위로 여겼으며(특히 가장 본질적인 자본주의적 행위라 할 수 있는 돈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엄하게 비난받았다고 한다), 그 오랜 기간만큼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면서도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혁명적이랄 만큼 이상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이웃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를 구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은밀히 취하는 것도 적법하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충동을 부쩍 느끼고 있지만, 특히 모든 기독교인들이 일독하기를 권해 마지않는 '우리들의 하느님'을 쓴 권정생이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전언이 더욱 와 닿는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 아니었는가.

다음은 이오덕의 ‘새와 산’ 전문.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