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11건

  1. 근황 2008/10/29
  2. 우정 2008/07/28
  3. 다만 그땐 2008/06/25
  4. 2007/10/10
  5. 여름잠 2007/08/16
  6. 가나다라 2007/05/10
  7. 행복할 사람들은 행복하도록 2006/08/20
  8. 우리글 바로쓰기 2006/07/18
  9. 책 주문하다 2006/07/12
  10. 추천할 만한 것?! 2006/06/20
  11. 2006/06/14

근황

from text 2008/10/29 22:30
가슴에 이리 뜨거운 걸 안고 나는 못 살겠다. 너는 괜찮으냐. 빨갛게 떨어지던 나뭇잎이 문득, 묻더라. 다시, 가을이다. 시월도 다 가고, 봄 생각으로 가득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새.

지금 M6에 들어있는 코닥 포트라160vc 한 롤 빼고는 필름도 다 떨어졌고 가격도 오를 추세라 잘 찍진 않지만 필름 몇 롤 사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비교적 싼 필름들로, 써본 것 중 대체로 마음에 든 코닥 프로이미지100 6롤, 처음 사보는 코닥 컬러플러스200 10롤, 미쯔비시 수퍼mx100 10롤.

인터넷 주문으로 산 책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로드, 밤은 노래한다, 소설의 고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일본현대 대표시선, 체호프 단편선, 친절한 복희씨, 혀. 대부분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블로그를 보다 마음 동한 책들. 그리고 서연이를 위한 노란 양동이,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화요일의 두꺼비.

산 지 얼마 안 된 MP3 플레이어 YP-U4를 주변에 중고로 넘기고 YP-Q1을 주문하였다. 녀석 작고 예쁜 줄 알았더니 작기만 하고 밉상이었다. 긴 충전 시간에 터무니없이 짧은 재생시간을 가진 데다 신곡 볼 줄 모르고 그저 마음에 드는 음악 왕창 넣어놓고 듣는 나에게 컴퓨터로만 충전하는 방식은 (처음엔 장점이라 생각하였지만)어지간히 불편한 것이었다.

아파트로 가려던 계획은 지금 사는 집 계약기간 만료 후로 미루었다. 눈여겨 둔 아파트를 가계약하고 며칠 후 정식 계약서에 날인까지 하고는 주인 쪽 사정으로 취소하였는데, 여러모로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이래저래 무리인 줄 알면서 밀어본 것, 가계약 후 며칠 이리저리 꾸며본 살림이 아깝지만, 어쨌든 홀가분하고 가볍다.

허리와 왼쪽 어금니가 아파 한동안 애를 먹었다. 덕분에 벼르던 산에도 가지 못하고 위 용량도 좀 줄었다. 자가 진단으로는 이게 다 술 때문이지, 한다. 천천히 즐기는 법에 대한 생각은 많은데 때맞춰 치닫는 이놈의 성질은 어찌 이리 숙지지 않을꼬.

우정

from text 2008/07/28 14:26
바빠질 것 같은 예감, 견제하는 심정으로 주문한 책 몇 권이 도착하였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 김곰치의 발바닥, 내 발바닥, 김종철의 땅의 옹호, 그리고 녹색평론선집 2. 다음은 땅의 옹호 '책머리에' 중 일부. 오래 전 읽다만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녹색평론> 100호를 기하여 내놓는 이 책의 준비과정에서 나는 <간디의 물레> 이후 내 생각에 일어난 약간의 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는, 간단히 말하면, 근년에 이르러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사상이 내게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점과 크게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일리치는 우리의 삶에서 '우정'이 갖는 중심적인 의의에 대해서 나를 깨우쳐주었고, '우정'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서 일리치는 내게 실제로 좋은 벗들을 불러다주었다. 내가 오랜 직장이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로 자리를 옮긴 뒤, 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벌써 4년이 넘었지만 대부분 초기회원들이 계속해서 참가하고 있는 이 모임을 통해서 나는 대학생활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우정'은 사심없는 마음, 자기희생의 정신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고 일리치는 말했다. 그의 말은 실제로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서 빈번히 입증되었다. 나는 이 책이 이 모임의 벗들에게 하나의 작은 선물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방금 찾아 읽은 프레시안에 실린 강양구 기자의 김종철 선생 인터뷰 중에서.

- <녹색평론> 외에도 단행본을 내고 있다. 어떤 책이 첫 단행본인가?

<녹색평론 선집 1>을 제외하고는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실질적인 첫 단행본이다. 그리고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두 번째로 펴냈다. 장일순, 권정생 두 분은 일리치, 간디와 더불어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바를 말, 글과 삶을 통해 몸소 실천한 이들이다.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들의 책을 낸 것은 또 다른 큰 보람이다.

- 마침 권정생의 1주기다. 고인의 생전에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 스승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대한민국에서 그가 '제일 무서운 양반'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 가지 일화를 말하자면 이런 게 있다. 어느 날 그가 툭하고 이런 얘기를 던지더라. 한창 퇴계 이황이야말로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사상가라고 주목하던 때였다. "퇴계 집에 노비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디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노비는 생산에 동원되지 않으니, 그 노비까지 먹여 살리려면 퇴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소작농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 한 마디로 퇴계 학문의 관념성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를 만나서 얘길 할 때마다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 잠깐 들른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하나 더, 그건 그렇게 사는 게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하기 때문'이다. 쳇, 가히 耳順을 지나 從心의 경지가 아닌가.

다만 그땐

from text 2008/06/25 14:49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겠다. 말하자면 역사가 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다 하여 접시 물에 코를 빠뜨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충분히 악의적인 것이다. 해서 말인데, 술과 안주 앞에 맹세를 놓듯이, 두 손 두 발 놓고, 우리가 세상을 외면하잔 거다. 물론 사태의 결말을 책임질 순 없다. 다만 그땐 손짓이 보일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세상이든 누구든, 저도 돌아앉게 마련이니.

* 별처럼 찾아온 거다. 고운 꽃처럼 다가온 거다. 부여안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안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게 명령이다. 그때 명령의 정체다. 손짓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 조금 전, 노태맹의 '푸른 염소를 부르다',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이 왔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를 보고 마음 동해 주문한 책들. 거기 여러 잠언들이 있었지만, 하나만.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다음은 태맹이형의 시집 뒤에 실린 인상적인 '시인의 산문' 중 한 구절.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오래, 가장 강렬하게 사랑한 이 것. 조사 하나를 들고 밤새 문장 한 구석에 꿰어 맞추기하던 날들. 입 안에 얼음이 씹힌다. 고맙다, 덕분에 많이 고통스러웠다. 젠장.

그리고 시 한 편.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5월이 다 지나도록
아파트 화단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져야 할 것이 지지 않으니
끔찍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강박장애다.

난 중력에 병들어 있는 거다.
동네 돼지 수육집 혼자 막걸리를 마시며
이제 아무에게도 나를 이해시키지도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革命이
붉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든
동백꽃처럼 그 자리에서 지지 않든
그건 동백이 가고 그 동백을 만나러 오는
봄바람의 몫이다. 모가지를 꺾고
붉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봄바람의 동백꽃들 몫이다.

막걸리잔에 앞머리 적시며 졸다가
나 문득 한 소식 본다. 사랑이란
그 사랑을 타인으로 놓아주는 것
지지 않는 동백꽃을
그저 붉은 동백꽃으로 바라다보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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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ext 2007/10/10 10:11
저명인사 가운데, 대부분의 글들을 꼬박꼬박 읽는 개인 홈페이지 내지는 블로그가 있다. 김규항, 강유원, 우석훈이 그들이다(강유원의 글들에서는 조금 멀어졌다). 김규항과 강유원의 책은 웹에서 대부분 읽은 내용인 줄 알면서도 몇 권 샀고, 우석훈의 책은 몇 번이나 살까말까 망설이면서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살떨리는 강의록과 댓글들을 보고나니 몇 권 주문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제, 최성각의 달려라 냇물아,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를 주문하였고, 안 그래도 보고 싶던 정민의 책 읽는 소리,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선물 받았다(책 선물을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요즘 다시 책 읽는 재미에 슬금슬금 빠져들고 있다. 역시 오래 전 사다놓은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읽고 있는 중인데,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보다는 한참 윗길이다.

* 우선 골고루 골라 주문하였다. 88만원 세대, 도마 위에 오른 밥상,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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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잠

from text 2007/08/16 16:31
장마대신 우기(雨期)라는 용어를 쓰자는 말을 들으니 밀림, 원숭이, 바나나, 세렝게티 초원 뭐 이런 게 두서없이 떠오르면서 눅눅하고 더운 기운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 낮 업무 보러 잠시 나갔다 왔는데 참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가본 적 없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디 가서 여름잠이라도 실컷 자고 왔으면 딱 좋겠다 생각했다. 이게 다 이것대로 즐기면 좋을 텐데 아직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중에서 한 대목을 재인용해 본다. 이춘풍이 아내에게 이르는 말로 원 출처는 古典國文小說選.

자네 내 말 들어보소. 사환 대실이는 술 한 잔을 못 먹어도 돈 한푼을 못 모으고, 이각동이는 오십이 다 되도록 주색을 몰랐어도 남의 집 사환을 못 면하고, 탑골 북동이는 투전 골패 몰랐어도 수천 금을 다 없애고 굶어 죽었으니, 일로 볼작시면 주색잡기 하다가도 못사는 이 별로 없네. 자네 차차 내 말 잠깐 들어보소. 술 잘 먹는 이태백도 노자작(鸕鶿酌) 앵무배(鸚鵡杯)로 백년 삼만 육천일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杯)에 매일 장취하였어도 한림학사(翰林學士)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하였어도 나중에 잘 되어서 일품 벼슬하였으니, 일로 볼지라도 주색잡기 좋아하기 남아의 상사(常事)로다. 나도 이리 노닐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

가나다라

from text 2007/05/10 23:02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송창식의 가나다라를 들었다. 어쩌다 보니 서연이에게 맨 처음 가르쳐준 노래이기도 한데, 그래서 이 녀석이 동성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가나다라마바사아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여러 사람 즐겁게 한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역시 천재란 이런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노래는 너무너무 짧고
일이삼사오륙칠팔구하고십이요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 너무 많은데 이내 두 팔이 너무 모자라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노를 저어 나아가라 가자 가자 가자 가슴 한번 다시 펴고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알고 싶은 진리는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머리가 너무너무 작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좇고 싶은 인물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다리가 너무너무 짧고
갑자을축병인정묘무진기사경오신미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잡고 싶은 순간은 너무너무 많은데 가는 세월은 너무 빠르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뱅글 뱅글 뱅글 다시 보면 다시 그 자리

중건천 중곤지 수뢰둔 산수몽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늘 보고 땅 보고 여기저기 보아도 세상만사는 너무너무 깊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크게 웃자고


무료하다, 요즘. 뭔가 밀린 일들을 한꺼번에 끝내고 따분한 일상을 맞는 기분이긴 한데, 한꺼번에 끝낸 일도 없고 일상은 어째 낯설기만 하다.

서연이를 재울 때나 딱히 놀이거리가 없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녀석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이 될 때가 있다.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는 죽음이나 떠남 같은 이야기에는 전혀 동요가 없지만, 자신의 먼 미래나 좀 지난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아득한 느낌을 받는가 보다.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구나 하는 게 전해지면서 가녀린 짐승을 안고 있는 듯 그 감정에 전이되어 나도 꽤 아득해지곤 한다.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에 있는 벌레를 모르고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었다(딴 얘기지만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영화도 있었지, 아마). 이제 벌레 먹은 과일이나 과일에서 나온 벌레를 보기란 목사나 장로가 천국에 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우리끼리 살겠다고 바둥치는 건 내가 내 혼자 살겠다고 바둥대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도 틀림없이 동물인지라 생명체로서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섬세하기까지 한 동물이라 그 다채로운 결들에 있어서랴.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놈들을 얼마간 경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갈 도리야 옛 사람들이 이미 마르고 닳도록 설해 놓았지만, 때로 우리는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대책 없이 주저앉곤 한다. 개도 안 물어갈 현실 앞에.

오늘 돌아다니다 만난 한 구절,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아 그 깊음을 얻을 수 있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시중에서 흔히 쓰는 의미나 출전의 본래 뜻과 관계없이 아옹다옹거리는 세상사를 빗대는 것 같아 오히려 장자연하게 와닿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 한 백만년만에 책 몇 권 주문하였다. 윤중호의 고향길, 움베르토 에코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 고종석의 바리에떼. 얼마동안 읽을 지 모르겠다.
오래전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읽은 말이 요즘 자주 맴돈다. "다 부질없어 형. 아이하고나 많이 놀아 줘."

오래 돼서 희미하지만, 닌자 거북일 보면 할배 거북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네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와 지금의 네 가치를 혼동하지 마라. 참으로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어젠, 아침부터 낮술 한 잔 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달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대작키로 한 놈, 달이삼촌과 시간이 맞지 않아 점심으로 우동과 군만두를 먹는 바람에, 목욕하며 시간 좀 보내고, 결국 네 시부터 마시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먹는 갈치구이가 맛있었다. 술맛이 오를 즈음 이 녀석에게 급한 볼일이 생겨 한 시간 반 가량 볼일을 보고 차수를 이을 수 있었다. 아, 행복할 사람들은 행복하도록!!


달면 뱉고 / 쓰면 삼킨다 / 가죽처럼 늘어나버린 / 내 청춘의 혓바닥이여(이상희의 시 '잘가라 내 청춘' 전문)

인생은 그 날이 꽃과 같아 단 한 번의 몰락으로 나는 / 죽은 뿌리의 욕망을 알게 되었다(함성호의 시 '고향집, 폐허' 중에서)

산을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몸무게에 의해 실존주의자가 되었다가 산꼭대기에 이르면 유물론자가 된다.(황지우의 시 '靈山' 중에서)

대다수가 자신의 고역을 동댕이쳤을 때, 또한 그의 마지막 '가치'도 동댕이쳤다. 무엇에 대하여 자유롭게 되었는가, 하는 것 따위는 짜라투스트라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대의 눈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분명히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F.W.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저 세상에 가서도 그림을 사랑하자 / 그림이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인사동 어느 화방에서)

살고 싶으면은 죽은 체 하라, 죽은 체 하면 행복이 온다.(어느 TV 만화 영화에서, 꼬마들이 부르던 노래)

讀書之有患之始(김성동 '風笛' 중에서)

예술가는 좀 게을러야 해. 그래야 이것저것 궁리할 시간이 많지.(백남준)

공격성이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사랑이 없는 미움이란 있을 수 없다.(콘라트 로렌츠 '공격성에 관하여' 중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중에서)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의 시 '이탈한 자가 문득' 전문)

다른 주머니 속에서 담배갑이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한바탕 일을 끝마치고 한 대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마지막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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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바로쓰기

from text 2006/07/18 16:00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였는데, 우리글 바로쓰기 2권 뒤표지에 다음과 같이 써 있다. 눈에 확 띄는 이 '입장'

우리 지식인들은 분단 반 세기 동안 '입장'이란 일본말 하나도 바로잡아 쓰지 못했고, 아직도 바로잡을 생각조차 안하면서 끊임없이 병든 말을 퍼뜨리고 우리 말을 죽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방방곡곡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든 글에서 벗어나 말로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우리들 편임을 산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연휴 때 들춰본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서 이오덕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보았지만(이오덕은 민족의 언어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를 강조한다. 글말에까지 구어체를 강요하는 것은 우리말의 문체를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 있고 올바른 것으로 보지만, 결국 자신의 언어를 선택할 때는 어떡할 것인가. 문제의식을 유지하고 전제하되 이오덕에게 나아가면 어떨까.

책 주문하다

from text 2006/07/12 15:58
적어놓은 책 목록을 살펴보고, 교보문고에서 에테엔느 트로크메의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 박민규의 '카스테라',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를 주문하였다. 인터파크에서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세 권과 함께.

베른하르트의 '옛거장들'과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파는 델 못 찾겠다. 못 찾으니 더 사고 싶다만.

윤구병의 책은 직접 보지 않고는 딱히 어떤 걸 집질 못하겠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살피다가 한 리뷰에서 '입장'이란 말은 '처지'나 '태도'로 바꿔야 한다는 글을 보았다. 어제 쓴 글 전체를 도배하고 있는 말이 '입장'인데.. 곰곰 생각해보니 태도는 몰라도 처지로 바꾸는 건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미묘한 어감 차이가 걸리긴 하지만. (처지도 한자어인데, 입장이 일본식 한자어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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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할 만한 것?!

from text 2006/06/20 18:59
2001년 7월 13일, 머꼬의 부탁으로 ‘추천할 만한 한 두서너대여닐고여덟 가지 것들'이란 제목으로 계명대 영화패 "햇살"에 올린 글.


오늘은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에도 비가 오면 꼭 쏘주 한 잔 해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그쳤다. 그래도 아마 먹을 것 같다. 이 글이 잘 써지면 그 핑계로다가, 잘 안 써지면 뭐 또 그 핑계로다가. 장마비가 휴일까지 계속 오락가락한다는데, 덩달아 나도 오락가락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간밤에는 피곤한 가운데에도 잠을 청하지 못해 새벽 세시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예전에 할매에게 들려주었던 바쳐야 한다에서 시작하여 동지가며 타는 목마름으로를 나직이 열창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 울 뻔 하였으며, 천년여왕, 은하철도 구구구를 거쳐, 찔레꽃 삼절이 기억나지 않아 헤매다 잠이 들었다. 할매 말로는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면,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처럼 편안하여 잠잠조용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강해져 우울지경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단다.

가사가 멋져 여기 잠시, 모르는 분들이 많을 듯 하여, 바쳐야 한다 일이절 가사를 일부 옮긴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아라

구차한 목숨으론 사랑을 못해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아라
두려움에 떨면은 술도 못 마셔
그렇게 마신 술에 내가 죽는다

언제 술 마시고 기회 되면 함 불러주겠다.
아, 그리고 저 찔레꽃은 붉게 피이이는 그 찔레꽃 아니고,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에, 장사익의 절창을 들으며 쓰고 있는데 가사 기억해 쓰기가 어렵다. 봄비!!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허물어지면? 질 때?

에서 도통 기억이 안 난 그 찔레꽃이다. 일이절은 예부터 전해 내려 왔고 삼절은 후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구체적 질감에서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고 누가 써놓은 걸 본 적이 있다.

어째 쓰다보니 영 옆길로 샌 감이 있는데, 아, 방금 이상은으로 바꿨다. 한결 쓰기는 낫군.


추천할 만한 것이라, 글쎄 무엇이 있을까, 짧은 생이지만 인생을 살 찌우는데는 단연 이 세 가지가 아닌가 한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과 깊은, 죽음 같은, 연애, 그리고 책이다. 머꼬는 내가 책을 많이 보는 줄 알고 그 쪽으로 유돌 하는 것 같았는데 글쎄 어쨌든 이 세 가지가 인간을 키우는 데는 그만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스승으로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본을 받을만한 분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그를 만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사실 우리가 스승을 찾는 눈을 갖기도 지난한 일이 아니겠는가.

까지 쓰고 잠시 어머니 전활 받고 어른 계시는 댁에 우유랑 물이랑 가지러 갔다 오고, 할매 와서 같이 저녁 먹고 부치지 않은 편지 들으며 다시 시이자악!!

어쩌면 그래서 책이 그 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될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살아있으며 내가 만난 인생에 스승이 될만한 분을 꼽는다면, 새로 학교를 다니며 다시 만난 단 한 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재학생 여러분들은 꼭 한 번 그 분의 수업을 듣기를 권해 마지않는다. 사학과 이윤갑 선생님이신데, 나는 그 분에게서 인생에 지침이 될 만한 가치 체계와 산다는 것의 적극적인 의미를 배웠고, 그리고 아름다운 한 영혼을 만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 때는 내가 결혼을 한다면 꼭 저 분을 주례로 모셔야지 생각했었는데, 졸업 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팔십 팔년인가 구년에 국사 수업을 듣고, 구십 칠팔년에 한국현대사와 한국사회경제사를 들었다. 국사 수업이야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지만 현대사와 사회경제사의 주옥같은 강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담인데, 다 에이뿔을 받았다. 계절학기 두 학기까지 십사학기 중 에이뿔은 그게 거의 전부이다.


살아가다 보면 한 고비를 훌쩍 뛰어넘은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어느새 커버린 키를 새삼 보게 될 때도 그렇고 쏘주 두 병을 먹고도 끄덕 없을 때도 그럴 수 있다.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깜짝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때가 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려 다시 도를 닦아야 할 때가 많지만, 반복하다보면 또 훌쩍 한 단계 뛰어넘은 자신을 보게 되곤 하는 것이다. 이성 앞에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다가 각고의 고민과 노력 끝에 여러 이성 가운데에서 한 두어서너 사람 남기고 어떻게 반인륜적이지 않게 정리할까 고민하게 되는 수가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과 무수한 술병들과 새우깡 봉지들, 불면으로 터져버린 실핏줄들이 모두 한 몫 하였겠지만 나는 그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찌인한 연애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이 사람의 일이고 그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의 총체일진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 그것만큼 확실하고 깊은 것이 없다. 오래고 깊은 연애에서 실패, 결혼으로 골인한다거나 죽을 때까지 연애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일단 실패라 한다면, 그렇다, 실패한다면 나는 거의 무한정 성장하는 것이다. 웬만한 선악과 미추에 흔들리지 않고 한 잔 술에 취하고 한 동이 술에 견뎌내는 것이다. 인생의 이면을 보고 인생의 또 다른 무엇의 존재를 알고 인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주 만물이 인간과 둘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아아, 그러나, 이것은, 그 긴 터널을 통과하여, 무사히,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죽어갔던가. 세차게 비 오는 날 술 마이 묵고 하늘 함 경건히 올려다보시라. 그렇게 죽어간 많은 별들이 얼마나 초롱이 빛나며 하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나는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상처를 입으며 생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른 척 한다.


힘든 시절 나를 견디게 해 준 책들이 있다. 언젠가 어느 구석에 그 책들과 준탱이와 부천 노땅이 아니었음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 책들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윤후명의 몇몇 소설들과 오정희의 대부분의 소설들이다. 그 때를 돌아보면 간간이 나를 지탱케 하던 시집들과 평론집들도 떠오르지만 단연 위의 소설들이 나와 함께 하였다. 반복되는 주사와 끊임없는 술자리를 묵묵히 지켜주던 두 사람은 내 말벗이며 술벗이요 이즈음도 절실한 그 무엇이다.

내가 읽은 많지 않은 책들 중 단 한 권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죽음의 한 연구를 든다. 일천 구백 칠십 오년에 발표되었으며, 팔십 육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발간하였다. 지금은 같은 출판사에서 상하권으로 나뉘어 새로운 판으로 나와 있다. 한 수도승의 사십일 간의 기록인데 나는 근 일년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매일매일 한 페이지든 한 문단이든, 때로는 며칠간의 기록을 읽어 나갔다. 읽을 때마다 앞부분을 다시 조금씩 읽으며 그 책에 나는 젖어들었다. 처음 조금 읽기 어려워도 꾸준히 조금씩 읽다보면 그 문체의 감칠맛에 빠지고 그 세계의 매력에 흠뻑 젖게 된다. 하루에 하루치의 기록씩 사십일을 투자하여 읽기를 권해 마지않는다. 욕심도 내지 말고 너무 더디 읽지도 말고 하루에 하루치의 분량만, 방학을 이용하여 까짓 이 한 권 함 읽어들 보시라. 사십일 동안 그저 함 다 읽고 한 일주일 쉬었다가 다시 함 읽으시라. 며칠 안 걸릴 것이며 처음 읽을 때와 완연히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정독을 하였는데 그 때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져 나는 새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대 유리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지.
먼지처럼 가볍게 만나
부서지는 햇살처럼 살자던 그대의 소식 다시 오지 않고
유리에 가면 그대 만날 수 있을까,
봄이 오는 창가에 앉아 오늘은
대나무 쪼개어 그대 만나는 점도 쳐보았지.
유리 기억 닿는 곳마다 찔러오던 그 시퍼런 댓바람,
피는 피하자고 그대는
유리로 떠나고
들풀에 허리 묶고 우리 그때 바람에 흔들리며 울었었지.
배고픈 우리 아이들
바닷가로 몰려가 모래성 쌓고
빛나는 태양 끌어 묻어 다독다독 배불렸었고.
그대, 지금도 유리에 가면 그대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아프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아
물마른 강가에 앉아 있다던 그대와
맑은 물이 되어 만날 수도 있을 텐데.
어쩌면 그대는 유리를 떠나고
유리엔 우리가 살아서
오늘은 그대가 우리를 만나러 오는
시퍼런 강이 되기도 하겠지만.

철학과 선배이기도 한 노태맹의 유리에 가면이란 시인데 이 유리가 그 수도승이 수도를 하는 동네 이름이다. 이 시는 일천 구백 구십 오년에 세계사에서 유리에 가서 불탄다 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시집에 실려 있다.

박상륭의 다른 책들은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속편격인 길기도 긴 칠조어론이 있는데 정히 궁금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게 나을 것이고, 소설집으로 열명길과 아겔다마가 있는데 이는 함 읽어볼 만은 하다. 역시 문지에서 나왔다. 근래에 나온 그의 책들은 대충 서점에서 뒤적이다 그냥 나왔다. 점점 형이상학으로 치닫는 그의 세계가 나는 싫다. 어렵다.

나도 새끼 갖고, 그리고 엉덩이 큰 계집의 볼기짝을 두들기며, 그렇게 살고만 싶은 것이다. 계집과 자며, 홍수처럼 사내를 쏟고, 그리고 이튿날은 보습에 묻은 녹이나 쓸어내고 싶고,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그 모든 풍족치 못한 농부들 모양, 굴비 한 마리 지겟가지에 매달고 싶을 뿐이다. 가난에 거칠어져 가시뭉터기 같은 마누라의 손바닥으로 등을 긁히고 싶은 것이고, 홍역에 죽어가는 자식놈 탓에 인색한 의원 무릎 위에 눈물도 흘리고 싶은 것이다. 목소리가 변해 가며, 마을처자들 댕기나 나꿔채다 돌아와 늦잠을 자는 아들놈이 꾀병을 앓아대는 꼴은 얼마나 흐뭇한 것이냐. 그래 그런 것은 얼마나 선하며, 좋은 것이냐. 그 아들이 마포 상복 자락에다 눈물과 황토를 담아다 아비의 관을 덮어 주는 그 황토 냄새는 또한 얼마나 좋을 것이냐. 썩을 수 있다는 건, 죽을 수 있다는 건, 흩어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좋은 일이냐.

열명길에 실린 유리장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아아 정말 얼마나 좋을 것이냐. 얼마나 좋은 일이냐.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있는, 나를 매혹시키고 있는 책들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박병상의 파우스트의 선택, 김종철 선생의 간디의 물레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격월간 녹색평론 등이다. 다들 같은 맥락의 책들인데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대부분 녹색평론사에서 나왔으며 생태학 관련 책들이다.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하여, 산다는 것에 대하여,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한층 높은 차원을 체험하게 해 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에 대하여 이보다 더 명확하고 바른 해답을 나는 아직 모르겠다.

책에서 만난 가장 큰 스승의 한 분이 바로 영남대 영문과 교수이며 녹색평론사를 이끌어가는 김종철 선생이다. 선생의 글들은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슴을 쿵쾅 내려치는 경구로 가득차 있다. 그 뛰어난 문장 보다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것들이 그의 세계에 가득하다. 삶 또한 그러하다고 듣고 있다.


열두시가 가깝다. 혼자 기다리다 잠든 할매가 아리다. 세탁기에 든 빨래 널고 이제 자리에 들어야겠다. 모두들 아름다운 꿈들 꾸시기를 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그치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곧 현실이 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비는 잠시 그치고 또 한 세월 가고 겨울이 기다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가자.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구로자와 아끼라의 꿈, 그 마지막 즈음 나오는 마을 풍경, 그 세계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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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ext 2006/06/14 21:09
살펴봤으면 하고 적어놓은 책 목록.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 바바라 런던의 '사진학 강의', 베른하르트의 '옛거장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소멸', 박민규의 '카스테라', 에티엔느 트로크메의 '초기 기독교의 형성',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윤구병의 책, '200주년 성서'...

'사진학 강의'는 SLR클럽 장터에서 구매하였고, 나머지는 좀 더 살펴본 후 구매 결정하여야 할 듯.

잘 읽지도 않으면서 목록이 좀 모이면 사는 버릇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한두 권씩 살 때는 그렇게 열심히 읽곤 했는데, 인터넷 구매의 단점이기도 하고, 책을 읽기에는 정신이 너무 황폐해져 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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