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해당되는 글 3건

  1. 작곡 2008/07/25
  2. 이거 괜찮은데요 2008/02/10
  3. 여행 2007/10/02

작곡

from text 2008/07/25 14:29
오늘 아침 일이다. 일어나자마자 멜로디언을 꺼내 건반을 두드리는 녀석을 달래가며 밥을 먹이려는데, 언뜻 봐도 복잡한 음표들을 잔뜩 그려놓은 공책을 보며 치고 있는 것이었다. 어딘가 있는 걸 옮겨놓은 거냐, 네가 쓴 거냐 물으니 제가 썼단다. 엊저녁 '일지매' 마지막 회 보느라 정신 팔려있을 때 공책을 펴놓고 뭔가를 열심히 쓰기에 글씨 연습하는 줄 알았더니 이걸 쓰고 있었나 보다. 볼펜으로 오선지를 긋고 음표 아래에 계이름도 군데군데 적어놓은 게 (본 적은 없지만)전문가의 습작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높고 빠른 템포의 곡으로 보였다. 어린 작곡가(?)의 즉흥연주까지 들었으나, 그리 매끄럽지 않은데다 들어도 뭘 잘 모르는 귀를 가진 탓에 별 큰 감흥은 없었다. 유치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어떤 연주가 떠올라 써 본 건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연주해 본 건지 물었더니, 예쁜 음악이 생각나서 쓴 거란다. 아무렴, 창작이 아니라 어디서 들은 걸 어설프게 베껴본 것이라 하더라도 나에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이 물난리를 겪는 와중에도 홀로 쨍쨍한 폭염주의보를 발하더니 마침 내리는 단비가 반갑다. 녀석의 말 곧이곧대로, 누가 뭐래도 녀석의 첫 작곡인 거다.

* 얼마 전에는 피아노학원에서 집으로 걸어오며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일이 있다. 대뜸 '서연이도 몰라요' 하더니, 나중에는 '한마음콜 택시가 좋아도 다른 택시도 타는 거예요' 한다. 그렇지, 뭐든 하나만 그리 좋을 수 있나, 하다가, 택시 사랑이란 저와 같아야 하는가, 소리 내어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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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괜찮은데요

from photo/D50 2008/02/10 20:54
요즘 일이 바빠 연휴에 맞물린 어제 같은 놀토에도 느지막하나마 일을 보러 나갔었다. 늘 그렇듯 쫓기듯 바쁜 일이야 아니지만 어느 때보다 잘 풀렸으면 하고 바란다. 역시 일을 한 0124님이 일을 마치고 서연이와 교보문고에 들러 찍은 사진. 이제 처분하기도 어려운 카메라, 언제 화이트밸런스 맞추는 법이나 일러줘야겠다. 다음은 0124님의 전언.

Keith Jarret의 새 음반을 들으며 하는 말, 엄마 이거 괜찮은데요. 뭘 알고 하는 말인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흐를 때면 언제나, 엄마 이거 우리가 좋아하는 거다. 먼 훗날 정말 그와 취향이 비슷하다면 하고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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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from text 2007/10/02 23:41
서연이가 어제부터 피아노학원에 다닌다. 학원에서 배우는 피아노란 게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내가 워낙 음치인데다 수영을 못하는 탓에 음악과 수영만은 일찍 접하고 익혔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고(더 바란다면 체계적인 교양을 쌓았으면 싶다. 어릴 때 생활로 접하지 않은 예술적 감성은 후에 공부로 채워지지 않는다. 물론 공부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독학의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게 한탄스러울 때가 있다), 작년 삼월부터 저녁마다 서연이를 봐주신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시기도 하여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저녁에 좀 편하게 내 시간을 보내거나(술 먹은 다음날 아예 혼자 편히 쉰 게 얼마더냐)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저녁밥을 먹기는 힘들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래다주고 데려오는 일만도 보통 일이 아닌데)덕분에 술도 좀 줄고 몸무게도 좀 줄려나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 오래 전(1995년일 것이다) 봄의 초입에 정호, 준탱이와 함께 떠난 여행이다. 고창 선운사, 다산초당, 완도, 땅끝, 남해, 진주, 양산 통도사 등지로 돌아다녔다. 술자리마다 떠나고 싶다, 가고 싶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읊어대곤 하다가 어느 날 저녁 정호가 작정을 하고 나서는 바람에 지도 하나 들고 엉겁결에 나선 여행이었다. 정호와 준탱이 번갈아가며 밤에 운전을 하고 낮이면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선운사 입구로부터 선운사까지, 그리고 남해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또 한번은 이듬해 정초, 지금은 서울에서 노무사를 하고 있는 문배형과 둘이서 태안반도(만리포, 안면도), 변산반도(채석강, 내소사), 선운사, 마이산(탑사, 은수사) 등지로 다닌 것이다. 제천역에서 철도인간으로 근무하던 문배형이 백수로 귀환하는 걸 기념하는 여행이었는데, 혼자 기차를 타고 제천에 도착하는 날부터 눈, 비가 섞여 내리더니 여행 내내 흐리고 눈, 비가 내렸다. 장안평에서 중고 프라이드를 사자마자 내처 떠난 여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형수한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두 분 신혼여행 때는 마침 제주도 출장이 겹쳐 형수 잠든 사이 둘이서 술 퍼먹고 논 적이 있다. 형이 들어갔을 때는 형수 혼자 뭔 신혼여행이 이러냐며 맥주 마시며 울고 계시더라고 들었다). 만리포 가는 길에서의 짙은 안개, 온통 눈에 덮인 변산반도, 눈 내리는 채석강, 내소사의 설선정, 눈길을 헤치며 한참을 달린 막다른 국도, 밤에 둘러본 탑사와 은수사의 진기로움이 기억에 남는다.

내일은 이종사촌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 예과(?) 4년 마치고 그의 언니 수학 가르친다고 몇 달 같이 생활한 적도 있는데, 외할아버지 장례 때 보니 생판 몰라볼 숙녀가 되어 있었다. 숙명여대 근처에 집이 있어 자주 그쪽으로 산책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0124님은 절친한 친구 수경씨(TBC에서 리포터와 라디오 DJ를 하던 시절, 우리 함 들어가는 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주었었다. 지금은 GS홈쇼핑의 잘 나가는 쇼호스트이다. 축하해요, 수경씨)의 결혼식이 겹쳐 서연이와 전주엘 가고, 먼 길에 자동차가 싫어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과 따로 혼자 기차표를 끊어두었다. 혼자서는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서울 처음 가는 촌놈인 양,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양 조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