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대화 3 2009/11/14
  2. 대화 2 2008/11/29
  3. 대화 1 2008/07/31

대화 3

from text 2009/11/14 00:55
포스팅도 뜸하고, 그저께 아침 밥상에서 제 어미와 서연이의 대화 한 토막.

어제 축구 누가 이겼게요?
음, 서연이 팀?
아니.
그럼 상대편 팀?
아니.
무승부구나?
아니.
그럼?
축구 안 했어. 바람이 그렇게 불고 추운데 축구는 무슨 축구?

임플란트 2차 수술을 끝내고 실밥 푼 지 일주일도 안 되었건만 방금까지 사흘 내리 술을 먹었다. 잔뜩 흐리거나 비도 간간이 뿌리는 날들, 어지럼증에 보름째 37.2도의 열은 가시지 않았으나 술맛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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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2

from text 2008/11/29 17:33
아침부터 바둑 두 판, 오목 네 판, 알까기 여덟 판으로도 모자라 놀아 달라 계속 보채는 녀석 겨우 달래고 좀 집중해서 책을 보고 있자는데, 난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통에 토요일 오후 모처럼 재미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 글은 이 대목까지 포함하여 서연이의 검토 후 올리는 것이다. 대화 직후 스케치북에 날려 쓴 걸 모니터를 보며 함께 옮긴 것, 내용에 별 수정은 없었지만 어미나 조사를 꽤 바꿔야했다.

아빠랑 서연이가 없었을 때는 우리 어디 있었어요?
아빠랑 서연이가 없었을 때 우리는 없었지요, 뭐.
아니요, 우리가 없었을 때는 우리 어디 있었냐구요?
서연이는 아빠하고 엄마하고 결혼해서 태어났고요,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결혼해서 태어났잖아요.
증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이런 것도 없었을 때는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을 때요?
네.
그때도 동물들은 있었지요.
근데요, 동물들도 없고 아무도 없었을 때는요?
그때는 아무 것도 없었지요, 뭐.
아니요, 지구도 없고 목성도 없고, 토성 이런 것도 없고, 그럴 때요?
그럼, 아무 것도 없는 거지요, 뭐.
아, 정말! 아니요, 하늘나라가 있잖아요?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건 알 수 없어요.
왜요?
알 수 없으니까요.
가본 사람이 있잖아요?
누구요?
죽은 사람이요.
근데 갔는지 모르잖아요.
왜요?
갔다가 다시 온 사람이 없으니까요. 하늘나라에 갔는지 그냥 없어졌는지 모르잖아요.
아, 재밌다. 근데요, 지구 위에는 하늘이 있잖아요, 그 위에는 뭐예요?
지구 위에는 우주지요, 지구도 우주의 한 부분이고요.
우주 위에는요?
우주는 그냥 우주지요, 그 위에도 다 우주고요.
우주 끝에 가면은요?
그래도 다 우주예요. 신기하지요?
네.
아빠도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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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from text 2008/07/31 23:31
엊저녁, 0124님은 여전히 교육으로 늦는데다, 비도 오고 마음도 그렇고, 서연이랑 둘이 간단히 저녁 챙겨먹고는 집 근처 자주 가는 일본식 꼬치 전문점으로 가볍게 나들이하였다. 단둘이 술집에 간 건 처음이다. 상 아래로 다리를 넣을 수 있는, 늘 앉는 자리에 마주 앉았더니, 언제나 정겨운 인상의 주인아주머니께서 몇 분 더 오시는지 묻는다. 답니다 했더니, 조금 놀라는 눈빛으로, 혼자 오셨어요? 하는데, 이 녀석이 대뜸, 저도 있어요 소리치는 바람에 주변 손님들의 이목을 끌고 여럿 웃음을 자아냈다. 유쾌한 술자리가 되리란 예감을 하며 같이 안주를 고르고 소주 한 병 주문하여, 서로의 잔에 저는 술을 따르고 나는 물을 부어 심심찮게 건배하며 대작하였다.

흔히 갖는 술자리와 달리 진지한 대화부터 시작하였다. 아빠는 서연이한테 바라는 게 하나 있다, 밥을 먹을 때나 이렇게 식당에 앉아있을 때 가만히 앉아서 먹었으면 좋겠다 했더니, 짐짓 심각한 얼굴로 알았단다, 그렇게 하겠단다. 서연이도 아빠한테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 했더니, 담배는 피우지 말고 술은 조금만 마셨으면 좋겠단다. 잠시 실랑이하다 담배는 줄이고 술은 덜 먹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고는 묵찌빠, 가위바위보, (제멋대로)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중간말잇기, 끝말잇기를 거쳐 녀석의 미래에 대해 잠시 들을 수 있었다.

뜬금없이 이천이십일년에는 서연이 몇 살이에요? 그럼 이천삼십삼년에는요? 이천사십이년에는요? 등등 묻고는, 답해주는 나이에 따라 고등학교 삼학년이네, 어른이네, 아빠 나이랑 똑같네, 어쩌네 하더니,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원별애랑 결혼한단다. 저희들끼리는 결혼을 약속한 이현지라는 단짝이 있는 줄 아는 터라, 현지는? 했더니, 이현지는 나중에 저를 안 좋아할 지도 모르는데, 원별애는 나중에도 저를 좋아할 거란다. 그래서 원별애랑 결혼할 거란다. 아빠 나이랑 똑같네 할 때에는, 서연이도 그때 아빠한테 서연이가 있는 것처럼 아기 있겠네 했더니, 원별애가 낳으면요? 하고는 실실 웃는다.

다음날 오마시던 빙부께서 들르셔서, 술과 안주를 삼분의 일 가량 남기고, 아쉬움을 두고,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선선했다. 열대야 탓도 있겠지만 한동안 또 잠을 설치고 새벽에 깨는 일이 잦더니 모처럼 깊이 잤다. 가게에서 나와 손을 잡고 걸을 때는 뭔가 꽉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녀석과 대작하는 동안 받은 교감과 유대의 느낌을 되새기며, 나누는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간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자유에 집착하여 그 소실을 그리 염려하고 언짢아하였던가 돌아볼 수 있었다.

* 말하는 김에, 오늘 아침 녀석과의 출근길에서의 대화. 택시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오늘은 누가 데리러 올 거예요? 묻는다. 아빠가 데리러 갈 거라 했더니, 일 있으면요? 하고 되묻는다. 오늘은 일 없으니 아빠가 데리러 갈게 해도, 갑자기 일 생기면요? 그럼 어떡해요? 집요하다. 그럼 어쩔 수 없이 할머니 댁에 가 있으면 되지 했더니, 그러니까요, 지금 슈퍼 가요, 헤헤 웃으며 손을 잡아끈다. 과자든 사탕이든 빙과류든 딱 하나만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정해놓고 사주는데, 혹여 하는 생각에 저녁까지 못 기다린단 심산 거다.

하나 더. 조금 전, 제 어미가 왔을 때 둘의 대화. 방학이라 유치원 도시락 반찬으로 고민인 어미가, 장 봐서 월요일엔 김밥 싸줄까? 하는 말에, 그럼 김하고 밥하고 재료하고 싸주세요, 서연이가 싸서 먹을게요, 천연스레 대꾸한다. 제 어미 음식 솜씨를 교묘히 타박하는 건지, 말 비틀기인지, 나도 따라가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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