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해당되는 글 6건

  1. 대화 2 2008/11/29
  2. 먼저 가서 4 2008/09/10
  3.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2008/09/05
  4. Leaving Las Vegas 2007/10/12
  5.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2007/09/30
  6. 화두 2007/09/26

대화 2

from text 2008/11/29 17:33
아침부터 바둑 두 판, 오목 네 판, 알까기 여덟 판으로도 모자라 놀아 달라 계속 보채는 녀석 겨우 달래고 좀 집중해서 책을 보고 있자는데, 난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통에 토요일 오후 모처럼 재미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 글은 이 대목까지 포함하여 서연이의 검토 후 올리는 것이다. 대화 직후 스케치북에 날려 쓴 걸 모니터를 보며 함께 옮긴 것, 내용에 별 수정은 없었지만 어미나 조사를 꽤 바꿔야했다.

아빠랑 서연이가 없었을 때는 우리 어디 있었어요?
아빠랑 서연이가 없었을 때 우리는 없었지요, 뭐.
아니요, 우리가 없었을 때는 우리 어디 있었냐구요?
서연이는 아빠하고 엄마하고 결혼해서 태어났고요,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결혼해서 태어났잖아요.
증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이런 것도 없었을 때는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을 때요?
네.
그때도 동물들은 있었지요.
근데요, 동물들도 없고 아무도 없었을 때는요?
그때는 아무 것도 없었지요, 뭐.
아니요, 지구도 없고 목성도 없고, 토성 이런 것도 없고, 그럴 때요?
그럼, 아무 것도 없는 거지요, 뭐.
아, 정말! 아니요, 하늘나라가 있잖아요?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건 알 수 없어요.
왜요?
알 수 없으니까요.
가본 사람이 있잖아요?
누구요?
죽은 사람이요.
근데 갔는지 모르잖아요.
왜요?
갔다가 다시 온 사람이 없으니까요. 하늘나라에 갔는지 그냥 없어졌는지 모르잖아요.
아, 재밌다. 근데요, 지구 위에는 하늘이 있잖아요, 그 위에는 뭐예요?
지구 위에는 우주지요, 지구도 우주의 한 부분이고요.
우주 위에는요?
우주는 그냥 우주지요, 그 위에도 다 우주고요.
우주 끝에 가면은요?
그래도 다 우주예요. 신기하지요?
네.
아빠도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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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서

from text 2008/09/10 14:42
아니 누(gnu) 한마리가 공포에 질려 도망치다가도 맹수의 배 밑에 깔리고 나서는 먼산을 보듯 순박하고 담담한 눈망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왜일까. 텔레비전에서 본 다큐멘터리 화면이라 해도,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격렬히 몸부림치는 게 아닌, 그 어떤 한없는 순종이 나는 감동적이었다.

김곰치의 '발바닥, 내 발바닥'에서. 그 눈망울을 본 것 같지 않은가.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지 않는가. 그 눈망울이 빤히 바라다보는 것 같지 않은가. 한참 무연히 그 눈망울을 마주보다 '한번 가보는 것이다'에 가슴 일렁였던 원규형의 시 '먼 길'이 떠올랐다. '득병유시 치병유시'에 달아두려다 새로 올린다.

돌담 위의 굴뚝새야
앞 도랑의 버들치야

강 건너
산 넘어 간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그곳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번 가보는 것이다

저승길이 대문 밖이니
인연이 다했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 사람들
저 세상에
더 많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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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from text 2008/09/05 11:40
생물체들은 서로 다르다. 새로이 번식된 생물체들은 그것들을 낳아준 모체들과 다르며, 새로 태어난 생물체들은 그것들대로 서로 다르다. 각 존재는 다른 존재와 다르다. 어떤 존재가 태어나, 사건들을 겪다가 죽는다면, 출생, 사망을 포함한 그의 사건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사건들에 직접 관계하는 사람은 본인뿐이다. 그는 혼자 태어나며, 혼자 죽을 수밖에 없다. 어떤 한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으며, 거기에는 단절이 있다.

사랑에 빠진 어떤 사람은 상대방을 소유하지 못할 경우 상대방을 죽일 생각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이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미친 듯한 열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얼핏 본 연속감에 기인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 세상에 인간적 한계를 무너뜨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직 연인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육체적 결합과 심정적 결합을 이루면 불연속적인 그들이 완전한 융합에 이르고, 그러면 그들이 연속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과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죽음을 방탕의 개념에 결부시키는 방법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시는 상이한 에로티즘의 형태가 마침내 이르는 곳, 즉 상이한 사물들이 뒤섞이는, 불명료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하여 시는 우리를 영원성에 이르게 하고, 시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연속성에 도달케 한다. 시는 영원이다.

죠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 서문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에로티즘' 중에서. 예전에 <註釋, EROTISM>이라는 제목으로, 서문 중에서 고른 어떤 대목 하나 다음에 짧은 이야기, 다른 대목 하나 다음에 연이은 이야기, 또 다른 대목과 이어지는 이야기, 식으로 소설 쓰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쓸만한 대목들만 골라놓고 이야긴 도입부만 겨우 끼적이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발상은 괜찮았고, 돌아보면 그리운 시절이었다. 물론 당시엔 딱 죽거나 죽이고 싶었을 뿐인, 그런 때이지만.

* 잘 짜여진 다시 읽어도 좋을 괜찮은 단편이나 중편소설 하나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수필 서너 편, 울림 있는 시 몇 편 같이 엮어서 책 한 권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그래 그런 거지 하며 웃으며 서럽잖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Leaving Las Vegas

from text 2007/10/12 01:53
술자리 내내, 모처럼 밤길을 걸어 집에 오는 내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떠나지 않았다. 무리 속에서 혼자 벤을 생각하며, 벤과 대화하며 술을 먹었다. 그를 생각하면 더 큰 잔에 술을 붓고, 더 자주 잔을 들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잘 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바빴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羑里에서처럼 빤히 내다뵈는 걸 받아들이는 육조의 심정이었을까, 이제 그렇게 다 버리고만 싶었던 것일까, 종내 갈 수밖에 없는 시간의 가르침을 그저 따라간 것 뿐일까, 얼마 전 술 마실 적 심정으로 미루어 대꾸할 뿐, 더 오래 잔을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한 생애에 주어진 사랑과 '행복'은 유한할 터,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I'm Ben. I'm Sera. Sarah, with an 'H'? With an 'E', S-E-R-A, Sera.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역사서나 역사를 다룬 드라마 등을 볼 때면 옛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수 있었는지 가슴이 서늘할 때가 많다. 대지를 어머니라 생각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지 아니 한 인디언들의 삶에 대해 떠올릴 때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자라는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죽음의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초월한 것에 기댈수록, 가면 갈수록 갈 데가 없을밖에. 다음은, 1854년, 두아미쉬-수쿠아미쉬족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 이윤갑 선생님께서 예전 한국사회경제사 강의 중 복사하여 나눠주셨을 때 처음 보았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내왔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안개가 달아나듯이 홍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었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 소리나 한밤중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물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날들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있지도 않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에 그 누구도 살아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는 간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홍인에게나 백인에게나 꼭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홍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차고 무르익은 언덕이 말하는 쇠줄(전화선)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덤불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이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 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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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from text 2007/09/26 11:20
떠남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는 떠나는 것만 보인다. 아기를 가졌을 때는 아기를 가진 사람만 보이는 것처럼. 좋은 글, 좋은 책은 매번 다르게 읽힌다. 좋은 사람도 그렇다.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거다.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줄을 일찍 알았던 탓. 푸른 깨꽃이 다 내 편인 줄 알았던 거다. 누구한테도 이길 수 있게 되고부터 누구에게나 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가고 나면 빈 들판에 잡풀만 무성할밖에.

* 추석날 밤, 막내 처고모 내외, 0124님, 처제, 사촌 처제와 그 부군될 사람과 오래 술을 먹었다. 청주, 막걸리, 소주, 복분자주까지 섞어 먹었더니 몸도 마음도 제 자리를 못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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