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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황 2008/10/29
  2. 체제 깊숙이 2008/09/27

근황

from text 2008/10/29 22:30
가슴에 이리 뜨거운 걸 안고 나는 못 살겠다. 너는 괜찮으냐. 빨갛게 떨어지던 나뭇잎이 문득, 묻더라. 다시, 가을이다. 시월도 다 가고, 봄 생각으로 가득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새.

지금 M6에 들어있는 코닥 포트라160vc 한 롤 빼고는 필름도 다 떨어졌고 가격도 오를 추세라 잘 찍진 않지만 필름 몇 롤 사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비교적 싼 필름들로, 써본 것 중 대체로 마음에 든 코닥 프로이미지100 6롤, 처음 사보는 코닥 컬러플러스200 10롤, 미쯔비시 수퍼mx100 10롤.

인터넷 주문으로 산 책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로드, 밤은 노래한다, 소설의 고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일본현대 대표시선, 체호프 단편선, 친절한 복희씨, 혀. 대부분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블로그를 보다 마음 동한 책들. 그리고 서연이를 위한 노란 양동이,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화요일의 두꺼비.

산 지 얼마 안 된 MP3 플레이어 YP-U4를 주변에 중고로 넘기고 YP-Q1을 주문하였다. 녀석 작고 예쁜 줄 알았더니 작기만 하고 밉상이었다. 긴 충전 시간에 터무니없이 짧은 재생시간을 가진 데다 신곡 볼 줄 모르고 그저 마음에 드는 음악 왕창 넣어놓고 듣는 나에게 컴퓨터로만 충전하는 방식은 (처음엔 장점이라 생각하였지만)어지간히 불편한 것이었다.

아파트로 가려던 계획은 지금 사는 집 계약기간 만료 후로 미루었다. 눈여겨 둔 아파트를 가계약하고 며칠 후 정식 계약서에 날인까지 하고는 주인 쪽 사정으로 취소하였는데, 여러모로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이래저래 무리인 줄 알면서 밀어본 것, 가계약 후 며칠 이리저리 꾸며본 살림이 아깝지만, 어쨌든 홀가분하고 가볍다.

허리와 왼쪽 어금니가 아파 한동안 애를 먹었다. 덕분에 벼르던 산에도 가지 못하고 위 용량도 좀 줄었다. 자가 진단으로는 이게 다 술 때문이지, 한다. 천천히 즐기는 법에 대한 생각은 많은데 때맞춰 치닫는 이놈의 성질은 어찌 이리 숙지지 않을꼬.

체제 깊숙이

from text 2008/09/27 01:20
이제야 가을이 왔나 했더니 겨울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준탱은 가고 술자리 후유증과 아쉬움만 남았다. 예정된 한두 자리만 지나면 확실히 좀 줄여야겠다. 잠시 끊는 것도 좋고.

난생 처음 MP3 플레이어를 샀다. 작고 예쁜 모양에 끌린, 삼성에서 새로 나온 YP-U4.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만 봐도 그것보단 그 공기와 주변을 관찰하고 즐기는 게 낫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길을 걸을 때 음악을 들으며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고 고립하는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면서도 며칠 뭔가 지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다 저지르고 만 것이다. 누구는 그러더라. 같은 풍경이 듣는 또는 들은 음악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음악이 아니라도 어찌 같을 수야 있으랴, 하면서도 자동차처럼 그게 또 그렇구나 했다.

큰 건 하나 지를 예정인 건, 아파트다. 역시 세내는 것이지만 지금보다 많이 비싼데다 넓이도 많이 준다. 봐둔 아파트, 봐둔 평수가 결정을 미루는 동안 나가버려 아직 구한 건 아니지만 들어가면 식구들 모두 처음 살아보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 계약 기간이 일년여 남았으나 0124님 흔들리는 마음에 넘어가버렸다. 계획대로라면 다음달 말이나 다다음달 초엔 옮길 모양이다(그때쯤 입주 예정인 아파트, 부동산 말로는 다음달 초 입주 점검을 하고 나면 물량이 꽤 나올 거란다). MP3도, 이사도, 결정하고 나니 어딘가 허전하고 복잡하던 마음도 조금은 달래지고 나를 둘러싼 새 환경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품게 된다(음악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기대도 되는 것이지만, 얼마나 가까이 할런지도 모르고. 다만, TV를 없애고 잡다한 짐들도 정리하고 잡생각도 좀 떨치고 무엇보다 깔끔하고 정리된 공간에 대한 기대는 하게 된다). 그러나 체제 깊숙이 편입하는 이 씁쓸한 기분이란. 언제든 탁 놓아버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건데, 어딘가 저당 잡히고 목매다는 이 꼼짝없는 마음이란.

내가 너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더는 너에게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꽃은 지고 마는 것, 더는 거꾸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곳에 포개져, 먼 훗날, 깊이 잠들 수 있기를.

* 서연이가 바둑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었다. 유치원 종일반은 관두고 하원에 맞춰 동성초등학교(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이다) 근처의 바둑 학원으로 갔다가 피아노 학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가족들이랑 부대끼고 자연을 호흡하며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안쓰럽다. 좋아하니 시킨다는 핑계로 어른들 욕심만 차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이 녀석이 제 엄마와 함께 프뢰벨영재창의성센터라는 데서 한국웩슬러유아지능검사라는 걸 하고 왔다. 아마도 좌뇌, 우뇌와 관계있을 성 싶은 언어성 소검사(상식, 이해, 산수, 어휘, 공통성)와 동작성 소검사(모양 맞추기, 도형, 토막 짜기, 미로, 빠진 곳 찾기)로 이루어진 건데, 각각의 점수로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을 산출하고 합으로 전체 지능을 산출한다고 한다. 결과를 보니 언어성 지능은 상위 0.4%, 동작성 지능은 21.2%, 전체 지능지수는 2%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언어성이 워낙 높아 비교적 평균치에 가까운 동작성을 합하여도 2% 이내에 든다는 것인데, 편차가 커 검사자의 우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제 엄마가 바둑 학원엘 보낸 것인데, 잘 나가는 쪽 밀어주잔 건지 균형을 잡아보잔 건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바둑 용어를 구사하며 곧잘 덤비는데, 맨 처음 선생님께 들었다는 '이겼다고 좋아하지 말고 졌다고 속상해 하지 마라'는 거라도 잘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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