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에 해당되는 글 6건

  1. 일상으로 2021/03/25
  2. 1월 20일 2014/01/21
  3. 또박또박 2013/06/12
  4. 2 2010/05/30
  5. 근황 2 2009/12/22
  6. 근황 2008/10/29

일상으로

from text 2021/03/25 07:08
어머니 가시고부터 밑반찬을 사거나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일이 늘었다. 하기 쉬워 예전부터 한 번씩 하던 카레, 김치찌개, 통조림꽁치찌개, 부대찌개, 돼지고기김치볶음을 주로 하고, 어쩌다 기분이 내키면 별식으로 감자샐러드, 김치전, 햄버거를 만들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녀석의 175에 90을 육박하는 식욕 핑계로 최근에는 생전 안 만들던 음식도 제법 만들었다. 찜닭, 애호박돼지찌개, 돼지고기가지볶음, 된장찌개에 삼겹살수육, 오삼불고기, 시래기고등어조림까지. 대식가이자 미식가인 녀석의 말을 빌리면 지금까지 계속 최고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작은 재주가 있었나, 나도 어디서 이만한 음식은 잘 먹어보지 못하였다. 동네 시장에서는 오징어나 고등어, 시래기 같은 걸 사며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의 음식 비법이랄까 주의할 점도 듣고, 때때로 중늙은이를 보는 살가운 눈빛과 홍고추 몇 개 정도는 거저 얻어오고는 한다.

지지난해를 돌아보니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던 길들만 떠오른다. 그해 다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봄과 여름의 언덕배기 길과 가을, 겨울의 어두운 골목길과 신천,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이 손에 잡힐 것 같다가도 더없이 아련하기만 하다. 지난해에는 이월에 어머니를 여의고 일상을 천천히 회복하였으며 시월에 집을 샀다. 백내장과 녹내장에 알 수 없는 가려움증이 함께 살고 있으며 한 번 술을 마시면 사나흘은 앓는다. 어쩌랴, 온 세상이 신종 감염병으로 시름하는 중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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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from text 2014/01/21 14:09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세차게 내렸다. 산골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눈이었다. 꾸웍, 문어의 단말마 비명을 두 번 들은 밤이었다. 알코올이 피를 묽게 만들고 뇌수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운 얼굴 몇이 지나갔고,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라고, 이걸 보라고.

응답하라 1994를 시작으로 셜록과 워킹 데드를 보고 덱스터에 빠져 있다. 잦은 좀비 놀이의 여파겠지, 건강검진에서 골감소증 진단을 받았다. 여전히 술, 담배에 햇볕을 잘 쬐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지만 처방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이제 백 일쯤 되었구나, 0124님이 모는 낡은 자동차 덕을 조금씩 보고 있다. 다음은 여름 방학에 이어 두 번째 합숙에 들어간(보고 싶구나) 서연이의 기록 못한 대회 참가 일지.

6월 29일, 포항 실내체육관, 제5회 영일만사랑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4강
7월 14일, 계명대학교 바우어관,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대구지역 예선 유단자부 1위
8월 7일, 서울 63빌딩 별관 그랜드볼룸,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유단자부 예선 탈락(1승 2패)
8월 17일, 울진군 체육관, 제1회 울진금강송배 전국 아마바둑 대축제 전국어린이유단자부 예선탈락(1승 2패)
9월 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2013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학생바둑대회 초등고학년부 예선탈락(2승 1패)
9월 29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7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4조 1위(5승 0패)
10월 5일, 용산 명문바둑학원,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대구대표 선발전 어린이부 2강
10월 12~13일, 문경 실내체육관, 제8회 문경새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 전국초등유단자부 32강
10월 23일, 인천 신흥초등학교 체육관,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어린이부 64강
10월 26~27일, 전주 전주고등학교 강당, 제15회 이창호배 전국아마바둑 선수권대회 전국어린이부 11위(5승 2패)
11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9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3조 3위(4승 1패)

또박또박

from text 2013/06/12 17:01
며칠 좀 살 만한 날씨에 그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얼 하며 지내나 문득 스스로 궁금해졌다. 변함없이 한 주에 두어 번 술을 마시고 서너 번은 기절을 하며 둘째 놈 손을 잡고 또박또박 밥벌이 길을 다니고 있다. 더위가 있어 짜증이라도 낼 때 빼곤 대체로 사는 일에 흥미를 잃다보니 화나거나 놀라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감정이 서질 않는다. 간혹 먼 데 소식을 들으면 뭐 또 그런가보다 한다.

몇 권의 책을 읽었고, 감상이나 소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도무지 무엇을 긁적일 마음이 일지 않았다. 영화관에서나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꼽아보자니 무엇을 보았는지 별 기억이 없다. 애들을 위해 다운받아 본 키리쿠 시리즈와 아기기린 자라파가 개중 기억에 남는다.

사진은 아예 찍지도 않지만, 그래서 둘째를 위해서라도 디지털 하나 장만할까 몇 달째 견주기만 하고 있다. 산다면 후지 X100S나 X20이 될 듯. 그리고 차 노래를 부르는 0124님 덕에 머지않아 중고차 한 대 살지도 모르겠다.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으려나.

근래 야구에 부쩍 관심이 많은 서연이는 타이젬 7단에서 어느 정도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전에 기록 이후 올해 대회 참가 일지.

1월 27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89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0위(3승 2패)
2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0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5위(2승 3패)
3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1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9위(2승 3패)
4월 21일, 영남이공대학 천마체육관, 제5회 대구시장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우승
5월 4일, 서울 한국기원, 제2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유단자부 예선 탈락(1승 2패)
5월 12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3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3위(3승 2패)
6월 2일, 동대구지하철역 전시장, 2013 대구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 바둑대회, 어린이최강부 우승

서율이는 유치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보다 한층 밝고 개구지다. 어록이라 할 만한 신통방통한 말들이 꽤 있는데 아쉽게도 주변에 전하고 함께 웃곤 죄다 잊어버렸다.

나무가 좋다. 하얀 하늘, 하얀 세상. 결국 돌아갈 물빛 같은 큰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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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ext 2010/05/30 01:08
보라, 결국 계절은 제자리를 찾았다. 잦은 바람에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누가 뭐래도 세상은 아랑곳없다. 별 탈도 뒤탈도 없다. 흥미로운 일도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 그렇게, 건조한 미라의 가슴을 안고 이창동의 시를 보았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 추리소설 몇 편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죄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펄펄 끓던 시절, 나에게도 앤톨리니 같은 선생이 있었거나 그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그뿐이었다). 직장에서는 어쨌든 10년 근속상을 받았고, 이날과 몇몇 핑계거리가 있는 날엔 많은 술을 마셨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다가 그게 무언지 몰라 주춤거렸으며 버릇대로 일찍 취해갔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부끄러움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저녁으로 한두 시간씩 서연이의 바둑을 보는 게 낙이라면 낙이다. 닭 모가지를 베고 자는지 잠도 꿈도 짧아졌고 무기력함과 건망만 늘었다. 젠장, 길이 있는데 길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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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2

from text 2009/12/22 15:33
저가 봉오리를 피어난 것으로 바꾸기에 밤새 함께 울었더니, 떨어져 내릴 때는 맺혔던 자리마저 가져가누나.

준탱이 들어왔고 날은 추웠다. 마음은 늘어졌으나 몸은 바빴고(일에서는 마음만 바빴고 몸은 늘어졌던 듯) 술자리에서만 한두 대 피우던 담배는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술은 배로 늘었다. 서연이는 바둑 7급 승급 심사를 받았고 서율이 재롱은 늘었으며 비로소 나는 늙었다. 그리움은 쓸쓸한 연기처럼 재빨리 일상이 되었고, 달라진 건 없으나 모든 게 달라졌다.

살아가는 일이란 늘상 사소한 것에서부터 틀어지거나 꾸며지기 마련, 한없이 부풀다 지극히 사소해져버린 작은 몸짓은 알 수 없는 불가항력에 계속 몸을 내맡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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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from text 2008/10/29 22:30
가슴에 이리 뜨거운 걸 안고 나는 못 살겠다. 너는 괜찮으냐. 빨갛게 떨어지던 나뭇잎이 문득, 묻더라. 다시, 가을이다. 시월도 다 가고, 봄 생각으로 가득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새.

지금 M6에 들어있는 코닥 포트라160vc 한 롤 빼고는 필름도 다 떨어졌고 가격도 오를 추세라 잘 찍진 않지만 필름 몇 롤 사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비교적 싼 필름들로, 써본 것 중 대체로 마음에 든 코닥 프로이미지100 6롤, 처음 사보는 코닥 컬러플러스200 10롤, 미쯔비시 수퍼mx100 10롤.

인터넷 주문으로 산 책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로드, 밤은 노래한다, 소설의 고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일본현대 대표시선, 체호프 단편선, 친절한 복희씨, 혀. 대부분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블로그를 보다 마음 동한 책들. 그리고 서연이를 위한 노란 양동이,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화요일의 두꺼비.

산 지 얼마 안 된 MP3 플레이어 YP-U4를 주변에 중고로 넘기고 YP-Q1을 주문하였다. 녀석 작고 예쁜 줄 알았더니 작기만 하고 밉상이었다. 긴 충전 시간에 터무니없이 짧은 재생시간을 가진 데다 신곡 볼 줄 모르고 그저 마음에 드는 음악 왕창 넣어놓고 듣는 나에게 컴퓨터로만 충전하는 방식은 (처음엔 장점이라 생각하였지만)어지간히 불편한 것이었다.

아파트로 가려던 계획은 지금 사는 집 계약기간 만료 후로 미루었다. 눈여겨 둔 아파트를 가계약하고 며칠 후 정식 계약서에 날인까지 하고는 주인 쪽 사정으로 취소하였는데, 여러모로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이래저래 무리인 줄 알면서 밀어본 것, 가계약 후 며칠 이리저리 꾸며본 살림이 아깝지만, 어쨌든 홀가분하고 가볍다.

허리와 왼쪽 어금니가 아파 한동안 애를 먹었다. 덕분에 벼르던 산에도 가지 못하고 위 용량도 좀 줄었다. 자가 진단으로는 이게 다 술 때문이지, 한다. 천천히 즐기는 법에 대한 생각은 많은데 때맞춰 치닫는 이놈의 성질은 어찌 이리 숙지지 않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