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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아 불어라 2017/02/20
  2. nylon night 2009/01/01

바람아 불어라

from text 2017/02/20 10:32
겨우내 밤을 웅크려 짐승처럼 세상을 궁리하였다. 짧은 겨울잠인 듯, 긴 낮잠인 듯, 휑한 몰골에 두드러기만 남았다. 궁리한 세상이야 유통 기한 지난 필름처럼 기다림도 잊고 다만 거기 술집 어느 모퉁이에 들러붙어 있을 것이다. 아침 출근길, 사무실 앞 매화 석 점이 바람 속에 불꽃 같은 망울을 터뜨렸다. 다음은 조동진의 불꽃.

바람아 불어라 가만가만 불어라 나뭇잎 쌓이는
님 떠난 그 자리에 한 줄기 아름다운 불꽃을 피우자
바람아 불어라 가만가만 불어라 작은 새 날아라
해 저문 하늘 높이 한 줄기 아름다운 불꽃을 피우자
나는 보았네 사랑과 미움을 나는 보았네 저 불꽃 속에
나는 보았네 슬픔과 기쁨을 나는 보았네 저 불꽃 속에

* 반상사유, 2월 15일부터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6회 지역영재 입단대회 참가를 끝으로 프로기사의 꿈을 접었다. 연착륙을 위한 서로의 약속을 지키는 것. 저나 나나 어찌 아쉬움이 없으랴만 나로서는 홀가분한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아무렴, 아마추어가 진짜다.

nylon night

from text 2009/01/01 03:17
한 해의 마지막 날, 바람도 시린 몸을 달래 주었다. 수성아트피아에서 만난 루시드 폴, 이틀 공연의 이틀째 공연, 따로 또 같이 오랜 불구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 고맙다, 누군들.

미류나무 그늘진 저 강나루 물새는 오늘따라 어디로 간 걸까
빗속 말없이 봇짐 꾸리던 내 님이 못 올 사공인 줄은 몰랐네
강물 속 붕어들아 저 물길을 조금만 막아다오
축지하듯 찬물 따라 홀홀히 멀어진 그대는 가네 가네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운 오늘 밤에 소리죽여 흐느끼는 그대
나는 듣고 있어 멀어지는 당신 모습 까만 점이 될 때까지
눈물 없이 견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 새벽일까 닭이 우는 소리
하늘은 금세 빛을 찾아 어김없이 다가오는 아침
마지막 하늘의 빛 찰나의 시간 멈춰버린 시계의 추
봄빛 살갑게 내려쬐던 단오의 햇살
백일 동안 다시 백일 동안 나를 싣고 가는 배야
잊지 말라는 그대 소리 아직 들려 무심한 물빛 따라

'가네'와 '빛'의 노랫말. 첫 소절 듣자마자 뇌리와 가슴에 바로 박힌 노래는 '빛'의 배경을 이야기하며 슬쩍 불러 준 이 '가네'였다. 몹쓸 귀는 다른 노래들과 이 노래로 그의 노래들을 단박에 구분하여 버렸다. '가네'의 답가로 지은 게 '빛'이라며 떠나는 남자의 슬픔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였는데, 곡조에 반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역시 남은(남겨진) 자의 슬픔에 대한 공감이 컸다. (멋진 녀석이었다. 옛날, 조동진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웠다.)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려는 걸 어찌 해야 할까.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걸 용납하였던 것처럼 내버려두어야 할까. 모른 척, 그래도 좋을까.